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4 11:54최종 업데이트 20.12.0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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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대책도 없이 수술을 거부한 그해 겨울. 미친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어가며 숲을 걷거나 결가부좌로 앉아 하염없이 명상에 빠져있는 태평한 아버지와 달리 두 아들은 마음이 급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암환자들의 모임에 가입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경험자들의 답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위를 전부 잘라내는 전절제수술 판정을 받은 위암 중기입니다. 수술은 물론이고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를 하지 않고 자연요법 혹은 대체요법을 시작했습니다. 수술하지 않고 대체요법으로 완치했거나 진행 중인 분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고 계신지 식이요법 등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지만 수술 후 대체요법을 시행하고 있는 분들은 많았으나 수술을 하지 않고 완치됐다거나 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로 대체요법을 하고 있다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암 판정 후 수술을 하지 않고 대체요법을 선택하겠다고 작심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 어떤 구체적인 정보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수술 후 대체요법을 시행하고 있는 분들은 많았으나 수술을 하지 않고 완치됐다거나 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로 대체요법을 하고 있다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암 판정 후 수술을 하지 않고 대체요법을 선택하겠다고 작심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 어떤 구체적인 정보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 송성영

 
간혹 병원에서도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사례들이 있었지만 산에 들어가 특별한 약초나 특별한 식이요법으로 살아났다는 등의 피상적인 사례가 있을 뿐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정체불명의 사내로부터 연락이 오다

그 무렵 정체불명의 중년 사내로부터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았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은 수술 없이 암을 극복했다며 자신이 해왔던 대체요법에 대해 아무런 조건 없이 알려 주겠노라며 암환자가 피해야 할 것, 주로 먹어야 할 것들을 말해줬습니다.


그가 알려준 식이요법은 짠 음식, 염장식품, 탄수화물, 탄 음식과 육고기를 피하고 일반 소금 대신 죽염, 육고기 대신 유황오리, 백미 대신 현미 꼭꼭 씹어 먹기 등등입니다. 더불어 양배추, 마늘 등 항암성분이 들어 있는 채소며 과일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중년 사내가 말한 식이요법 정보는 인터넷이나 대체요법에 관련된 책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거기까지는 들어줄만 했습니다. 사내의 식이요법 정보를 관심 있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병원 수술을 반대하는 강연을 다니고 있는데 그 이유로 암 산업 마피아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암환자들을 위해 꾸준히 무료 강연을 하고 있다며 몇 날 몇 시에 어느 지역에서 강연을 할 예정이니 참여할 것을 권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중년 사내가 말한 식이요법 정보는 인터넷이나 대체요법에 관련된 책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 송성영

 
암 산업 마피아들에게 쫓겨 다닌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는데 은근슬쩍 어느 제품의 항암식품을 먹고 치유했다며 특정 제품의 정보를 흘렸습니다. 결국 항암식품을 팔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노인들을 모아 놓고 출처 불명의 건강식품을 만병통치처럼 판매하는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인터넷에는 정체불명 사내의 유혹처럼 항암 식품에 대한 온갖 정보들이 널려 있습니다. 1970년대 큼직한 뱀을 앞에 놓고 '한 마리 잡숴봐~'로 시작하여 만사형통으로 매듭짓는 거리의 약장사나 크게 다르지 않은 항암제품 광고들이 암환자와 그 가족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항암제들 중에는 그 생약의 성분을 나름 의학적으로 분석한 제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제품 대부분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과 참외 포도 등의 과일이나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와 같은 온갖 식물들의 항암 효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항암 효과가 있다는 과일이나 식물들처럼 그 항암제들 또한 면역력을 키우거나 하여 암세포를 저지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치병, 암을 극복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제품을 복용하게 되면 암을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은근슬쩍 과장 광고를 하고 있고 그 제품의 가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암환자를 유혹하는 정보의 바다에서 멀어질 무렵 평소 존경하던 조 선생으로 부터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송 도사, 전화 좀 줘요. 암 치유하는데 좋은 정보가 있어요."

알고 지내는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적당히 붙일 호칭이 마땅치 않아 '송 도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조 선생 역시 평소 그리 불렀습니다. 늘 긴 수염을 달고 다니는 나의 외모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조 선생의 말에 의하면 어느 말기 암 환자가 동충하초를 복용하고 나서 암세포가 거의 다 사라질 정도로 호전현상을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기 암환자는 암에 대해 알만큼 아는 한의사이기에 믿을 만하고 했습니다.

조 선생은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갔다가 자신의 아이가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원치 않아 만삭이 된 아내를 한국으로 돌려보냈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던 군인이이기도 했습니다. 강직한 성품대로 그는 군 비리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을 했다가 오히려 감옥살이를 하고 군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조 선생의 안내로 동충하초를 재배하여 건강식품으로 판매한다는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사실 동충하초에 대한 믿음보다는 조 선생에 대한 믿음과 그 배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인터넷 정보를 통해 이런저런 항암식품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던 터라 조 선생이 아닌 다른 사람이 소개했다면 찾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충하초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독특한 재배법과 추출 방법으로 만든 동충하초 추출물로 뇌암 수술 후 재발한 자신의 아내를 치유했다고 합니다. 조 선생이 말한 한의사 또한 그 동충하초 추출물 복용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암세포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대체요법을 연구하는 어느 일본 의사도 자신의 동충하초 추출물을 구입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예로부터 인삼, 녹용과 더불어 3대 한방약으로 알려진 동충하초는 그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으며 그 중에서 항암에 좋은 동충하초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항암 작용이 탁월한 동충하초라 할지라도 그 추출 방법에 따라 약효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설령 그 동충하초 추출물을 복용한 말기 암환자가 거의 완치 단계까지 왔다 해도 내가 끌어안고 있는 암세포의 치유 효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암세포 또한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 송성영


