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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망(欺罔)'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용어는 형법상 법률용어 외에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사용되지 않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법률이 일본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기망'이라는 용어도 일본 형법(刑法)에서 그대로 사용되던 용어이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형법제246조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을 편취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함(人ヲ欺罔シテ財物ヲ騙取シタル者ハ十年以下ノ懲役ニ処ス"라고 말하고 있다(일본제국주의 시대 일본의 모든 법률은 '~함', '~음'으로 끝맺는 개조식 문어(文語)를 사용하였다. 이 개조식 문장방식은 우리나라 관공서에서 지금도 공문서 양식으로 이어받고 있다).

그런데 일본형법의 이 조항은 이후 개정된 형법에서 "사람을 속여 재물을 교부시킨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人を欺いて財物を交付させた者は、十年以下の懲役に処する)"로 '기망'이라는 용어가 없어지고 단순히 '속여(欺いて)'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일본에서조차 이미 '기망'이라는 용어가 없어졌는데, 정작 우리 형법에서는 여전히 이 '기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횡령'이라는 용어

한편 '횡령(橫領)'이라는 용어도 우리 형법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역시 일본 형법 용어이다. 그런데 이 '횡령'이란 용어는 중국 한자로부터 그 의미가 만들어진 용어가 아니라 일본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용어다.

일본 고대시대에 병사를 통솔하고 감독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압령(押領)'이라는 말이 있었다.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이 '압령'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영지를 힘으로 빼앗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점차 "타인의 물건을 빼앗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횡령(橫領)'이라는 용어는 빼앗는 대상이 토지만이 아니라 금품까지도 포함됨에 따라 '횡취(橫取)'라는 말로부터 유추되어 '횡(橫)'이라는 글자가 부가되면서 '횡령(橫領)'의 용어가 나타났다고 추정된다.

일본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어 사실 그 유래도 분명하지 않은 용어를 우리 형법상의 법률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아닐까. 이는 마치 '함흥차사'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유래된 성어를 일본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현상과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지려천박, 공갈, 배임... 모두 일본 형법에서 그대로 옮긴 용어

우리 형법제348조에는 "미성년자의 지려천박"이란 말이 나온다. 지려천박이라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 형법을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이 용어는 "사리분별력 부족"으로 개정이 되어 1년 뒤부터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배임'을 비롯하여 '공갈', '사기', '업무상 횡령' 등 우리 형법에 나오는 용어들 중엔 일본 형법에 있는 용어들이 여전히 많다. 하루바삐 좋은 우리 용어로 바꿔야 마땅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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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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