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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올해 초 겨울 동안 이스탄불을 베이스캠프 삼아 터키를 여행했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반역의 길이 애국의 길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해인 '1923'이라는 이스탄불 시내에 세워진 조형물.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해인 "1923"이라는 이스탄불 시내에 세워진 조형물.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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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는 반역자였다. 자신이 모시던 황제의 명을 거역했다. 그래서 그는 영웅이 되었고 터키인들은 그를 아타튀르크, 즉 국부(國父)라고 부른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영웅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그의 반역 이야기를 하자면 오스만 제국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스만 후기는 전형적인 제국의 말로를 걷고 있었다. 황제들은 정치에서 멀어지고 사치스러워졌다. 황제뿐만 아니라 제국 내부의 기득권 세력의 요구가 많아졌다. 조공(朝貢)으로 성장하던 경제구조는 더 이상 확장할 땅이 없어지자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전통적인 군사 우방국인 오스만 제국에게 달콤한 유혹이 다가왔다. 함께 전쟁을 하잔다. 황제는 전쟁만이 제국을 다시 일으킬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1914.7.28.~1918.11.11)에서 독일은 패했고 오스만 제국은 패전국으로 분류되었다. 더군다나 전쟁이 끝난 뒤 1920년 8월 10일에 연합군과 맺은 세브르 조약(Treaty of Sèvres)은 오스만 제국의 발목을 잡았다. 전쟁에 졌을 경우 이스탄불을 제외한 모든 영토를 포기해야 했다.
 
시린제 마을 가옥.
 시린제 마을 가옥.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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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군과 함께 승전국으로 분류된 그리스 군이 들어왔다. 그리스는 오랫동안 조상들이 살았던 땅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 컸다. 오스만 황제는 세브르 조약대로 이행할 준비를 했지만 국민들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국민들의 반발에 연합군은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요구를 황제에게 한다. 황제는 다시 무스타파 케말(아타튀르크)에게 진압 명령을 내린다.

케말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지금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진압하면 오스만은 끝이다,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진짜 애국자다…. 그는 황제에게 등을 돌리고 국민들 편에 선다.

그때부터 국민들은 반역자가 된 케말과 함께 공식적인 군대를 만든다. 원래부터 용맹한 종족인 데다가 지리감(地理感)을 타고났기에 연합군과 그리스군을 상대로 벌인 2년 동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다. 연합군은 케말에게 또 다른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시린제
 
시린제 마을 입구.
 시린제 마을 입구.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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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0년 2월 눈이 부시도록 따사로운 어느 날, 겨울에도 오렌지 향기가 가득한 가로수 길이 조성된 셀추크를 지나서 올리브 나무가 지천인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서야 마침내 시린제(쉬린제)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 싸여 작은 요새처럼 보이는 마을 입구에 섰을 때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곳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흘린 피를 자양분 삼아서일까. 다민족, 다국가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했던 땅이었다.

'시린제(터키어: Şirince)'는 터키 속의 작은 그리스 마을이라는 별칭이 있다. 에페소스(Ephesos)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이 15세기 무렵에 이주해와 형성한 마을이다. 관광객들 사이에 예쁜 마을로 입소문이 나서 지금은 관광
지로 특화되어 있다.

시린제 주민들은 그들이 직접 재배한 올리브 제품과 여러 가지 과일로 만든 과실주를 관광객들에게 특산물로 내놓는다.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에 맛있는 과일이 풍성하다. 특히 오디주가 일품이다.
 
지중해 과일로 만든 상품이 진열된 시린제 골목.
 지중해 과일로 만든 상품이 진열된 시린제 골목.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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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식당에서 철판 볶음 요리와 오디주 한 잔을 마시고 나와서 흰 회벽에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산중턱 건물들을 한 눈에 훑는다. 두 팔 벌려 햇살을 품고 있는 듯한 이 터를 그리스인들은 성모마리아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곳을 '못생겼다'는 의미인 '체르킨제(Çirkince)'라고 그리스어로 불렸다. 타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만의 위장술인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때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며 잘 살았던 이곳 사람들은 터키 공화국이 수립(1923.10.29)된 뒤에는 보따리를 싸야했다. 1926년, 이즈미르 주정부에서는 마을 이름을 터키어로 '달콤함(즐거움)'을 의미하는 '시린제'로 바꾼다.

오디주가 달콤하게 온 몸을 도는 동안 나는 느릿느릿 마을을 걷기로 한다. 마을은 골목과 골목이 연결되고 골목 가판대에는 수제 인형과 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 건물 건너 와인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한국 드라마에 반해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터키 여인 두 명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서 응해주고는 그녀들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아타튀르크 흉상이 있는 레스토랑 야외 의자에 앉는다. 동상 아래에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인이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저 흉상이 아타튀르크 맞죠? 나는 그에게 일부러 큰소리로 묻는다.

현대의 디아스포라들
 
아타튀르크 흉상과 투르크족 노인.
 아타튀르크 흉상과 투르크족 노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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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가 되어 국민들 편에 섰던 아타튀르크(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1881-1938)는 독일에서 군사 교육을 받고 온 유능한 장군이자 협상가였다. 연합군에게 세브르 조약 원천 무효만을 주장했다. 연합군은 마침내 두 손을 들었다. 그리스군의 반발도 심했기에 적절한 조율이 필요했다. 연합군은 아타튀르크에게 로잔조약(Treaty of Lausanne)을 제안한다.

이스탄불과 에게해(터키 서부에 있는) 섬 중 한 곳을 선택한다. 선택되지 않은 곳은 그리스 영토가 된다. 고민하던 아타튀르크는 에게해 섬을 버리고 경제와 역사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1894년 당시 소유했던 영토인 스미르나(현재 터키의 이즈미르), 이스탄불, 동트라키아 등을 회복해서 현재의 영토를 확립한다.

마침내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투르크족 민족국가 중심으로 터키 공화국이 탄생한다. 민족자결주의 이후로 유독 터키에서는 투르크족만이 살아야 한다는 정서가 퍼진다. 각 세계에 나가있던 투르크족이 터키 땅으로 들어오고 이민족들은 그들 나라로 추방된다. 대대적인 민족 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시린제 마을에 살던 그리스인들도 그때 떠나야 했다.
 
가판대가 있는 시린제 골목.
 가판대가 있는 시린제 골목.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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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에 서돌궐에서 이동해왔을 투르크족 노인은 아타튀르크를 알아보는 관광객에게 웃으면서 터키어로 한참을 말한다. 직원 대신 사장은 그동안 봐왔던 가장 화려한 커피잔 세트에 커피를 내온다. 커피 잔 옆에 있는 오디주가 투명 잔에 담겨 있다. 서비스라고 말한다. 나는 마을 이름처럼 달콤한 오디주를 입안에서 굴린다.
 
터키 커피와 오디주.
 터키 커피와 오디주.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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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놓고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는 여행을 하는 나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자칭했다. 현대의 디아스포라인 나는 지금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로잔조약으로 정든 곳을 떠나야 했던, 그리스어를 모르는 그리스인들이 본토에서도 이방인이 되어 대부분 빈민가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리스인 디아스포라를 떠올려 본다. 그리곤 내 앞에서 사람 좋게 웃고 있는 과거의 디아스포라에게 오디주가 햇살처럼 달콤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유독 햇살로 반짝이는 아타튀르크 정수리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시린제 , #터키 , #디아스포라, #아타튀르크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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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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