하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 달 복용량이 3백만 원이나 했습니다.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에 그 정도의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하든 감수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복용해야 할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치유에 대한 확신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설령 그 동충하초 추출물을 복용한 말기 암환자가 거의 완치 단계까지 왔다 해도 내가 끌어안고 있는 암세포의 치유 효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암세포 또한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충하초와 같은 항암 효과가 뛰어난 건강식품은 분명 암세포를 억제하거나 사멸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 항암식품으로 큰 효과를 보았다 하여 모든 암환자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암에 좋다는 건강식품은 누구에게는 뛰어난 효력이 있을 수 있으나 누구에게는 단지 건강식품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암환자 아닌 것 같은데요

온 산야를 헤매고 다니면서 찾아낸 동충하초로 뇌암을 앓고 있던 자신의 아내를 치유했고 그 동충하초를 인공 재배해 오고 있다는 그는 동충하초에 대해 취재하듯 꼬치꼬치 캐묻고 있는 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송 선생은 암 환자가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럼 좋지요. 헌데 두 차례나 조직검사를 받고 모두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요? 조직검사를 두 차례나 받은 거 맞습니까? 보통 암환자들은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되어 찾아오곤 하는데 송 선생은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네요. 보통 암환자보다 동충하초 효과가 더 좋게 나올 수 있겠는데요."


동충하초 추출물 판매자는 내가 주저하자 그깟 돈 몇 푼에 목숨을 거냐는 투로 말했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이 큰 만큼 그만한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동충하초를 구입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암 치유하는데 돈 아끼지 마세요. 제가 암환자 분들에게 종종 말씀 드리는데 이제는 자신의 몸을 위해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사세요. 자식이든 누구든 챙길 생각 마시고 자신만을 위해 사세요. 죽고 나면 돈이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그 돈을 아끼지 말라 했지만 그는 내가 아낄 돈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더 이상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말문을 닫고 있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암환자 맞습니까?"

동충하초 판매자를 만날 무렵 기공(氣功 몸 안에 흐르는 '기' 라는 생체에너지의 흐름을 부드럽고 원활하게 하는 치유법) 치료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수술을 거부하고 침과 뜸, 기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어느 암 환자의 소개로 만난 그 기공 치료사도 내게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기감(기운을 느끼는 감각)을 체크하기 위해 내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복사기 스캔 하듯 한참동안 체크 하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암환자 아닌 것 같은데요. 암환자의 기운은 송 선생처럼 강렬하지 않습니다. 악성 종양이 아닌 가짜 암인 유사암 일 것입니다."
"두 번이나 조직 검사를 했는데요."
"그래도 검사를 다시 받아 보세요."


대처승이라는 그는 박박 머리를 난감하게 쓸어내리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재차 암환자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단전호흡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단전에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그는 자신의 기감에 암 덩어리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값비싼 항암제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자연요법으로 치유하려면 기본적으로 오염되지 않는 유기농 채소며 유기농 곡식 등을 섭취해야 합니다 ⓒ 송성영

 
나는 자신들의 암치료법이 전부라고 여기는 암산업의 오만함을 신뢰하지 않지만, 수술을 받지 않았다하여 조직검사와 같은 합리적인 과학적 근거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암이 아니라니 좋네요. 그래도 지금처럼 그냥 암환자로 살랍니다. 암세포가 대충대충 살아온 나를 새롭게 바꿔 놓고 있거든요. 신선노름 하듯 좋은 음식에 기혈운동과 명상을 꾸준히 하고 있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이게 다 암 덕분이죠. 하하하!"

한바탕 웃음과 농담조의 말을 던져 놓고 그 길이가 한 뼘이 넘어 보이는 기공치료사의 무시무시한 대침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왔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암 치유에 탁월하다는 고가의 항암제를 기웃거리거나 침이나 뜸, 기로 암을 치유한다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유혹에서 멀어진 만큼 전혀 예상치 못한 주변 사람들의 물심양면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습니다. 값비싼 항암제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자연요법으로 치유하려면 기본적으로 오염되지 않는 유기농 채소며 유기농 곡식 등을 섭취해야 합니다. 어지간한 채소는 직접 텃밭을 통해 갈아먹고 있지만 텃밭에서도 구할 수 없는 건강식품을 구입하려면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을 비롯해 친구 선배 후배 등의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단지 SNS의 글을 통해 만난 생면부지의 분들이 그 부담을 덜어 주었습니다.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이나 단상을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는 SNS에 수술을 거부한다는 글을 올리고 대략 두 달 만에 1년 동안 돈벌이 없이 치유할 수 있도록 자비로운 손길들이 몰려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수술 거부 이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은 다 그 분들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자연요법이라는 길에서 주저앉을 때마다 끌어주고 밀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길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SNS에 수술을 거부한다는 글을 올리고 대략 두 달 만에 1년 동안 돈벌이 없이 치유할 수 있도록 자비로운 손길들이 몰려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수술 거부 이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은 다 그 분들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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