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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 한복판
 젊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 한복판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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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뉴사우스 웰스(New South Wales)와 퀸즐랜드(Queensland)주 경계선에 님빈(Nimbin)이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이 동네에 특별한 관광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적지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배낭족들이 많이 찾는 동네다. 흔히 이야기하는 집시풍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있는 호주 사람 대부분은 자그마한 동네, 님빈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님빈에 거주하는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반긴다. 자기가 님빈에 가야 할 일이 있는데 자동차를 태워주면 좋겠다고 한다. 님빈까지는 우리 동네에서 500km 가까이 되는 먼 거리다. 차를 태워주면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서로의 계산이 맞는다. 날짜를 잡았다.

오래전에 님빈을 가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생활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관광객으로 방문했다. 따라서 대충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님빈에 사는 사람과 같이 지내며 그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님빈 간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사람의 물음은 동일하다. 왜 하필이면 님빈에 가느냐는 질문과 함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집시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마리화나를 피는 사람들이 많은동네로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날이다. 평소 여행에는 챙기지 않는 손전등과 슬리핑백을 차에 싣는다. 외진 곳에 집이 있고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네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달린다. 두어 시간 운전하고 있는데 지인이 지름길로 가자고 제안한다. 국도이기 때문에 시간은 더 걸리지만 가보지 않았던 길도 좋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그라프톤(Grafton)이라는 동네로 들어선다.  

그라프톤은 자카란다 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매년 자카란다 축제가 열린다. 2년전에 이곳에 와서 숙박하며 축제 구경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축제가 취소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와 상관없이 자카란다 나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라색 꽃을 도로에 흩뿌리고 있다. 동네가 온통 보라색이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가게에서 햄버거 하나 사 들고 강가에 있는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규모가 큰 클라렌스강(Clarence River)이 소리 없이 천천히 갈 길을 가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서는 싱그러운 풀내음이 피어오른다. 조금 전에 잔디를 깎았기 때문이다. 넓은 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해결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자카란다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동네 곳곳은 자카란다 보란색 꽃으로 뒤덮여 있다.
 자카란다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동네 곳곳은 자카란다 보란색 꽃으로 뒤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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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만난 한국 참전을 되새기는 기념탑.
 공원에서 만난 한국 참전을 되새기는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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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기 전에 잠시 공원을 둘러보았다. 공원은 참전 용사를 기원하는 기념비로 둘러싸여 있다. 최근에 참전했던 중동 전쟁을 비롯해 호주가 참전했던 국가의 기념비가 줄지어 있다. 물론, 한국 전쟁 기념비도 보인다. 인구는 적지만수많은 전쟁에 참여한 호주다. 

그라프톤에서 생각지도 않은 꽃 구경과 공원을 둘러본 후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다음에 만날 동네는 카지노(Casino)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동네다. 한국 사람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은 도박장을 연상케 하는 카지노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지방 도로가 시작된다. 그러나 자동차가 많지 않아 규정 속도 100km를 유지하며 계속 달릴 수 있다. 한 시간 정도 운전해 카지노에 도착했다. 목축업으로 유명한, 제법 큰 동네다. 규모가 큰 도살장도 있다. 거리에는 소고기 주간(Beef Week)이라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 소와 관련된 행사를 하며 소고기 판매를 촉진하는 주간인 것이다. 

고속도로가 아닌 지름길로 운전했기에 거리는 짧았지만, 시간은 더 걸렸다.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 님빈에 도착했다. 동네 중심가에 들어서니 예전에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식당, 우체국, 경찰서, 상점 등이 옛 모습 그대로다.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심지어는 다니는 사람들 모습도 옛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예전에 왔던 기억을 되살리며 잠시 동네를 걸어본다. 님빈이 다른 동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지개색이 많다는 점이다. 무지개색으로 치장한 가게도 많다. 가게에서는 무지개색으로 치장한 모자, 옷 그리고 광주리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집시의 삶과 무지개색은 연관이 깊은 것 같다. 
 
화려한 무지개 모자가 인상적이다.
 화려한 무지개 모자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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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준비하려고 가게에 들어갔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큰 슈퍼마켓은 아니다. 그래도 웬만한 식자재들은 구비하고 있다. 육류를 비롯해 슈퍼에서 살 수 있는 물건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조금 있으면 동네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동네 마켓은 매주 수요일에 동네 사람들이 수확한 야채 등을 가지고 와서 판다고 한다.

동네 시장이 열렸다. 열대여섯 개 정도의 점포만 줄 서 있는 규모가 작은 마켓이다. 그러나 물건은 다양하다. 직접 재배한 야채가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다. 여러 종류의 빵을 가지고 와서 파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생각지 않게 두부를 만들어 파는 가게도 볼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님빈에서는 장이 선다.
 일주일에 한 번 님빈에서는 장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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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시장을 보고 지인이 사는 동네로 향한다. 포장된 도로이지만 곳곳이 많이 파여 있다. 아담한 초등학교를 지나니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비포장도로는 깊은 웅덩이가 곳곳에 파여 있어 서행할 수밖에 없다. 도로 공사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카운슬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가 집시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지인은 주장한다. 

조금 더 운전해 들어가니 허름한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는 개인 도로라는 팻말이 있다. 관광객의 출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 공동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주차장에는 서너 대의 차가 주차해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 중에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며 도로 만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집까지 자동차로 갈 수 없는 사람은 이곳에 주차하고 걸어간다고 한다. 

지인의 집은 이곳에서 15분 정도 산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손전등을 가지고 오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필요한 물건만 대충 챙겨 산을 오른다. 낭떠러지 옆으로도 걸어야 하는 조금은 험한 산길이다.

지인이 설계하고 동네 사람과 함께 지었다는 건물에 도착했다. 너무도 특이한 건물이어서일까, 카운슬에서 제작한 잡지에도 소개된 집이라고 한다. 그러나 집안에는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이 썰렁하다. 소비를 최대한 줄여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생활이다. 

삶에는 정도가 없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사회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스스로 반문해 본다. 나는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만이 삶이란 무엇인가? 

평소에 만날 수 없는 특이한 환경에 접해서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음에 님빈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담장까지도 무지개색을 선호하는 님빈.
 담장까지도 무지개색을 선호하는 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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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NIMBIN, #GRAFTON, #N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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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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