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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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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장관이 취임한 뒤로 법무부장관을 대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태도가 상당히 달라졌다. 달라진 것은 이뿐만 아니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관계로부터 표상되던 '제도 대 제도'의 구도가 지금은 상당 부분 약해졌다. 

지난해 12월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1월 13일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개혁이 마무리된 건 아니다. 아직 공수처는 출범도 못했고, 문재인 정부가 목표한 검찰개혁은 형식적으로나마 진전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여전히 강고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 권력이 잘못 쓰일 경우, 국민이 고통을 입을 가능성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검찰개혁은 앞으로도 계속 추진돼야 하기 때문에, '제도 대 제도' 구도가 퇴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 구도가 금년 들어 많이 시들어졌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검찰개혁이냐 아니냐 → 추미애 대 윤석열 
 
 지난 18일 추미애 법무부장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왼쪽). 법무부 앞에 각지에서 오는 꽃다발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 오른쪽은 지난 2일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과 서초구청 공무원 등이 2일 대검찰청 일대 '윤석열 검찰총장 응원 화환'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지난 18일 추미애 법무부장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왼쪽). 법무부 앞에 각지에서 오는 꽃다발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 오른쪽은 지난 2일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과 서초구청 공무원 등이 2일 대검찰청 일대 "윤석열 검찰총장 응원 화환"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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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가 약해진 부분을 '사람 대 사람'이 메우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때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가 '신 검찰제도 대 구 검찰제도' 구도를 표상했다면, 지금은 '추미애 대 윤석열'이라는 인물 대결구도로 치환된 모양새다. 서초동 대검 앞 '윤석열 화환'에 맞서 법무부 '추미애 화분 꽃길'이 등장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인물대결 구도가 대중의 인식에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개혁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혁의 전개 과정에서 제도보다 사람이 더 부각되는 일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제도보다 사람이 지속적으로 더 크게 부각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역시 적지 않다.

그중 하나는 중도층의 판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개혁 문제가 '제도 대 제도'로 비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비치면, 중도층의 눈에 개혁은 한낱 '자리싸움', '세력싸움' 정도로 비하될 위험이 있다. 결과적으로 개혁에 대한 지지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보수세력의 방어가 수월해진다는 점이다. 제도 문제가 더 부각될 경우, 보수세력은 세로운 제도를 저지하기 위해 옛 제도의 우수성 혹은 새 제도의 결점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를 성공시키려면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통상 새로운 제도가 옛 제도보다 합리적일 뿐 아니라 대중의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사람 문제가 더 부각될 경우는 어떨까. 보수층은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의 도덕성이나 법적 흠결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개혁을 손쉽게 약화할 수 있다. 제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지만, 사람은 대상이 될 수 있다. 제도에 망신을 주긴 힘들지만, 사람에게는 망신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보수세력 입장에선 인물대결 구도가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혁의 바람이 불 때마다 보수세력은 이 방법을 애용했다. 개혁 제도의 문제점을 부각하기보다는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의 약점을 띄우는 방식이다. 이는 보수세력이 개혁세력의 주도권을 빼앗는 유용한 전략이 됐다. 

고전적 수법, 사람 때리기 

사람을 공격해 개혁을 좌절시킨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북송(송나라) 신종황제 때의 왕안석(1021~1086)이다. 왕안석은 고려 강감찬 장군이 활약하던 시절에 태어났다. 왕안석이 출생하고 46년 뒤인 1067년, 신종이 19세의 나이로 등극했다. 

신종은 개혁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시대의 부조리를 청산하고 기득권층을 약화시키고자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개혁을 추진했다. '신법'(新法)이라 명명됐던 이 개혁은 국가재정을 확충하고 소농민·소상인을 육성하는 데 방점이 찍혔었다. 정부 비축미를 싼 이자로 빌려준 뒤 나중에 되돌려받는 청묘법도 이 개혁의 일환이었다.

