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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 허형식 장군.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 허형식 장군.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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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식 장군

1999년 8월, 중국대륙 항일유적지 답사 길에서다. 나는 그때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뜻밖에도 고향 출신의 항일 명장 허형식 장군을 만났다. 그분의 직함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으로 그분을 만난 순간 어떤 황홀함과 함께 소명의식을 가졌다. 

그때 연길에서 만난 연변대 박창욱 교수의 추천으로 '중국 조선민족 발자취총서 4-결전'을 샀다. 귀국한 뒤 아들에게 그 책을 보여주자, 책 머리 화보에서 허형식 장군의 사진을 스캔해줬다. 

나는 그 사진을 액자에 담아 그날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서가에 금오산 사진과 함께 세워 두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여러 차례 허 장군을 주인공으로 실록소설을 기필했으나 번번이 탈고치 못했다. 어떤 때는 100매 정도, 또 어떤 때는 400~500매를 쓰다가 중단하기도 했다.

그렇게 된 연유를 구차하게 변명하면 나의 게으름에다가 독립운동사에 대한 나의 무지요,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라는 공간에 대한 나의 공부와 작중 인물에 내공 부족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연구위원에게 자문을 구하고 문헌을 빌려 만주대륙과 항일 빨치산에 대한 공부를 골똘히 했다.

그런 답답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가운데 어느새 내 나이 일흔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에 어쨌든 탈고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항일이라는 큰 시내를 건너는 한 징검다리의 돌멩이가 되자고.

그리하여 2014. 10. 5. 부터 <오마이뉴스>에 '들꽃'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여 이듬해(2015) 2. 14.까지 41회로 마쳤다.
 
 북만주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송령 들머리에 세워진 허형식 장군 희생비.
 북만주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송령 들머리에 세워진 허형식 장군 희생비.
ⓒ 장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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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옷처럼 순결한 항일 파르티잔

그런 뒤 2015년 말, 그동안 모은 허형식 장군에 대한 자료와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한 10여 년 만주와 빨차산에 대한 공부를 한 탓인지 그때부터 비로소 만주 대륙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을 다시 기필했다.

그때 나는 월정사 원주실 배려로 그곳 명상관에 머물면서 밤낮으로 집필해 탈고한 작품이 실록소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이다.

막상 탈고했지만 '대붕(大鵬)을 그리려다가 연작(燕雀)을 그린 꼴'로 매우 미흡했다. 하지만 역사에 파묻힌 한 항일명장을 일단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명감으로 초고를 마무리했다.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을 집필한 월정사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을 집필한 월정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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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통해 조선의 무명옷처럼 순결한 한 항일 파르티잔의 올곧은 생애를 오롯이 그려봤다. 이 작품으로 그동안 가짜 애국자들에게 지치고 허기진 이 나라 백성들에게 한 줄기 빛과 한 모금 생명수를 주고 싶었다. 또한 앞날에 대한 '희망'과 '자긍심'도 함께 드리고 싶었다.

나는 이 작품을 탈고한 날 아침 월정사 지장암 옆 전나무 수목장으로 가서 할아버지 추모목 앞에서 고유했다.

"할아버지, 제가 금오산 기슭에서 태어난 충절의 큰 인물을 찾아 실록 소설 한 편을 썼습니다."
'수고했다. 그 어른이, 고향의 지사들이, 무척 좋아하실 거다.'


나는 그 길로 월정사 적광전으로 갔다. 부처님에게 삼배를 올리며 허형식 장군의 명복을 빌었다. 그날 느지막이 짐을 꾸려 원주 내 글방으로 돌아왔다. 나의 귀갓길은 그동안 미뤘던 숙제를 뒤늦게야 허겁지겁 다한 게으름뱅이 초등학생처럼 어떤 해방감에 젖었다.
 
 허형식 장군이 살았던 빈안진 조선인 마을
 허형식 장군이 살았던 빈안진 조선인 마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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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식 장군' 특별코너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은 2016년 11월 22일에 눈빛출판사에서 펴냈다. 그 얼마 뒤인 2017년 3월, 구미에 산다는 한 청년이 굳이 원주 내 집까지 찾아왔다.

그는 구미초등학교 출신으로 까마득한 후배가 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려서부터 박정희 대통령은 귀에 익도록 듣고 자랐지만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은 전혀 몰랐단다. 그런 가운데 실록 '허형식 장군'을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 5월 20일 구미 시내에 삼일문고라는 서점을 개업한단다. 그러면서 개업기념 특별전시회에 고향 출신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을 모시고 싶다면서 내게 도움을 청했다.

