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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사 한인황 씨가 탁자를 공중에 띄우고 있다.
 마술사 한인황 씨가 탁자를 공중에 띄우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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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가 저절로 공중을 떠다니고, 입에서 뿜어내는 불길이 어두운 거리를 환하게 밝힌다. 때론 손바닥에 올려놓은 동전이 중력을 거스르며 공중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낸다. 마술 공연이 펼쳐지는 현장 분위기는 언제나 흥겹다.

경북에서 열리는 축제 무대와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거리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마술사로 살아가는 한인황(36)씨.

열서너 살 무렵 마술에 매료된 인황씨는 삼십대 중반이 됐음에도 여전히 '꿈꾸는 소년'이다. 곤궁과 힘겨움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삶을 후회 없이 걷고 있는 사람.

인간은 꿈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늙는다고 한다. 그러니, 꿈을 버리지 않은 '거리의 마술사 한인황'은 아직도 새파란 청춘이다. 얼마 전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그를 만나 마술사의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에 대해 들었다.

마술에 매력에 빠진 중학생의 선택

- 마술사는 특이하고 드문 직업이다. 언제부터 마술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학교 때 친하던 급우와 장난처럼 TV에서 본 마술을 따라 하곤 했다. 별것 아닌데도 마술을 보여주면 친구들이 웃으며 좋아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게 계기가 돼 스무 살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술을 배우고 싶어졌다.

함께 마술에 관심을 가졌던 급우 역시 계속 마술사의 길을 가고 싶었던지, 군대를 마치고 다시 만났을 땐 제법 실력이 좋아져 있었다. 대구의 마술학원에서 2년간 본격적으로 여러 테크닉을 보고 익혔다고 했다. 그게 부러웠다.

스물서너 살 무렵부터 친구와 함께 부산과 일본 오사카를 오가는 크루즈선에서 마술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일종의 직업이 된 것이다. 유람선에 오른 관광객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게 재밌고 보람 있었다. 돌아보면 참으로 즐거운 시절이었다."

- 잘 몰랐던 사실인데, 마술을 배우는 학교나 학원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 내 경우도 20대 중반에 마술을 가르치는 학과가 있는 동부산대학교에서 짧게 공부했다. 아쉽게도 졸업은 하지 못했다.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마술을 배우는 사람도 적지 않고, 마술 기법 등을 알려주는 학원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는 크고 작은 공연을 통해 마술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학교나 학원보다는 현장에서, 거리에서 배운 게 더 많았다."

- TV나 인터넷 동영상 등에서 많은 마술사들을 만나게 된다. 당신이 좋아하거나 영향 받은 마술사는 누구인가.
"내 경우엔 거대한 빌딩이나 건축물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만드는 큰 스케일의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보다는 비둘기와 촛불을 소재로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마술을 보여주는 랜스 버튼의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 아마도 내 취향과 성정에 맞아서 그런 것 같다."

- 마술사로 활동한 곳이 다양할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 처음 시작한 곳은 한국과 일본을 왕복하던 크루즈선이었다. 그걸 그만둔 후에는 구미에서 친구와 마술학원을 운영했다. 그게 20대 중반 무렵이다. 마술학원에선 사회성이 좋지 못하고, 남들 앞에 서면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적극성을 길러주려 노력했다. 사실 마술을 배우면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즐거워진다.

'마술학원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던 부모들도 막상 자신의 자녀가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감을 얻으면 기뻐하며 나를 격려해줬다. 그런 게 마술학원이 가진 힘이다. 충북 청주에서 잠시 생활하며 카페에서 마술쇼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그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마술 수업도 준비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한인황은 "마술을 매개로 꿈을 키웠고, 아직도 마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인황은 "마술을 매개로 꿈을 키웠고, 아직도 마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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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문제 등으로 이어지기 힘든 마술사의 길

