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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흑임자, 순댓국... 이 맛있는 걸 그동안 왜 어르신들만 먹었을까요? 젊은이들이 예스러운 우리 고유의 음식에 푹 빠졌습니다. 이른바 '할매 입맛'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가 늘어나면서, '할매니얼'(할매+밀레니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할매니얼 가이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맛깔나는 우리 음식, 숨겨진 맛집, 나만 아는 노포 등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올드한(?) 입맛과 트렌드를 반영한 마케팅이 뜨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사는 지역, 부여에서 '할매니얼' 트렌드를 적용할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한 고민에 들어갔다.

"닭내장탕이요?"
"닭 특수 부위를 모른단말여? 따라와 보면 안다니께."


이것은 요즘 새로 뜨는 음식인가? 추억의 음식인가? 어쩌다 동네 58년 개띠들의 맛집 탐방에 깍두기로 끼었다가 닭내장탕의 추억에 동행하게 되었다.

닭과 내장이라는 친숙한 듯, 친숙하지 않은 조합의 음식에 머릿속 회로가 복잡하게 얽혔다. 치킨과 닭백숙, 닭도리탕 등의 닭요리는 좋아하지만 닭의 내장으로 만든 음식은 좀 뜨악했다.

닭고기를 뺀 내장만으로도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닭 한 마리를 해부했을 때 확보할 수 있는 내장의 양이 선뜻 계산이 되지 않았다. 닭내장탕 역시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공복을 면하기 위한 음식이라는 것만 짐작되었다.

소와 돼지의 경우 공식적으로 특수부위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부산물 요리가 발달해 있어서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닭은 일단 크기가 작았다. 내장의 양에도 한계가 있어 닭발과 근위 정도만 특수부위로 알고 있다. 어쩐지 닭내장은 식재료로 사용하기에는 맛에 대한 보장도 경제성도 없어 보였다. 닭내장탕은 호기심과 거부감이 반반 섞인 음식으로 다가왔다. 잘 선택하지 않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는 선입견으로 썩 유쾌하지 않은 첫 대면이었다.

예전에는 버려지던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근래에는 대박 맛집으로 등극하기도 하는 세상이니, 식재료에 대한 편견보다는 히스토리에 집중하기로 하고 일행들을 따라나섰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이들이 열광하는 입맛에는 특이한 식재료와 공유하는 히스토리가 얹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오늘도 대박 맛있어요" 한 그릇 뚝딱 비운 아이들
 
닭내장탕 집은 이름이 엉뚱하게 옛날 팥죽인 것은 이 집에서 잘 하는 것이 팥죽이라서 그렇다. 동지날 즈음에는 줄을 서서 먹는  팥죽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 할매니얼 맛을 고수하고 있는 닭내장탕집이 맞다. 닭내장탕 집은 이름이 엉뚱하게 옛날 팥죽인 것은 이 집에서 잘 하는 것이 팥죽이라서 그렇다. 동지날 즈음에는 줄을 서서 먹는 팥죽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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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차가 중심가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리적 위치와 분위기는 숨은 맛집이 있을 법했다. 처음보다는 자못 기대감이 생겼다.

"부고(부여고등학교) 학생들이네."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아들이 다녔던 학교의 학생들이라 더 눈길이 갔다.

"얼라! 요즘 애들이 어쩐 일이랴. 여긴 치킨 파는 집이 아닌디 잘못 온 거 아녀?"

우리 일행들도 밀레니얼 세대인 남학생들이 닭내장탕을 먹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흘깃거리며 바라보았다. 남학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으로도 닭내장탕에 대한 선입견이 싹 가셔버렸다.

한창 먹을 것이 당길 나이의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을 겪어보지도 않은 아이들이 이런 생계형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은 너무 보기도 좋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닭내장탕 한상에 추억을 소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닭 내장탕 한상 차림 닭내장탕 한상에 추억을 소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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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에 다녔던 아들에게는 전혀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입이 짧고 음식에 대한 편견이 심한 아들 녀석은 꿈도 꾸지 못할 음식을 남학생들은 잘도 먹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잘 먹었어요. 오늘도 대박 맛있어요."

