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9 18:25최종 업데이트 20.10.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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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지난 9월 25일 전세계기후행동의 날을 맞아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 청소년기후행동

 
기후위기에 대한 기사는 인기가 없다. 이유가 뭘까? 첫째, 어렵다. 지구온난화와 탄소배출량까지는 알아듣겠지만 '탄소중립'이니 '파리협약'이니 'IPCC' 'LEDS' 처럼 외계인의 암호코드 같은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더 읽히질 않는다. 과학용어에, 가늠할 수 없는 숫자에, 영어 약자까지 뒤섞여 있으니,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난수표 같다.

둘째, 진부하다. 이대로 가면 지구적 재앙이 온다고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환경운동가들은 말했고, 그때마다 정부는 '환경보호' '생태보전' '녹색성장' '그린뉴딜'을 한다며 분주히 움직였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언어를 차용했으나 큰 틀에서 보면 양측의 공방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새로운 전환이 없으니 새삼 관심을 가질 새 소식도 없어 보인다.


셋째, 비관적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꼼꼼히 하고 에코백과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나름 시민의 도리에 충실했건만, 지구는 더욱 황폐해지고 기후재앙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으니 뭐 어쩌란 말인가? 산에 가서 삼겹살 구워 먹는 재미도, 계곡에서 물장구치는 낙도 반납한 지 오래인데, 내가 어떻게 한들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회의가 든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회피전략을 쓰게 된다. 기후변화가 몰고 올 파국의 시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기사도 과장된 괴담이나 강박이 아닐까 의심한다. 당장 오늘 먹고사는 일도 시급한 판에 내가 죽고 없을 수십 년 후까지 걱정할 여유가 없다고 항변한다. 과학기술이 좋으니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막연한 낙관론으로 불안을 잠재운다. 그러는 사이 지구 곳곳에서 유례없는 산불과 태풍과 폭우와 폭염과 가뭄이 기승을 부리고, 알 수 없는 감염병으로 비행기가 멈추고 통행이 제한되고 출근도 등교도 결혼식도 장례식도 제대로 못한 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두려워지는 황당한 세상이 되었다.

시한폭탄을 깔고 앉은 어른들이 적당히 눙치고 외면하려 들 때, 광부의 카나리아처럼 선명한 목소리로 위기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청소년들이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해 3월, 청소년들이 정부를 비롯한 기성세대에게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발적 기후운동조직이다. 지난 9월 25일 '전세계 기후행동의 날'을 맞아 청소년기후행동의 한 학생이 만든 피켓에는 너무나 소박해서 충격적인 호소가 적혀 있었다.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어요."

기후위기에 대한 기사가 어렵고 진부하고 비관적이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이다.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에서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보림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1993년생으로 비청소년 상근활동가이지만, 다른 청소년들과 특별히 구분되는 직책을 갖고 있지 않다.
 
주요 용어
탄소중립: 탄소순배출을 0으로 만든다는 뜻. 넷제로(Net Zero)라고도 한다. 인간이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등을 통해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삼림을 통해 자연흡수되는 이산화탄소 량에 맞추자는 것.
 
파리협약(파리기후변화협약):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2020년 이후 기후변화 대응을 담은 국제협약. 세기말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했으나 바이든후보는 파리협약에 재가입할 것을 공약하고 있어서 미국 대선의 쟁점이 되고 있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패널. 유엔 산하 국제협의체로, 2018년 10월 인천에서 열린 48차 IPCC총회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려면 2050년경 넷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한국도 물론 회원국이다.
 
LEDS(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s): 장기저탄소발전전략. 파리협약은 모든 당사국에게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장기전략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2050년 넷제로를 목표로 내세웠고 중국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은 2050년 넷제로 전략을 보고서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 보고서의 제출시한은 올해 말까지이다.

'유난 떨어 보림'에서 '코림'이 되기까지
 

사진2 지난 14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김보림 활동가를 만났다. ⓒ 와글

  
미세먼지 없는 가을 하늘에 햇살이 청명했다. 와글 회의실에서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볕 좋은 옥상에서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

- 때 이른 폭염에 긴 장마, 세 차례 연속으로 태풍이 몰아칠 때는 이게 기후위기 맞나 보다 싶었는데 맑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지니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그런 위기감이 좀 옅어지는 것 같아요. 보림님은 어떠세요?
"전 별로... (웃음) 어차피 문제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거대한 거잖아요. 보이지 않아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아니까요."