국가재정 확충은 증세를 전제로 하기에 기득권 보수세력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대지주·대상인이 아닌 소농민·소상인의 육성 역시 보수층의 눈에는 '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그래서 '구법당(舊法黨)'으로 불리는 보수세력은 신법과 신법당에 결연히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북송 보수세력도 '신법 대 구법' 구도보다는 '사람 대 사람'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의 전폭적 신임 하에 신법의 선봉에 선 왕안석을 공격했다. 지방관 출신일 뿐만 아니라 비주류였던 남방 출신 왕안석은 1069년 참지정사로 발탁돼 국정 전반과 개혁 과제를 수행하게 됐다. 그는 보수 세력의 표적이 됐다. 

보수세력이 그를 집중 공격한 것은 개혁 자체에 대한 공격으론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이 왕안석의 경제개혁에 대해서도 반론을 펴긴 했지만, 논리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보수가 무식해서는 아니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기득권 체제 자체가 부조리했기에, 방어 논리 역시 깔끔하지 못했다.

일례로 <자치통감>이라는 대작의 저자인 사마광 같은 최고의 지성인한테서 나온 논리를 살펴보자. 사마광은 청묘법이 서민에게 불리하다고 강변했다. '청묘법은 강제로 빌려주는 제도'라느니 '묵은 쌀을 빌려주고 햅쌀로 되돌려받는 제도'라느니 하면서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내세웠다. 정부 비축미를 빌려주므로 묵은 쌀을 빌려주는 것일 수밖에 없고, 추수 뒤에 되돌려받음으로 햅쌀로 되돌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치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런 주장을 펼친 것. 당대 최고의 지성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궤변이 설득력을 얻을 순 없었다.

'황제 앞에서 앉는대'... '면상이 위선자'... 그 결과 
 
 북송(송나라)의 문인이자 개혁가였던 왕안석.
 북송(송나라)의 문인이자 개혁가였던 왕안석.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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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법당은 고전적 수법에 보다 치중했다. '사람 대 사람' 구도를 만들기 위해 왕안석 인신공격에 집중했다. 일례로 여회라는 인물은 '왕안석은 건방지다'는 이미지를 조장하기 위해 "왕안석은 천자에게 강론할 때 앉아서 강의한다"라고 헐뜯었다. 신하가 군주에게 강의할 때는 신하 자격이 아니라 스승 자격을 가지므로, 앉아서 강의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그런 공격을 폈다. 왕안석만큼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왕안석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든 것이다. 

북송 보수세력은 그 시절 '소셜미디어'도 활용했다. 길거리에 등장한 '변간론'이라는 괴문서가 바로 그것. 간신배를 분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부착된 이 괴문서에는 "왕안석이 소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그가 위선자라는 증거"라고 적혔다. 소탈한 표정 자체가 위선자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변간론'은 왕안석이 위선자로 해석될만한 뭔가가 있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 사례는 개혁가 본인이나 개혁가의 딸 혹은 아들에게 아무런 문제점이 없더라도, 인물대결 구도가 잡히기만 하면 보수세력이 얼마든 주도권을 뒤집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법 대 구법'이 아닌 '왕안석 대 반 왕안석' 구도에 시달린 왕안석은 총 7번이나 사표를 썼다. 그러다가 결국 1075년에 낙향했다. 이로써 개혁은 지지부진해졌다. 이 사례는 사람 대 사람 구도가 개혁의 동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강 건너 불구경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은 지난 10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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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장에 대중의 흥미를 끄는 쪽은 인물대결 구도다. 제도 대 제도가 부각되면 이를 지켜보는 대중은 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엔, 강 건너 불구경이 된다.

사람 대 사람 구도가 정착된 뒤 제도 개혁에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처음엔 대중의 관심을 끌 순 있어도, 식상함·지루함으로 귀결돼 대중이 개혁 자체에 무관심해지게 한다. 지금 시대에도 회자되는 정치혐오와 비슷하다.

1년여 펼쳐지고 있는 추미애 대 윤석열 구도는 보수세력뿐 아니라 개혁진영에 의해서도 상당부분 만들어졌다. 보수세력이 애용해왔던 구도에 개혁진영이 가세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국회의원 174명'으로 대표되는 개혁진영의 자신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대중에게 더 깊게 각인된다면 제도 개혁의 본분과 가치는 흐리멍덩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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