- 마술사의 길을 계속 걸으려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텐데.
"물론 쉽지 않았다. 나이는 먹어 가는데 생활인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나를 어머니와 친척들이 많이 걱정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땐 외숙부가 자신의 사업체로 나를 불러 2년가량 일을 시키기도 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마술에 가있으니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매형의 소개로 한 회사에서 몇 년간 사무직원으로도 일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마음속 정열을 누르지 못해 방황했다. 회사원이 아닌 마술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결국은 30대 초반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거리에서 마술 공연을 시작했다. 모두가 그렇지만 나 역시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 '거리 마술공연가'의 삶은 어떤 것인가.
"지금까지 10년 이상 마술을 해왔다. 그런데, 마술사에게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과 크리스마스가 낀 12월이 성수기라면 나머지는 비수기라고 볼 수 있다. 마술사에겐 비수기가 너무 길다. (웃음) 그래서 고민 끝에 나온 대책이 무대 공연과는 또 다른 거리 마술 공연이었다.

거리에서의 공연이 시작된 건 영일대해수욕장 야외무대다. 지금은 거기서 공연을 하려면 허가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4년 전에는 누구나 '거리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대구에서 온 어떤 '거리 예술가'가 풍선쇼와 불쇼로 관객을 유혹하는 걸 본 후에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커졌다."

- 거리 공연만의 매력이 있을 것 같다. 또한 어려움도 있을 텐데.
"특정 공간에서 내 마술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자유롭게 연습하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관객들과 만나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해줄 수 있다는 게 좋다. 처음 거리에 섰을 땐 부끄럽고 어색했다. 관객이 10명 이하인 경우도 흔했다. 마술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의미로 주는 '자발적 관람료'도 처음엔 3000원 정도가 전부였다. 그게 나중엔 20~30만 원으로 늘어났으니 나름의 노력은 다했다고 자부한다.

힘든 점은 혼자서 모든 걸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에 서서 마술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 거리 공연의 노하우를 익히기 위해 '거리 공연의 메카'로 불리는 부산의 해운대해수욕장을 아마 50번 이상은 방문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 마술사로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잠깐이지만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준다는 게 보람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또한 답답했던 내 가슴도 시원스럽게 트였다. 물론 돈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만족감을 돈과 바꿀 수 있을까?"

- 반대로 마술사로 살며 서글펐던 순간은.
"다른 사람들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은 내게도 있다. 앞으로 얼마 동안 마술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를 떠올려보면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는 '누구에게나 어려움과 고난은 있다. 나는 아직도 꿈을 찾아가는 중이다'라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관객들과 함께 하는 한인황 씨의 거리 마술공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이다.
 관객들과 함께 하는 한인황 씨의 거리 마술공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이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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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로 살고 싶은 소년이 있다면

- 잊을 수 없는 관객이 있는지.
"거리 마술 공연이 끝난 후 5만 원을 '자발적 관람료'로 준 주부가 있었다. 아이들이 날 자기네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할 만큼 마술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분은 아들과 딸이 공연을 보며 느낀 행복감을 내게 돌려준 게 아닐까?

어떤 할머니가 마술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것도 기억난다. 왜 울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도 궁금하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막극장에서 마술 공연을 보던 어린 날이 떠올라서가 아닐까라고 짐작할 뿐이다."

- 당신에게 마술이란.
"포기할 수 없는 꿈이고, 내 삶의 전부다. 다른 곳에서 무엇을 해도 공연 무대가 떠올랐고, 회사원으로 살 때도 애타게 그리워했던 게 바로 마술사의 삶이었다."

- '코로나19'로 인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졌다. 어떤 심정인지.
"많은 '거리 공연가'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불가능하니 어떤 공연도 열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비극에도 끝은 있는 법이니 다시 관객들과 만날 날을 준비 중이다. 그땐 깜짝 놀랄만한 마술로 바이러스에 고통 받은 사람들을 위로해줘야 하지 않겠나."

- 마술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진심으로 마술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 부지런히 연습해서 '부산 국제 매직 페스티벌'과 '피즘(FISM·마술사들의 올림픽)' 등 마술대회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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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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