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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네서점을 떠올리면 만화방이 떠오른다. 20대까지의 내가 다녔던 서점은 그런 분위기였다. 만화방은 책으로 사방이 책으로 뒤덮여 있다.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타 지역의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에 가보고서야 동네서점의 정겨움을 알았다.

'환상'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성이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다. 현실성 없는 이 단어가 서점과 결합하면 말 그대로 환상적인 동네서점이 된다. 전라북도 군산, 이 소도시에 환상적인 서점이 있다.

내가 동네서점에 푹 빠진 이유

서점은 책을 파는 상점이다. 어떤 책을 팔기에 환상적일까. 책 <환상의 동네서점>에 그 이야기가 담겨있다. 군산에 한길문고라는 서점이 있다. 나는 여고생일 때 문제집과 잡지를 사러 이 서점에 다녔다. 어른이 되어서는 베스트셀러를 사기위해 또는 약속장소로 한길문고를 애용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점에 발걸음이 뜸해졌다. 더 편리한 온라인 서점도 한몫 했다.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일한 기록이다.
▲ <환상의 동네서점>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일한 기록이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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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내가 다시 한길문고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프로그램 때문이다. 에세이 쓰기, 작가 강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200자 백일장 대회, 시 낭송, 마술 공연, 북 캠프, 라면 먹고 갈래요? 디제이가 있는 서점. 이 모든 행사가 바로 한길문고에서 열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서 캠핑을 하고 컵라면과 김밥을 먹고 마술 공연을 보았다.

이 환상적인 서점에 내가 푹 빠진 이유는 또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책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오는 것보다 더 어렵다. 군산의 동네서점(한길문고, 우리문고, 예스트서점)에서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 책을 쓴 작가를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뒤늦게 시작한 덕질은 전작주의를 하게도 했고 나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해줬다.

열망을 채워준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에세이 쓰기'이다. 지방에서는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곳이 드물다. 물론 글은 혼자서 쓸 수도 있다. 그러면 글에 '나쁜 놈'이 곳곳에 생긴다. 한길문고의 상주작가인 배지영 작가는 글에서 '나쁜 놈'을 몰아내고 '좋은 놈'을 배치하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배지영 작가는 동화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나무 같다.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 모두를 자식처럼 대해준다. 나무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그 덕에 우리는 무럭무럭 성장하고 우리가 쓴 글도 같이 자랐다. 회원들끼리 읽어보던 글을 오마이뉴스, 브런치, 블로그, 일간지 등에 내보내기도 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다
 
내가 처음으로 낸 책
 내가 처음으로 낸 책
ⓒ 배지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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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환상의 동네서점>의 마지막 부분에 그 동안 같이 글쓰기를 배운 회원들의 이름을 나열한 페이지가 있다. 그 페이지 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언젠가 탑처럼 쌓여 있는 여러분의 책을 서점에서 사고 싶습니다."

2020년 5월, 배지영 작가는 돌발 제안을 했다. 메신저 단톡방에 독립출판으로 각자 책을 내보자고. 그녀는 한 술 더 떠서 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못 박았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 신은경" 이 문구가 먼저 떠올랐다.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상상도 못한 채 마냥 기분이 좋았다. 배지영 작가는 늘 말한다. "꾸준히 쓰세요." 말 한 그대로 꼬박꼬박 숙제를 했을 뿐인데 글이 모였다.

숙제로 쓰는 글과 책을 만드는 글은 달랐다. 우리는 출판사와 계약을 한 작가가 아니었다. 독립출판은 말 그대로 독립적이어야 했다. 겉표지, 내지, 글씨체, 글자 크기, 여백 등 출판사를 다녀올 때마다 과제를 더 얹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아무리 살펴도 안 보이던 오탈자는 편집 과정을 거칠 때마다 튀어나왔다. 책이 구색을 갖춰 갈수록 더 욕심이 생겼다. 내 글을 문집으로 묶어 놓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서점에 있는 책처럼 만들고 싶어졌다. 목차를 가다듬고 회원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하고 출판사 편집자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독립출판이지만 혼자서 한 일이 아니었다. 책은 회원별로 각자 만들지만 우리는 함께 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

<환상의 동네서점>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일은 한길문고라는 동네서점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 뒤에는 30년 넘게 서점을 사랑해준 군산 시민들이 있다.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고 군산 사람들 중에서 탄생하는 거다. 알고 보면 서로가 서로를 뒷바라지해주는 셈이다."

"꺼내지 못하고 묻어둔 꿈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10월의 마지막 밤. 자기 이름이 박힌 첫 책을 들고 있는 작가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우리 엄마라고, 우리 할머니라고, 우리 아빠라고, 내 아내라고, 내 남편이라고 자랑스러워할 식구들도 떠오른다. 감격적인 현장에 나도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했습니다.
▲ 출판기념회 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했습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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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밤, 한길문고에 '열한 명의 출간작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배지영 작가는 이 날도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할머니처럼 마법을 부렸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에 11개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에는 우리가 만든 책이 있었다. 배지영 작가의 상상 속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11명의 작가들이 소감을 이야기 하는 순서에서 그동안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내가 쓴 책이 실려있는 현수막 감동적이었다.
▲ 출판기념회 현수막 내가 쓴 책이 실려있는 현수막 감동적이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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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첫 책을 쓰면서 책 속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주인공의 삶보다 주변인의 삶을 살아온 내가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다른 회원들도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쓰기로 했다.

여자가 아이를 출산할 때 겪는 산고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이 힘들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면 모두 잊는다고 한다. 그래서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첫 책을 받아들고 그동안 힘들었던 출간 과정을 모두 잊었다.

다음 책이 또 갖고 싶어졌다. 배지영 작가가 아낌없이 베풀어준 양분으로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끼리 걸어 나가기로 했다. 한길문고에서 환상이 실제가 되었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brunch.co.kr/@sesilia11)에 실립니다.


환상의 동네서점

배지영 (지은이), 새움(2020)


태그:#독립출판, #한길문고, #환상의 동네서점, #배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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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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