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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고양이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은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믿음과 이 아이들도 가족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런 운영 철학을 실천하며 그래서 각종 고양이를 위한 물건과 공간을 만들어 판매하지만 고양이만은 절대 팔지 않는 '고양이 가게'에서 일한 지 어느덧 두 계절이 지나고 있다. 가을이다.   
 
한식구나 다름없는 길고양이 다리, 무무,  또치, 뭉치
 한식구나 다름없는 길고양이 다리, 무무, 또치, 뭉치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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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한 식구나 다름없는 길냥이 또치, 뭉치, 달이, 무무와는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예뻐서 내민 손길에 화들짝 놀라 저만치 물러나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저희들이 먼저 와 몸을 부비는가 하면 출근 후 문을 열기 바쁘게 우루루 몰려와선 '밥달라' 당당하게 요구한다.  

경계심이 드높았던 후문 쪽 삼색이네도 아직 손길은 허락지 않지만 밥을 담고 있으면 바짝 곁에 와 본다. 부르면 저만치 담벼락에서 대답도 하고. 힘겨운 길생활에 가뜩이나 작고 마른 체구의 어미와 제법 자란 자식들의 TNR(혹독한 길에서의 삶을 사는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안전 포획, 중성화수술, 회복 후 제 영역에 다시 놓아주는 전 과정을 말함)을 진행했는데 새끼 하나와 계획에 없던 건장한 수컷 검정 고양이만 성공해 다시 때를 기다리고 있다. 
 
꼬물꼬물 채 눈도 못 뜬 아기 고양이들 소식은 지난 두 달간 유난히 많았다.
 꼬물꼬물 채 눈도 못 뜬 아기 고양이들 소식은 지난 두 달간 유난히 많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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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물꼬물 채 눈도 못 뜬 아기 고양이들 소식은 지난 두 달간 유난히 많았다. 누군가 무심히 갓 태어난 새끼들을 상자에 담아 차도 다니는 길에 내놨더라, 주차장에 갔더니 어찌된 일인지 혼자 있더라 등등 사연도 여럿. 난감한 처지의 어린 생명들을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가게로 데려오거나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으며 독박 육아를 자청했다.  

나 역시 출근길 한 가게 옆 작은 뜰에서 절박한 울음 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꼴이 엉망인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두 눈에는 이물질이 단단히 들러붙어 앞을 보지 못했는데 내 목소리에 반응하며 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녀석에겐 밀림처럼 느껴질 뜰 위 엉겨붙은 마른 낙옆과 억센 가지에 걸려 자꾸만 헛바퀴를 돌았다. 

보다 못해 직접 난간을 밟고 올라선 채로 녀석을 안아올린 뒤 마침 길 건너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가 확인해주길 온몸에 피부병, 생식기 안까지 진드기가 번진 상태라 했다. 응급 치료를 한 뒤 퇴근하고 집으로 데려와 새벽까지 돌봤지만 녀석은 다음날 아침을 맞지 못했다.  
 
유기묘 유자와 후추. 유자에게는 자유를, 후추에게는 가족을 찾아주기로 했다.
 유기묘 유자와 후추. 유자에게는 자유를, 후추에게는 가족을 찾아주기로 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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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보호실에는 지난 여름 한 캣맘의 간곡한 부탁으로 데려온 길고양이 유자에 이어 생후 3~4개월쯤으로 보이는 꼬마 고양이 후추가 들어왔다. 앞서 유자는 구내염이 심한 데다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살던 곳 일부 주민들이 해코지를 해서 왔다. 후추는 또 무슨 사연인지 외진 곳에 위치한 인근 대형 직판점에 3주쯤 혼자 있는 걸 가게 손님 한 분이 데려왔다. 누군가 잃어버린 게 아닌가 했지만 아무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유자와 후추는 첫 며칠은 데면데면했지만 어느새 서로 마음을 열고 기대었다. 놀 때도 먹을 때도 잘 때도 껌딱지처럼 꼭 붙어서는 아빠와 아들처럼 형과 동생처럼 더없이 정다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유자가 몸도 마음도 회복되면서 아무래도 야생성이 되살아난 듯 밖을 나가려 했고 결국에 보호실 이중 문을 열고 온 매장을 휩쓴 뒤 잠기지 않은 창문 하나를 찾아내 제 스스로 열고 탈출을 한 것. 

