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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선생 상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에 있는 정약용 선생 상
▲ 정약용 선생 상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에 있는 정약용 선생 상
ⓒ 위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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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생활이 지극히 어려웠다.

18년 유배의 뒷바라지 하느라 살림은 거의 바닥이 났고 농삿일이 서툰 두 아들의 농사로는 가족의 먹거리 마련도 쉽지 않았다. 국사범으로 낙인된 신분이라 해배가 되었다해서 옛 동료들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이 시기의 심경을 「밤(夜)」이라는 시로 담았다.

 물결 차가운데 별빛은 흔들리고
 산이 멀어도 눈빛은 오히려 밝아라
 먹고 살 길 도모해도 좋은 계책이 없고
 책을 가까이 하니 짧은 등잔이 있다오
 깊은 근심 끝없이 떠나지 않으니
 어떻게 하여 일평생을 마칠거나. (주석 7)


20여 년의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였다.

순조가 실어증에다 불면증ㆍ건망증까지 심해지면서 김조순 일파가 더욱 권력을 오로지하여 중앙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감투가 매관매직되었다. 국고는 텅비고 권세가들의 창고만 넘쳤다. 김조순의 딸은 순조의 왕비, 김조근의 딸은 헌종의 왕비, 김문근의 딸은 철종의 왕비가 되어, 60년간 이들 일족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정약용이 해배되어 귀향했을 때 가족이나 일가 중에는, 이제 다시 관문에 나가면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조정의 권력구도는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용보는 정승의 자리에 올라 권세를 한껏 휘두르고 있었다. 귀향 이듬해(1819년) 겨울 조정에서 그를 다시 등용시켜 경전(經田:토지 측량)을 맡기기로 결정하였으나 서용보의 저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진군 다산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더불어 다산의 '일표이서' 중 하나이다.
 강진군 다산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더불어 다산의 "일표이서" 중 하나이다.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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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진 시절의 정신으로 돌아가 글쓰는 작업뿐이었다. 우선 다산초당에서 집필했던 『흠흠신서』와 『아언각비』를 완성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였다.

그나마 귀양보다 귀향이 나은 것은 자유스러움이었다. 해방감이 충만하고 그래서 틈나는대로 그립던 고향의 산과 강을 찾아 풍광을 즐기며 유유자적하였다. 배를 띄워 한강의 상류인 북한강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인근 용문산을 찾기도 하였다.

고향 소내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의 이름이 원래 열수(洌水)였다는 고증을 찾아내고, 이후 '다산' 대신 '열수' 또는 '열상노인(洌上老人)', '열초(洌樵)' 등을 자신의 호로 사용하였다.
  
 ‘수령은 백성을 위해서 있다’는 다산 정약용의 사상. 백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문구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수령은 백성을 위해서 있다’는 다산 정약용의 사상. 백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문구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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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심경을 시문에 담았다. 소개하는 앞의 시는 「동고석망(東皐夕望)」이고, 뒤의 시는 「동고요망(東皐暁望)」의 제목이다.

 구사일생 돌아왔으나 생각은 막막하여 
 때때로 강변에 나가 지팡이 짚고 기대섰노라
 낙엽 물든 그윽한 마을에 가을비 내리더니
 날 개이자 산봉우리들 석양에 물들었네.

 고향땅 그리웠더니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쁘고
 집을 떠났던 세월 지난 날 괴로움이 생각나네
 이미 돌아와 즐겁다고 했으면 그만이지
 하필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 것 까지야. (주석 8)


주석
7> 금장태, 앞의 책, 268쪽.
8> 최익환, 앞의 책, 40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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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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