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11:01최종 업데이트 20.11.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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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숲을 쥐파먹듯 펜션들이 들어선 여수 돌산도 ⓒ 최병성

 
향일암으로 유명한 여수 돌산도가 흉물스런 누더기로 전락하고 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는 펜션과 모텔, 리조트 이름을 단 건물들이 차지했다. 바닷가뿐만이 아니다. 급경사 산지와 심지어 산 정상 부위도 막개발 천지가 되었다. 마치 쥐가 파먹은 듯하다.
 

해안도로변뿐만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는 산 정상부위까지 막개발이 진행 중이다. ⓒ 최병성

 
해안도로 주변 바닷가엔 암반을 깎고 옹벽을 쌓아 건물들이 위태롭게 줄줄이 들어섰다. 자동차로 달리며 탁 트인 바다 전망을 바라보던 풍경들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급경사지의 해안가 절벽 위에 펜션들이 들어서며 위태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 최병성

 
경기 용인, 양평, 남양주 등 수도권에서는 서울의 비싼 집 대신 정원 있는 내 집을 마련한다는 타운하우스 난개발이 유행이고, 여수 돌산도에서는 관광객들의 숙박을 위한 펜션과 모텔 난개발이 한창이다. 돌산도는 특화경관지구이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막개발 앞에서 초토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돌산도의 심각한 난개발 제보를 받고 달려간 지난 11월 4일, 급경사 진 해안가 산림의 나무를 밀어내는 포클레인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경사진 돌산도 해안가 숲을 밀어내는 현장 ⓒ 최병성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다

돌산도가 망가지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전부터다. 관광객들이 여수의 돌산도를 찾는 이유는 해안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금 여수 돌산도에서 벌어지는 막개발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행위다. 이렇게 막개발로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다 망가트린 후에도 관광객이 찾아올까?


SNS에 돌산도의 난개발 사진 한 장을 올리자 반응이 뜨거웠다.

"맞아요, 지난해에 여행 갔다가 질겁했었어요."
"돌산도가 저렇게 망가진 게 최근에 집중됐어요. 돌산도에 이어 백야도 쪽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완벽히 망가뜨려야 끝날 것 같습니다. 저러면 도시민들이 외면하겠지요."
"앞에 아름다운 푸른 바다 빛과 대비되어서 너무 끔찍합니다."
"멈추세요. 그것이 살길입니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아요."


심지어 한 대학 교수는 "여수 정 떨어집니다. 엑스포 이후 점점 심해지나 봅니다. 망가진 것 보고 다신 안 가기로 했는데..."라며 날로 심각해져가는 여수 난개발을 안타까워했고, 전국을 돌며 지역별 사진 촬영을 하는 한 사진작가는 "여수의 난개발이 너무 심해 사진을 10장도 찍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여수시지만, 이미 곳곳이 파헤쳐져 아름다운 경관을 찍을 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방관하는 여수시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해치는 난개발이 곳곳에 벌어지다보니 불법적인 막개발도 일어나고 있다. 돌산도 평사리에는 아름다운 해안가 소나무 숲을 싹 밀어버리고 '예술랜드'라는 리조트가 들어섰다.
 

돌산도 해안가 숲을 싹 밀어내고 리조트가 들어섰다. 건축물들이 해안가 절벽에 위태롭게 들어섰고, 해수면과 인접하여 카페가 건축 중이다. 해안가 산책로를 만든다며 갯바위에 시멘트를 들이 붓는 불법 공사를 했다. ⓒ 최병성

 
예술랜드는 '관광자원 활성화를 위한 해안데크'를 설치한다며 지난 4월 여수시로부터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받아 해안데크 설치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지난 8월 태풍 '마이삭'으로 해안데크가 파손되자 해안가 갯바위에 시멘트를 들이붓고 바닷가 산책로를 만드는 불법 공사를 했다. 또 예술랜드 바로 옆에 위치한 소미산 정상까지 불법적인 길을 내며 숲을 망가트렸다.
 

바닷가 산책로를 만든다며 갯바위에 시멘트를 들이 붓는 불법 공사가 이뤄졌다. ⓒ 최병성

 
예술랜드는 소미산 정상에 동백 숲을 조성한다며 여수시로부터 지난 3월 폭 3m, 길이 870m의 작업로 공사를 위한 '산지 일시 사용'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폭 3m가 아니라 무려 10m가 넘는 불법 도로를 개설했으며, 심지어 30m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 이로 인해 산림 1.7ha가 무단으로 훼손했다.
 

동백나무를 심는다며 산정상까지 불법 도로를 개설했다. 사진 좌측 아래에 갯바위에 시멘트를 들이 부은 예술랜드가 보인다. ⓒ 최병성

 
여수시 홈페이지에는 소미산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소개하고 있다.
 
소미산은 돌산도의 8대산 중의 하나이며, 남쪽 무술목을 사이에 두고 대미산과 마주보고 있다. 임진왜란의 전적지의 일부이다.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며, 산 동쪽 해안 일대에는 암석 해안이 발달해 있다. 부근 북쪽에는 풍광이 수려한 무술목 해수욕장이 있다...

