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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미산 학교 11학년과 12학년(고등학교 2, 3학년) 학생 10여명이 6일 유해발굴 봉사활동을 마친 뒤 약식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다.
 성미산 학교 11학년과 12학년(고등학교 2, 3학년) 학생 10여명이 6일 유해발굴 봉사활동을 마친 뒤 약식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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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현, 정상윤, 김명기, 전태환, 문상국, 성낙선, 한용희, 이관술, 이현열, 박만석, 김종두...."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현장에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수백여 명의 이름이 호명됐다. 순간 유해를 발굴하던 조사단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몇몇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젖어 있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호명한 사람은 이곳에 묻힌 희생자들이다. 학생들 앞에는 수십여 구의 희생자 유해가 드러나 있다. 성미산 학교 11학년과 12학년(고등학교 2, 3학년) 학생 10여 명이 발굴단과 함께 6일 직접 수습한 유해다.

학생들은 지난 4일부터 2박 3일간 일정으로 이곳에서 유해발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에 이어 두 번째 봉사활동이다. 마치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는 듯 흩뿌린 가는 빗줄기에 유해마저 촉촉이 젖었다.
 
 성미산 학교 학생 10여명이 대전 골령골에서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을 도와 유해발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성미산 학교 학생 10여명이 대전 골령골에서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을 도와 유해발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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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제문을 통해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왜 이렇게 처참하게 죽었을까 무겁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고, 두 번째 왔을 땐 유가족의 얘기를 들으며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생각해보게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들은 각자의 이름이 있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오빠, 가족이었을 것"이라며 "이 긴구덩이 앞에서 개인의 삶과 이름은 기억되지 않은 채 국가에 의해 이름없는 죽음을 맞이했다"고 추도했다. 학생들이 지금까지 밝혀진 수백여 명의 희생자 이름을 한 사람 한사람 또박또박 부른 이유다.

학생들은 "이 순간을 함께 한 증인으로서 외면하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기억하고 연대하겠다"고 덧붙였다. 골령골에서는 이날까지 약 15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6일 양성주 제주4.3기념사업회 조직위원장과 신동원 제주다크투어 시민참여팀장이 3일 간 일정으로 유해발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6일 양성주 제주4.3기념사업회 조직위원장과 신동원 제주다크투어 시민참여팀장이 3일 간 일정으로 유해발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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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양성주 제주4.3기념사업회 조직위원장과 신동원 제주다크투어 시민참여팀장이 3일간 일정으로 유해발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대전 골령골에서는 제주 4.3항쟁과 여수순천사건 관련 희생자가 대거 희생됐다.

대전 동구청과 공동조사단은 지난 9월 22일부터 40일간 일정으로 대전 골령골 제1 집단 희생 추정지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이날 현재 약 100구 남짓의 유해를 발굴했다.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가 자행됐다.

아래는 이날 학생들이 낭독한 제문 전문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땅속에 있는 유해들을 봤을 때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죽였을까? 하는 무겁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와서 유해들을 보고, 발굴 작업을 하고, 총알에 뚫려버린 두개골과 곳곳에 있는 탄피, 당신들이 마지막으로 걸치고 있던 옷에서 나온 단추들을 보고,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에서 죽은 당신들은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각자의 이름이 있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오빠, 가족이었습니다. 이 긴 구덩이 앞에서 개인의 삶과 이름은 기억되지 않은 채 국가에 의해서 이름 없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날의 진실이 알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있었습니다.

끌려가는 순간엔, 죽는 순간엔 얼마나 억울하고 두렵고 무서웠을지, 70여 년 동안 땅속에 있다는 건 어떤 건지, 잃어버린 가족을 학살터의 유해로 마주한다는 건 어떤 건지 감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뼈가, 자료와, 증언과 당신들의 가족들, 많은 사람들이 먼 옛날 이 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고 드러내고 있기에 아주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기억하며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면 안 된다고 새깁니다.

육체와 영혼 모두 따듯하고 편안한 곳으로 가세요. 이 순간들을 함께 한 증인으로서 외면하지 않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기억하고 연대하겠습니다.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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