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따발총 같은 굉음에 놀라 잠이 깼다. 이웃집에서 드릴로 벽과 바닥을 깨부수는 소리다. 공사하는 집이 윗집인지 옆집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사방이 소음으로 진동하는 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여덟 시 반. 잠자리에 든 지 세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좀 더 자고 싶었지만, 버틸 재간이 없었다. 급히 노트북을 챙겨 들고 근처 카페로 피신했다.

프리랜서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거다. 마감을 앞두고 새벽까지 글을 쓴 날엔 해가 중천에 뜨도록 꿀잠을 잔다. 하지만 그게 늘 가능한 건 아니다. 벽이나 복도, 계단을 다른 집들과 공유해야 하는 공동주택에 사는 한, 나의 늦잠은 갑작스럽고 다양한 소음에 늘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

한낮에 자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카페 탁자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꾸벅꾸벅 졸면서, 이렇게나마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음을 위로했다. 잠결에 어떤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2년 전 취재차 만났던 환경미화원이다.

그는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대로변과 주택가를 돌며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정리하고 수거한 뒤 주위가 훤해질 무렵 귀가한다고 했다. 다시 눈을 감는데 익숙한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새벽 배송 택배 상자를 현관 앞에 밀어놓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발소리다.

상자 안에는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고등어 대신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양상추가 푸짐하던 그 샌드위치를 못 먹은 지 몇 개월이 지난 게 떠올랐다. 연이은 택배 노동자 사망사고에 식욕을 앞세우기 미안해진 탓이다.

까무룩 턱을 괴었던 팔이 옆으로 툭 미끄러졌다. 언젠가 한밤중에 실려 간 응급실에서 팔에 링거 바늘을 꽂아 주던 간호사가, 어두운 밤 새하얀 조명 아래서 냉장고에 캔 음료 채우던 편의점 직원이, 사람도 차도 드문 거리에서 핸드폰을 바라보며 급히 걷던 대리운전기사가,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까칠해진 얼굴로 맞교대를 하는 경비노동자의 얼굴이 눈앞에 환영처럼 떠올랐다.

이들에게 한낮은 한밤중이어야 할 시간. 지금쯤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편안한 잠에 빠져 있을까.

방음이 좋지 않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혹시 이 소리가 누군가를 괴롭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한낮에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거나 피아노를 치는 건 통념상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겐 한낮의 평범하고 예의 바른 소음이 곤한 잠을 깨우는 미운 불청객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웃의 근무시간을 일일이 파악해 청소기를 돌릴 수도 없는 일. 밤잠이 불가능하고 낮잠이 간절한 누군가에겐 노동과 쉼으로 단단히 균형 잡혀야 할 두 바퀴는 쉽게 흔들리고 덜컹거린다.

밤에도 깨어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찰, 소방관,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과 군인이 그렇다. 한편으론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야간 근무 직종도 있다. 편의점은 반드시 24시간 문을 열어야 할까. 쉼 없이 돌아가는 공장은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 야간 배송을 마친 택배 노동자는 업무 복귀 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이윤추구형 야간노동 제한하는 프랑스 노동법

최근 한 시사주간지에 야간노동을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프랑스 노동법을 인용한 글이 실렸다. 프랑스 노동법전에는 "(경찰, 소방관과 같은) 공공서비스형 야간노동 종사자에 대해서는 야간노동 길이와 횟수 제한, 휴가 보상, 적정 인력 배치, 업무 중 쉴 권리 보장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공장이나 물류배송업 등) 이윤추구형 야간노동은 그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노동법의 야간노동 관련 조항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야간노동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시된, 이윤 대신 인간이 중심이 된 노동법을 가진 프랑스가 무척 부러웠다.

편의점엔 노동자의 편의가 없고, 새벽배송에 밤잠을 빼앗긴 배송원들은 오늘도 밤길을 달린다. 야간노동자들이 내 이웃이 아니란 보장이 없다. 맘 놓고 청소기를 돌릴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언제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야간노동, #택배노동자, #수면권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