여수시의 설명과 같이 소미산은 높이 208m의 경사가 가파른 암반으로 이뤄진 산이다. 예술랜드가 정상까지 구불구불 길을 낸 것 역시 가파른 경사이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이미 울창한 해안가 산 정상에 동백나무 조성이 과연 타당한 사업이었을까? 돌산도 8대산 중 하나이고 급경사의 가파른 암반 산지에 임시 도로 개설 허가를 준 여수시의 잘못된 행정이 불법공사를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5일, 여수시는 뒤늦게 예술랜드의 불법 산림훼손과 인근 갯바위 무단 훼손에 대해 강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훼손된 산림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을 뿐 아니라, 갯바위에 시멘트를 들이 부은 공유수면 훼손 행위에 대해 관련 법령에 따라 원상회복 명령을 내렸으며, 만약 원상복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고발·허가 취소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갯바위에 들이 부은 시멘트가 과연 자연 훼손 없이 원상복구가 가능할까. 또 수 십 년 자란 나무들을 잘라내고 암반을 무차별로 훼손한 급경사 산지의 폭 10m의 길을 어떻게 원상복구 한다는 말인지 의문이다.

기후환경회의 유치한다면서...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저지대 도시와 건축물 침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 날로 강해지는 태풍이 점점 더 잦아지고, 파도 역시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해안가 절벽에 건축물을 짓는 게 안전할까. 지금 한창 건축 중인 카페 건축물은 거의 바다 수면 높이와 큰 차이가 없다.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상승되고 있는데, 해수면 가까이 건축물을 인허가해준 여수시와 영산강지역환경청이 난개발과 재난을 부추기는 꼴이 된 것이다. 재난을 부르는 건축 인허가 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 최병성

 
태풍 마이삭에 날아간 예술랜드의 해안데크는 앞으로 닥칠 재난의 경고에 불과하다. 기후 위기와 급경사의 지형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자의 무리한 설계와 이를 허가한 여수시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이 합작하여 돌산도의 경관 훼손을 초래한 것이다. 앞으로 어떤 재난이 벌어질지 심히 우려스럽다.

난개발을 방치 중인 여수시는 놀랍게도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 공동 유치를 전남 5개 시·군(여수, 순천, 광양, 고흥, 구례), 경남 5개 시·군(진주, 사천, 남해, 하동, 산청)과 함께 추진 중이다. 여수시가 메인 행사인 총회를 개최하는 등 중심 역할을 맡았다.

여수시는 최대 규모의 국제 환경회의인 COP28을 통해 여수의 수려한 관광자원을 전 세계에 홍보하여 여수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며, COP28 유치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0월 30일엔 여수시 베네치아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전 환경부 차관인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을 초대하여 'COP28 전략체계 개발을 위한 탄소중립 시대의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열었다. 이 자리엔 권오봉 여수시장과 주철현·김회재 국회의원, 전남도·여수시의회, COP28 유치 특별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다.

또 여수시는 지난 10월 27일부터 3일간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시민 41명을 대상으로 COP28 활동 강사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이밖에 기후보호주간을 전국 최초로 운영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COP28 유치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는 198개 회원국 정상급 대표와 지방정부, 기업, 비정부기구 관계자 등 2만여 명이 참여하는 국제행사다. 만약 그들이 여수에 와서 바다가 보이는 자리마다 누더기처럼 파헤쳐지고 펜션들로 가득한 모습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결국 아름다운 바다와 숲을 파괴하는 이율배반적인 부끄러운 행정을 전 세계에 알리는 꼴이 될 것이다.
 

해안가 절벽 위에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 최병성

 
여수시가 진정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개최를 원한다면, 여수의 아름다운 경관을 파괴하는 막개발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더 이상의 난개발이 진행되지 않도록 올바른 대책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여수시가 지닌 아름다운 바다 경관은 잘 관리하도록 여수시에게 맡겨진 것이지, 지역 경제라는 이름으로 마구 파헤쳐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있으나 마나한 경관법

지난 2017년 5월 17일, 정부 8개 부처는 국토경관의 미래를 위해 국토경관헌장을 제정하며 경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대한민국 국토 경관 헌장]

국토를 가치 있게, 국민을 행복하게, 미래를 아름답게

아름다운 산과 강, 바다와 섬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국토는 우리 삶의 터전이자 정신과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고유한 역사를 가진 마을과 도시를 형성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국토경관을 만들어 왔다.

국토 경관은 모두가 잘 지키고 발전시켜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공공 자산이다. 우리는 지난 경제 성장 과정에서 경관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이에 국토 경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널리 알리고자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을 추구한다.
우리는 경관자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보전하며 활용한다.
우리는 주민과 함께 지역 특성을 살린 다양한 경관을 가꾼다.
우리는 국토 경관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확산한다.
우리는 국제교류를 통해 대한민국 국토경관을 세계에 알린다.
이상에서 밝힌 다짐을 실천하여 국민에게는 행복을, 다음 세대에게는 희망을 주는 품격 있는 대한민국 국토 경관을 만들어 나아간다.

이처럼 멋진 말로 대한민국 국토 경관 헌장이 명문화 되어 있으나 아무 구속력이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이미 2007년에 경관법이 제정되었지만 경관법은 각종 개발법의 하위법으로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화경관지구이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여수 돌산도의 현재 모습은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비단 여수만의 일은 아니다.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전국 해안가마다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다.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해안가 급경사 절벽에 콘크리트 옹벽을 쌓고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 최병성

 
덧붙이는 글 해안 경관을 파괴하는 난개발 대책이 나올 때까지 여수시 난개발 현실을 계속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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