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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H중학교 도덕교사 배이상헌 선생님은 지난 2019년 7월 24일 직위해제 통보를 받았다. 성평등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였다. 교육청은 당사자인 교사에게 단 한 차례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곧바로 경찰서에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으로 고발했다. 그리고 성범죄 매뉴얼대로 성비위 교사로 규정해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그러나 그 즈음 해당 학교 성고충심사위원회에서는 "성희롱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뒤바뀐 가모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차별 받는 모습을 미러링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성평등교육 영화로 수작이다. 전 세계 1300만 명이 넘게 본 11분 분량 단편영화이다.
▲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의 한 장면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뒤바뀐 가모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차별 받는 모습을 미러링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성평등교육 영화로 수작이다. 전 세계 1300만 명이 넘게 본 11분 분량 단편영화이다.
ⓒ <억압받는 다수>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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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영화는 배이상헌 교사가 성평등 수업을 위해 준비한 프랑스 단편 영화 <억압받는 다수>이다. 중학생이 보기에 일부 아이들에게 불편한 장면이 있을 수 있다. 여성이 웃옷을 벗은 채 조깅하는 모습이나 남성이 불량한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 장면은 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사회를 미러링 기법으로 비판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바꾸어 표현한 것일 뿐 결코 선정적인 장면이 아니다. 영화 <억압받는 다수>는 이미 성평등 교육 우수작으로 인정받은 학습 자료이다.

직위 해제된 지 1년이 지난 올해 8월, 검찰은 '성비위와 무관하다'며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경찰에 고발했던 교육청 관료들은 그동안 "검찰의 판단을 기다려보자"며 배이상헌 선생님을 문제교사로 사갈시했다. 교육청의 일방적인 고발과 직위해제로 배이상헌 선생님은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했다. 30년 동안 학생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누구보다 앞장서 실천했던 교육자의 삶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그 상처가 컸고 고통 또한 극심했다.
  
성평등 수업에 앞장선 배이상헌 선생님에 대한 직위해제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 장면
▲ 성 비위교사로 내몬 교육청 관료행정을 비판하는 시위  성평등 수업에 앞장선 배이상헌 선생님에 대한 직위해제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 장면
ⓒ 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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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검찰의 사법적 판단이 '무혐의'로 나온 만큼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마땅히 배이상헌 선생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잘못된 행정처분에 대해 피해보상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나온 지 교육청은 두 달이 넘도록 잘못된 행정행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학교로 발령을 내고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나온 지 66일 만에 징계위원회에 중징계를 요구했다. '복종의 의무 위반'과 '품위유지 위반'으로 직위해제를 통보한 것이다. 그러다가 몇 시간 만에 직위해제 통보를 취소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교육부 성범죄 매뉴얼에 1차적 원인이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상위법인 '교원지위향상 및 교육활동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7조 1항'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원에 대한 민원·진정 등을 조사하는 경우에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당해 교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인사상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부모 민원 하나에 교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돌이키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다 준 행정행위라면 그 자체가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교사의 교육권이 전혀 보호받질 못하는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어느 교사가 성평등 교육을 앞장서서 실천하려 하겠는가? 아무리 '매뉴얼'대로 처리했다고 하여도 학부모 민원 하나에 교사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행정처분은 가히 폭력적이다. 시급히 교육부는 성범죄 대응 매뉴얼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선 교육청 관료들은 교사의 교육권을 보호하려는 일차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교사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장학활동이 교육청 본연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매뉴얼대로 경찰에 고발할 것이 아니라 해당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장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사법적 판단에 앞서 '교육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게 교육청이 견지해야 할 본연의 역할이다. 그것이 교육청의 존재 이유이다.

거꾸로 교사를 앞장서서 경찰에 고발하고 단 한 번의 소명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교육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교원지위향상 및 교육활동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정면으로 위배된 위법한 행정행위가 될 수 있다. 교사의 교육권을 보호하려는 광주광역시 교육청의 태도 변화와 교육적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태그:#성평등교육, #억압받는 다수, #배이상헌 선생님, #광주광역시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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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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