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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이야기다. 어깨에서 내려오는 팔 아래쪽이 아픈데 업무가 밀려 병원에 가지 못한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팔을 들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왔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림프암일 수 있다는 정보를 습득했지만 여전히 병원에 갈 틈이 없었다.

그러던 중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었던 그날, 오후 5시 55분이 되어서야 회사 앞 내과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가 가까우니 얼른 오라고 해서 갔다. 의사는 동생을 보더니 바로 염증 진단을 내렸다. 이렇게 아픈데 그렇게 간단한 병증일 수 없다고 생각한 동생은 의사에게 물었다.

"혹시 암은 아닐까요?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파요."
"네, 암은 아니에요. 암은 정말 아파요."
"저도 진짜 아프거든요."
"흠... 암은 살이 빠져요."


의사의 마지막 말에 0.1톤 몸무게의 동생은 말없이 병실을 나왔다고 했다. 대학 시절까지 운동을 했던 동생은 170센티미터에 몸무게 70킬로그램을 넘지 않는 호리한 몸을 유지하다 운동을 관두고 회사 입사 후 살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동생은 자신이 과체중으로 살아온 날보다 아닌 날이 많아 아직 자신의 몸을 자기 몸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농담이라며 자신의 몸을 희화화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며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오전 9시 전 출근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음식 조절을 해서 빼는 건 불가능했다. 풀떼기만 먹으면서 일하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운동할 시간? 새벽에 나가서 하자니 아이들이 어리고, 맞벌이인데 혼자만 운동한다고 바쁜 아침에 나갈 수 없었다. 오후는 야근 때문에 불가했다.
  
몸무게 0.1톤을 유지하는 동생에게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고 엄마와 올케는 닥달한다. 나는 회사 생활 싸이클이 안 도와주는 데다 본인이 느껴야 빼는 거지 주변에서 말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무 말 안 한다. 자신을 희화화하거나 닥달하거나 방관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동생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내 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가 적혀 있다는 <몸의 말들>이라는 책을 읽고 동생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책에는 9명의 각기 다른 저자가 들려주는 몸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동생도 이랬겠구나, 지금 그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했다.
 
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겉표지.
 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겉표지.
ⓒ 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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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때문에 자신을 혐오하던 백세희, 모델이 되기 위해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던 치도, 유방암 때문에 절제한 가슴을 딸에게도 안 내보이던 이현수 엄마의 몸, 몸이라는 각자의 집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혜영, 타투이스트로서 몸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황도, 애널리스트에서 피트니스 코치로 전향한 구현경이 들려주는 건강한 몸, 한가람 감독이 영화에 담아낸 바디에 대한 시선, 안무가 고권금이 플어내는 몸에 대한 억압과 흔적 지우기.

163센티미터에 45킬로그램,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라는 사회문화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저자들이 통과한 시간들을 읽으면서 내 몸을 바라봤다. 그동안 나는 내 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다이어트 한 번 해보지 않고 40킬로그램이 넘었고, 키 커 보이려 하이힐을 신은 적이 없긴 했지만 이게 몸에 대한 각별한 인식이 있어서는 아니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고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우쭐했으니 스스로의 몸을 비난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몸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9명의 저자 중 '몸매 없는 세계의 운동'을 쓴 구현경씨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만족을 분수로 나타내 보자. 분모는 나의 욕구고 분자는 현시점의 자산이 1은 '완전 만족(가진 것=원하는 것)'을 나타내고 0은 '완전 불만족'을 의미한다. 분자는 철저한 현시점의 자산이므로 임의 조작이 어려운 반면 분모는 상상력에 따라 제한없이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 (중략) 문제없는 몸을 지녔음에도 스스로 불만족(0)의 상태로 다가선다. (144쪽)

우리 몸에 대한 만족, 불만족을 수치로 나타내 주니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거기에 '2주 완성 다이어트'같은 허황된 광고, 다이어트에 대한 사람들의 헛된 욕망을 '2주 완성 하버드대 입학' 같은 비유를 통해 예를 들어주니 통쾌했다.

사람들이 다른 것은 과장 광고인 걸 잘 간파하면서 왜 유독 몸에 대해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우리 몸은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자기만의 것이라서일까? 자기가 어찌할 수 있는 최후이자 최소의 보루인 몸. 나만의 것이지만 늘상 노출되어 있기에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몸.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몸은 방황한다.

'누구나 하버드 로스쿨에 갈 수 있다'가 허위인 것처럼 '누구나 마르고 날씬할 수 있다'도 거짓이다. 거짓을 강요하는 사회의 기준이 잘못된 거지 우리 몸이 잘못된 게 아니다. 잘못된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면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몸 이야기를 들으니 '내 몸'이 달리 보였다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인 치도씨의 이야기는 자기 몸을 인정하고 살아가면서 자기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모델이 되고 싶어 깡마른 몸이 되기 위해 험난한 다이어트를 하고 먹고 토하기를 하며 식이장애를 겪다 이런 자신의 삶이 정상이 아님을 깨달은 치도 작가는 자신의 몸 그대로 모델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내추럴 모델이라고 이미 모델업계에 새로운 영역이 확장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치도 작가는 일반 모델이 되기엔 더 말라야했고, 빅사이즈 모델이 되기엔 더 쪄야했다. 분명 그 사이에 다양한 몸이 있음에도 모델계는 두 영역만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치도 작가는 과감히 자신이 국내 1호 내추럴 모델이 된다. 자신의 키와 몸무게를 공개하고 코디한 옷을 통해 현실핏을 보여주는 유투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2018년에는 '제1회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도 열었다. 내추럴 모델인 치도 작가를 아무도 모델로 써주지 않아 무대에 오를 수 없었는데, 스스로 무대를 만들었다. 

<몸의 말들>은 우리 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 나와 있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다른 소재와 방식으로 아홉 명의 저자가 글을 썼지만 '바디 파지티브'로 내용이 모아진다.

책의 발문에서 정희진 작가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지금 내가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하는 것은 '남의 몸에 대해 평가하지 말기'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괴감을 느꼈을 동생에게 <몸의 말들>을 선물하고 그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줘야겠다. 

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강혜영, 고권금, 구현경, 백세희, 이현수, 치도, 한가람, 황도 (지은이), arte(아르테)(2020)


태그:#몸의 말들, #바디 파지티브, #과체중,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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