며칠에 걸쳐 유자를 찾아 데려왔지만 유자는 좁은 보호실에 있는 것을 더는 원치 않는 듯했다. 문을 긁고 울어대길 여러 날, 그리고는 다시금 탈출을 감행해 달아났다. 또 며칠에 걸쳐 녀석을 찾긴 했으나 그땐 진정 유자를 위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유자를 몇 년간 돌보다 보호를 요청한 캣맘과 나 포함 직원 둘은 고심 끝에 유자를 자유롭게 해주기로 했고, 지금 유자는 도로 길에서 생활하며 예전 밥자리에서 캣맘을 기다린다. 
 
사랑스러운 호텔 투숙객들. 사연도 가지가지.
 사랑스러운 호텔 투숙객들. 사연도 가지가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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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손님은 여름 성수기 때보다는 적었다. 가게 수익 측면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손님이 적으면 그만큼 한 마리 한 마리에 관심과 애정을 더 줄 수 있다. 장난감 따위 이제는 시선조차 안 주는 다 큰 고양이들 그것도 장기투숙 중인 녀석들과 조용한 시간을 보내던 참에 천진난만 귀여움과 호기심으로 무장한 반년생 아가냥들이 2주여 머물다 가서 그 기간 동안 모처럼 신선한 재롱에 다들 재미났다. 

한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호텔 단골 고객 중 하나인 네꼬란 고양이는 비싼 품종묘로 구분되는 외모에 유난히 큰 머리와 눈, 게다가 잡지나 텔레비전에서나 볼법한 신기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잘 취해 보는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뭐든 제멋대로 하려는 성향이 있어 '역시 곱게만 자란 애들은……'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네꼬는 전 반려인에 지독하게 학대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고양이 가게'를 지탱해주고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
 "고양이 가게"를 지탱해주고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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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고양이 가게'를 지탱해주고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고양이를 다른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 어느날 출근해보니 가게 출입문 앞에 따뜻해보이는 종이가방이 놓여 있었다. 정말 손을 대면 따뜻할 것만 같은. 가까이서 보니 '길고양이들 나눠주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간식과 영양제가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어떤 미소 고운 여인은 이름도 안 밝히고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밀며 역시 고양이들을 위해 써달라 하곤 곧 떠났다. 

달리 또 감사한 경우가 있으니 구사일생 살아난 고양이들의 새 가족이 되어준 사람들. 사라진 어미를 대신해 젖을 먹이고 변을 받아내고 품어 재우고 그렇게 여러 날을 함께 한 끝에 "이제 너무 정이 들어 우리가 키우기로 했어요" 하면 그렇게나 다행스럽고 기쁠 수 없다. 한 가족은 분양 가게가 아닌 보호소로부터 입양한 하얀 아기 고양이 이름을 두고 어머니는 "우유", 아들은 제 성을 붙여 "윤춘식"이라 하겠다며 옥신각신해 웃음을 자아냈다. 
 
부디 따뜻한 시선과 말, 밥을. 절대 욕하거나 걷어차진 말아주시길.
 부디 따뜻한 시선과 말, 밥을. 절대 욕하거나 걷어차진 말아주시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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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겨울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미 밤과 새벽은 춥고도 춥습니다. 부디 주변에서 만나는 길고양이, 비슷한 처지의 생명들에 따뜻한 시선과 말, 여유가 되신다면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작은 집과 그 앞에 물과 밥을 놓아주시길. 그리고 제발 그 모든 것들을 욕하거나 걷어차지 말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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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길고양이, #고양이가게, #고양이급식소 , #부산고양이호텔 , #부산유기동물보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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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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