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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의 초상화가 채용신이 그린 단군.
 조선 후기의 초상화가 채용신이 그린 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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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힘을 빌어 동학혁명을 진압한 조정은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일본의 간섭 아래 개화파 관료들로 구성된 김홍집 내각이 이른바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과거제 폐지, 신분을 가리지 않는 인재등용, 사법권의 독립, 연좌제 폐지, 은본위제로 화폐 제도 정비, 도량형 통일, 조세의 금납화, 노비 제도의 폐지와 인신 매매 금지, 과부의 재혼 자유, 남녀조혼 금지, 중앙정부 기구와 지방 행정 조직의 정비, 유교 본위의 교육을 대신할 근대적 학교 제도의 실시 등이 추진되었다. 

갑오개혁의 내용 중에는 신분 타파와 과부의 재혼처럼 동학혁명군의 요구 사항과 일치하고 있는 부분도 있으니, 동학군의 요구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던 토지의 분배는 전혀 논의되지 않는 등 봉건 지주를 비롯한 지배층을 중심으로 한 개혁의 한계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정부가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의 지원, 방곡령의 금지, 일본 화폐 유통 등 일본의 이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일본군과 함께 동학혁명군 진압에 나섰으며, 일본인 고문관과 군사 교관을 초빙하여 일본의 내정 간섭을 더욱 쉽게 만들어 주었다. 이 시기 단발령 강행과 을미사변으로 국민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산 친일 내각이 아관 파천으로 무너짐으로써 갑오개혁도 중단되고 말았다. 

갑오경장으로도 불리는 갑오개혁은 현상적으로는 근대적 개혁인 듯 하지만 속사정은 일본의 조선침탈의 분수령이었다.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죽인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을미의병, 서재필의 『독립신문』 발행,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대한제국으로 국호변경, 열강의 이권침탈, 보부상의 황국협회 조직 등 조선사회는 아래로부터 개혁의 욕구에도 점차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이 시기에 나철의 행적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입산 수도를 한 때문이다.

전라남도 보성군 금곡마을로 돌아온 나인영은 그 후 1904년(갑진)까지 10년 간 야인 생활을 계속하였는데, 이때 제석산을 오르내리면서 입산 수도를 하였다. 

이미 이때부터 도사로서의 소양을 닮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인영은 지목과 왕석보 선생에게 익힌 풍수지리서를 함께 들고 지리산을 비롯한 여러 명산을 순례하였다. 이때 식량은 반드시 생미(生米)였다고 하며, 사방에 하늘 천(天) 자를 붙여 놓고 산중 수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산중에서 절벽을 만나 진퇴유곡에 빠졌을 때 난데없이 백발 노인이 나타나더니 지팡이를 내밀면서 "꽉 잡으라"고 했다. 

나인영이 얼떨결에 지팡이를 잡자 절벽을 휙 날아 건너편 산등성이에 내려놓았다. 백발 노인은 "이런 것쯤은 스스로 뛰어넘을 도력(道力)을 길러야 하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석 1)

 
지리산 삼성궁은 국조(國祖)인 환인과 환웅, 단군왕검을 모신 성역이다. 지리산 삼성궁은 국조(國祖)인 환인과 환웅, 단군왕검을 모신 성역이다.
▲ 지리산 삼성궁은 국조(國祖)인 환인과 환웅, 단군왕검을 모신 성역이다. 지리산 삼성궁은 국조(國祖)인 환인과 환웅, 단군왕검을 모신 성역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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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종교를 창도하거나 전승한 인물들에게는 초인적인 신비체험과 이적ㆍ기적 그리고 영성이 따른다. 과학으로 무장한 현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않는 대목이다. 그런데 기독교나 불교 등 규모가 큰 기성종교는 그것을 신앙이나 불성으로 수용하면서 민족종교의 경우는 미신으로 치부한다.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와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이 이에 속한다. 심지어 단군에 관해서 '신화'로 날조한 일제의 식민사관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철이 언제부터 단군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단군'에 관해서는 '역사적 실체로서의 단군'과 고려시대 이래 민족개국시조로 전승되어왔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동방에 처음 임금이 없더니 신인(神人)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거늘 나라사람들이 임금으로 세우니, 이분이 곧 단군이라"고 하였다. 

단군에 관한 인식과 전승은 민족이 국난에 처하였을 때이면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13세기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으로 어려움에 시달릴 때 보각국사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단군이 등장한다. 또 한말에 국권이 침탈되면서 다시 단군이 부각되었다. 정치적ㆍ문화적ㆍ사회적으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국난에 대처하려는 의도였다. 

박은식이 『동명왕실기』, 『발해태조실기』, 신채호가 『성웅 이순신』, 『을지문덕』, 『동국거걸 최도통전』 등 영웅전기를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출세의 길을 버리고 낙향한 이후 순교할 때까지 나철의 생애는 모두 단군과 연결된다. 『삼국유사』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고기」에 이르되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세(人世)를 탐내어 구하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매 가히 홍익인간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3개를 주어 가서 세상(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이가 환웅천왕이라고 하는 분이다. 풍백ㆍ우사ㆍ운사(風伯ㆍ雨師ㆍ雲師)를 거느리고 주곡ㆍ주명ㆍ주병ㆍ주형ㆍ주선악(主穀ㆍ主命ㆍ主病ㆍ主形ㆍ主善惡) 등 무릇 인간 360여 가지 일을 주(主)하여 인세에 있으면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때에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며 항상 신웅(神雄)에게 빌되, 원컨대 화하여 사람이 되어지이다 하거늘, 이때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타래와 마늘 20개를 주고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일광(日光)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하기 삼칠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능히 기하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 주는 이가 없으므로 매번 단수(壇樹) 아래서 주문을 외우며 원하기를 아기를 잉태해지이다 하였다. 웅(雄)이 잠깐 변하여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주석 2)


나철이 각지의 명산대철을 순회하며 입산수도하고 '단군과 만나고' 있을 즈음 나라의 사정은 한층 긴박하게 무너져갔다. 1904년 2월 일본 함대가 여순항에 있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일본군이 서울에 진주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다.

러일전쟁의 기미가 보이자 고종은 대외중립을 선언했으나, 늑대에게 초식을 권한다고 들을 리 없는 헛공사에 불과했다. '한일의정서'는 일본군의 한국내 전략 요충지 수용과 군사상의 편의 제공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이 조약을 빌미로 일제는 광대한 토지를 군용지로 수용했으며, 각종 철도부설권도 군용이라는 명목으로 가로채 갔다.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의 시설 개선에 관한 충고를 용인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한일협약을 강요했다. 한일협약에서는 일본이 추천한 재정ㆍ외교 고문의 동의 없이는 재정과 외교상의 일을 처리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 외국과 사이의 조약 체결 및 이권 양도, 계약 등도 반드시 일본과 협의토록 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은 재정권과 외교권을 빼앗겼고, 재정ㆍ외교 이외의 각 부에도 고문을 두도록 강요당하여 대한제국의 내정 전반에 일본이 간섭하는 이른바 고문정치가 시작되었다. 


주석
1> 박성수, 앞의 책, 26~27쪽.
2> 『삼국유사』 권1, 고조선(왕검조선)조.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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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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