닭내장탕 한 냄비에 밥을 말아 먹고 비벼 먹으며 뚝딱 비운 아이들은 엄지를 들어 올렸다.

"혹시 손자들 아니에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아닌데...."
"손자들이나 마찬가지지유.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손 잡고 오던 애들인데 학교 급식이 질린다고 전화로 주문해놓고 먹고 가고 그러더니 친구들도 데리고 오고 그러쥬."
 

한 냄비에 500원으로 시작한 닭내장탕을 41년 동안 끓여왔다는 주인 아주머니였다. 음식 장사로 돈을 벌려고 했으면 이 뒷골목에 닭내장탕 집을 차리지 않았다고 했다. 종업원 없이 바깥주인은 서빙을 하고 안주인은 주방을 맡아 욕심 없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500원에 먹고 간 사람들이 지금도 찾아오고 대를 이어서 찾아오는 재미로 지금까지 이 장사를 하고 있지유."
 
이 집의 주메뉴는 팥죽과 닭내장탕이다.
▲ 차림표 이 집의 주메뉴는 팥죽과 닭내장탕이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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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떡볶이집을 대를 이어 찾아가야 할 세대가 닭내장탕 맛을 먼저 알아버린 것이었다. 부여에서 처음 발견한 '할매니얼 맛집'이었다.

닭내장탕을 먹으며 '추억 팔이 놀이'를 하려고 했던 우리 일행들은 부여고 학생들 덕분에 기분 좋은 에피소드를 건졌다. 일행 중에 한 명이 학교 선배라는 명분으로 남학생들의 점심값을 계산해주었고, 우리는 아이들의 에너지 넘치는 감사 인사를 받았다.  

이전엔 경험한 적 없는, '맛의 신세계'를 알아간다는 것

군에서 제대한 아들은 동네 수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수영장 식구들과 거의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숯불에 돼지 껍데기를 구워 먹었어요."
"네가 돼지 껍데기를 먹었다고? 그런 거는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기겁했잖아."
"그랬는데, 제가 돼지 껍데기의 맛을 알아버렸어요. 쫄깃한 식감과 입맛을 자극하는 불 내에 반해버렸어요."


여름 한 철에만 개장하는 수영장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은 요리를 잘한다고 했다. 미식가이기도 해서 일이 끝나는 시간에는 손수 재료를 준비해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요리를 해주곤 했다.

아들은 수영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다양한 음식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남들과 함께 먹는 음식 앞에서는 거부의 몸짓을 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먹다 보니 맛의 신세계가 보였다고 했다. 사회에 첫발을 디디고 있는 아들에게도 '할매니얼 음식'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시금치와 콩나물, 당면 등으로 맛을 내 닭내장탕은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는 맛이다.
▲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닭내장탕 시금치와 콩나물, 당면 등으로 맛을 내 닭내장탕은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는 맛이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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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처음 맛본 닭내장탕은 나에게도 맛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얼큰하고 달큰한 탕 요리의 기본에 충실한 맛에 콩나물 한 줌으로 시원함을 더했고 당면 한 사리를 넣어서 아이들의 입맛도 저격했다.

닭내장의 잡내는 깻잎과 시금치 등의 채소를 듬뿍 넣어서 잡은 것 같았다. 쫄깃한 닭내장은 처음 맛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밀레니얼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물리치고 와서 먹고 갈 정도라면 더 이상 맛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지 않다.

음식의 맛은 추억과 정성이 좌우한다. 맛집이란 줄을 서서 먹는 집이 아니라 두고두고 생각이 나고 먹고 싶은 집이다. 손주들이라면 깜박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우리 할매들의 내공이 쌓인 음식이 바로 '할매니얼 음식'이다. 그런 음식은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없고 건강식이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발굴한 할매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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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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