인문이 시들해진, 서적 도매상들이 퍽퍽 쓰러지고, 동네 서점들마저 온라인 서점에 밀려 줄줄이 문을 닫는 현실이다. 이런 불황에도 서점을 내겠다고 멀리서 찾아온 그의 열정에 크게 감복,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마도 저승에 계시는 허형식 장군도 매우 감읍하실 것 같았다.

사실 세상의 역사는 무모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바뀌었고, 그들의 도전으로 인류문화는 줄곧 발전해왔다. 그는 '허형식 장군'과 함께 그동안 내가 펴낸 저서들로 개업기념 특별코너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간 내가 쓴 작품을 모두 보냈다.

2017년 5월 20일 오후 4시 구미 삼일문고 개점식이 열렸다.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는 나에게 '저자의 말'을 부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예로부터 금오산에서는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는 얘기, 북만주까지 허형식 장군을 찾아간 얘기, 외세에 굴복치 않았던 그분의 생애를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허형식 장군은  1940년 전후 일제의 토벌이 극심해지자 김일성을 비롯한 다른 항일연군 지도자들은 목숨을 구하고자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갔다. 하지만 허형식 장군은 결코 동북의  인민과 당신의 전구(戰區)를 지키고자 단 한 번도 국경을 넘지 않았다. 그의 그러한 신념은 금오산인 자존심이요, 또 다른 외세의 앞잡이가 되지 않겠다는 거룩한, 눈물겨운 확집이었다.

그분은 일제를 당신 손으로 물리친 다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 264번지 고향 집으로 돌아오고자 했다. 그런 뒤 금오산 정상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게 당신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

하지만 허형식 장군은 그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1942년 8월 3일 새벽, 부하를 살리고 당신은 위만군경의 총탄을 벌집처럼 맞고 장렬히 희생했다."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표지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표지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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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쓰다

2018년 7월 17일은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날이다. 그날 하루 네 권의 책을 출판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그날 파주출판단지로 가서 한 출판사와 장편소설 '용서'와 산문집 '마지막 수업'을, 또 이어 이웃의 한 출판사에서 어린이용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와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두 권을 계약했다. 그러자 그날 모두 4권의 책을 출판하기로 계약한 셈이었다.

아마도 이런 날은 내 생애 전무 후무한 일일 것이다. 많은 작가들의 로망은 늘그막에 아동문학을 하고자 한다. 어린이들에게 정신의 양식을 주는 게 작가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도 그런 기회를 갖게 돼 다른 작품 출판을 섭외 받는 것보다 더 기뻤다.

2018년 9월 28일 장편소설 '용서'가 출간됐다. 이 작품은 고교시절 짝이었던 친구 양철웅(작품 속 장지수)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우정을 그렸다. 
 
 장편소설 『용서』의 표지
 장편소설 『용서』의 표지
ⓒ 푸른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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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흥 산골에 정착한 뒤 어느 날 그 친구가 보낸 30년 전의 엽서를 읽다가 문득 보고싶어 수소문했다. 그랬더니 이미 10년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됐다는 비보를 받고 그의 유해가 산골된 미국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 가서 추모예배를 드렸다. 그런 뒤 그 얘기를 영화 '사랑과 영혼'과 같은 얼개로 생과 사를 초월한 두 사나이의 우정을 그렸다. 

친구 김병하(대구대 명예교수)는 내 작품 가운데 가장 수작이라고 평가하는데, 아마도 사나이 간 뜨거운 우정이 주제라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이 책이 나오자 고향 후배들이 2018년 10월 20일 구미 삼일문고에서 북콘서트를 열어주었다.
   
그날 장세용 구미시장 부부는 바쁜 일정임에도 일부러 행사장에 오셔서 뜨거운 환영사로 초라한 고향 출신의 한 늙은 문사를 격려했다. 그날 나는 고향을 떠난 이후 57년 만에 가슴 벅찬 느꺼움을 느꼈다. 
  
 북콘서트 장으로 찾아온 장세용(오른쪽) 구미 시장.
 북콘서트 장으로 찾아온 장세용(오른쪽) 구미 시장.
ⓒ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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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이 연재는 78화로 끝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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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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