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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이 있어 처가에 잠시 들렀다. 들녘에는 이미 추수가 끝났는데 마당 아래 밭에는 찬바람 부는 시간에도 여전히 콩대가 서 있다. 물어보니 추수할 손이 모자라 아직 찬서리 맞고 있다고 했다.

오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것 같기에 낫을 들고 콩밭으로 향했다. 추수할 시기가 지난 콩들이 튀어 밭에 떨어져 있다. 하얗게 우박이 내린 듯하다. 서둘러 콩을 꺾기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못해 허리에서 신호가 온다. 

통증이 오기까지는 모르는데 통증이 오고 난 후에는 매 순간이 힘든 것 같다. 어찌어찌하여 한 시간을 꺾고 나서 일어서는데 허리가 안 펴지는 것 같다. 손바닥이 화끈거리며 아파오기에 장갑을 벗어 살펴보니 물집이 잡혔다. 손가락 3개에 물집이 잡히며 밀려서 한쪽으로 쏠려 있다. 아프다는 내색도 못하고 안 아픈 척 오기를 부리며 300평 정도 되는 콩밭의 콩을 다 꺾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껴진다. 4시간 정도 콩을 꺾고 나서 한 곳으로 다 모으니 양이 엄청난 것 같다. 콩은 다음에 턴다고 하시기에 정리하고 집으로 왔다. 씻고 나자 새벽부터 움직였던 몸이 노곤해지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장모님이 고기를 사주시고 가셨다며 아내가 삼겹살을 내민다. 아무래도 일당은 안 받을 것 같고 하여 고기로 일당을 대신 하신 듯하다. 열어보니 수육 사이즈의 삼겹살이다. 전에 그릴에 구워드린 삼겹살이 생각나서 사 오신 듯하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으려면 서둘러야겠기에 작업을 시작했다.
 
양념한 통 삼겹살
 양념한 통 삼겹살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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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에 두꺼운 고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익혀야 하기에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양념만 해서 바로 구워도 문제는 없지만, 기름이 숯에 떨어지면서 엄청난 연기와 그름이 발생하기에 내가 고안해 낸 방법이 있다. 먼저 삼겹살에 올리브유를 살짝 바르고 그 위에 마늘가루와 후추, 파슬리, 히말라야 허브솔트로 양념을 한다. 
 
호일에 싸놓은 통삼겹살
 호일에 싸놓은 통삼겹살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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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을 끝낸 고기는 다시 종이 포일로 둘둘 말아 싼다. 바로 은박지로 감싸면 은박지에 묻은 기름이 까맣게 타면서 직접 닿는 육질이 검게 되기 때문에 종이 포일을 감았다. 종이 포일이 생각보다 좋은 게 안에서 흐르는 기름과 육즙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안에 머물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은박 포일과는 다르게 타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릴에 올려놓은 통삼겹살
 그릴에 올려놓은 통삼겹살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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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마무리하니 깔끔해 보이는 게 나름 괜찮다. 고기에 양념을 다 하고 그릴에 불을 피운다. 40분 이상 그릴에서 고기를 익혀야 하기에 숯을 여유 있게 준비해서 토치로 불을 붙인다. 숯에 불이 충분히 붙어야 그릴 커버를 덮었을 때 불이 안 꺼지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고 숯이 충분히 타오를 때까지 불을 붙인다.

불붙은 숯은 옆으로 펴서 고기에 충분한 열이 전달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석쇠를 올린 후 그 위에 작업한 고기를 올린다. 커버를 닫고 10분 정도마다 한 번씩 위치를 돌려 골고루 열이 전달되도록 한다. 

물론 그냥 놔둬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혹시나 한쪽 면만 닿게 되면 그 면만 까맣게 탈까 봐 돌려주는 것이다. 커버를 덮으면 열은 250도 정도까지 올라간다. 고온의 열기는 두꺼운 고기가 속까지 충분히 익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40여 분을 익히고 나면 일부 삼겹살의 기름이 흘러나오기도 하는데 극히 적은 양이 흘러나와 숯에 떨어진다. 그 기름이 불에 타면서 맛있는 고기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한다. 먹기 전에 향기로 자극을 주려는 듯 고기와 허브향이 어우러진 냄새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살짝 뜸을 더 들인 후 포일을 벗겨내면 그 안에 잘 익은 고기가 향기와 더불어 모습을 드러낸다. 먹기 좋게 썰어 내면 아이들이 달려와 먹어보고는 엄지손가락 척 내밀어 준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을 아이들이 좋아해 주면 그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정육점에 가서 수육보다 좀 더 큰 사이즈로 잘라달라고 했을 때, 사장님이 처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수육이 너무 크면 오래 익혀야 되니까 좀 얇은 게 좋아요."
"저는 그냥 그릴에 구울 건데요."
"그릴에 구우면 더 안 익을 텐데요?"
"아니요. 잘 익습니다.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원하시니 썰어드리기는 하는데, 잘 안 익을 텐데..."
"걱정 마시고 썰어주시면 됩니다."


사장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굵은 사이즈로 삼겹살을 사 가지고 와서 이 방식 그대로 익혀 지인들과 맛있게 먹었다. 지인들도 물 한 방울 안 들어간 수육은 처음이라면서 이렇게 익혀서 팔아도 될 것 같다고 그랬다.

우리 가족이 먹을 고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처가에 가져갔다. 그냥  먹으라고 사다준건데 또 가져온다고 하시면서도 말씀과는 다르게 손은 이미 고기를 
받으시더니 바로 상을 차려내신다. 
 
잘 익은 통삽겹살을 접시에 담아 낸다
 잘 익은 통삽겹살을 접시에 담아 낸다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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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향으로 잡내를 잡은 고기가 속에 육즙을 잘 머금고 있어 맛있다면서 잘 드신다. 아이들이 배고플까 봐 서둘러 처가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나도 빨리 가서 먹고 싶다"라고 하면서 재촉한다. 오늘따라 도로가 밀리는 듯하다. 

차가운 가을날 따뜻한 고기는 몸과 마음을 녹여주고, 차가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몸에 따뜻한 단열재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그릴에는 숯불이 남아 은은하게 따뜻함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저물어가는 가을 저녁, 하늘에는 배고픈 하얀 달이 빙그레 웃고 있는 듯하다.

태그:#일당, #통삼겹살, #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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