- 언제부터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예요?
"고등학생 때부터 지구온난화나 에너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열성적으로 했죠. 카페 가서 텀블러 내밀면서 '여기 주세요' 하고 다녀서 '뭐 유난 떨고 난리야'하는 소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혼자서 '유난 떨어 보림' 캠페인을 펼친다고 하고. (웃음)"

- 유난 떨어 보림? 아예 이름을 넣어서 캠페인을 벌였군요. (웃음)
"그때만 해도 플라스틱 줄이고 전기 코드 끄고 그런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기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친구들과 공부 모임을 만들었는데 2019년에 '제3차 에너지계획'이라고 해서 2040년까지 에너지 수급에 대한 정부 계획이 발표되었어요. 그걸 들여다보니 온실가스 감축의 여지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지금 정부가 바라보는 미래에 내 미래는 없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죠."

2013년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가 나노생명공학과로 편입을 해서 졸업했다. 동기들은 제약회사나 연구원으로 취업을 했지만 김보림은 다른 선택을 했다. 태양광 스타트업에서 컨설팅을 하고 서울에너지공사 인턴을 거쳐 마을단위 에너지전환 프로젝트의 실무를 담당했다. 그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과학적 질문을 던지고 싶진 않았다. 기후악당국가 한국에서 청소년기후활동가로 앞장서는 이들의 마음, 고민, 희망을 공유하고 싶었다. 인터뷰 장소를 실내 회의실로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사진3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가들은 언니, 오빠와 같은 호칭을 쓰지 않고 서로를 이름이나 별칭으로 부른다. 직위와 위계가 없이 동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 모두가 주체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 청소년기후행동

- 청소년 동료들은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
"북극곰 전시회 따라다니고 스티커 사면서 자기만족하는 걸로 넘길 수 없을 만큼 기후위기가 거대한 문제라는 건 분명한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참 막막했어요. 이 분야를 열심히 파서 전문가가 된다 해도 50~60대나 되어야 정부 정책에 자문이라도 넣을 수 있을 테니...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에너지 전환과 관련 있는 곳으로 직업을 찾기 시작했고 일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죠.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청소년 당사자들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고 제 삶을 완전히 이 일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 20대도 청소년기후행동 공식 멤버가 될 수 있나요?
"가입하는 데 나이 제한은 없어요. 20대는 저까지 6명 정도 되고요, 대부분은 13살 초등학교 6학년부터 19살까지 청소년들인데, 위계 없이 수평적으로 일해요."

- 그게 가능한가요? 한 학년만 차이 나도 군기 빳빳이 세우는데? (웃음)
"우리 안에서 언니, 오빠, 선배님, 선생님 같은 용어는 일절 쓰지 않기로 했어요. 누구나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서로가 수단이나 도구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게 우리 모임의 원칙이거든요. 가끔 저한테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는데, 하지 말라고 하죠."

- 그럼 안에서는 보림님을 뭐라고 불러요?
"그냥 보림이라고 하거나 코림이라고..."

- 코림이요?
"제 별명이에요. 제가 울면 코가 빨개진다고. (웃음) 서로 별칭을 부르거나 이름을 불러요. 서로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고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사결정구조도 역할과 책임을 기준으로 나누는 거지, 직책 같은 걸 만들어서 위계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어요. 내부 구조를 그림 그릴 때도 직선도 수직도 아니게 일부러 둥글둥글하게 그리죠."

생활기록부에도 안 들어가는 일을 왜 하냐고요?

청소년기후행동에는 대표도, 사무국장도 없다. 전체 회원은 운영멤버와 네트워크멤버 중에서 자기 조건에 맞게 회원의 유형을 선택할 수 있는데, 운영멤버는 주1회 이상 온라인회의에 참여하고 실무를 담당하는 워킹그룹이다. 전국 35개 지역에 걸쳐 90여 명이 있고, 각자 참여가능한 역할에 따라 캠페인기획팀, 기반팀, 미디어팀, 커뮤니케이션팀, 컨텐츠 디자인팀, 연구교육팀의 6개 팀으로 나뉜다. 회원들이 전국에 흩어진 청소년 학생이다 보니, 소통은 주로 줌과 잔디, 슬랙과 카카오톡 같은 디지털툴을 이용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조건에서도 1년 반 정도의 짧은 기간동안 청소년기후행동은 치열하게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해 3월 15일 첫 번째 결석시위를 벌이며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한 데 이어 5월과 9월, 11월에 결석시위를 했고 올해 3월에는 현재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기후위기에 대한 미온적 대처로 헌법상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환경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서울시교육감을 만나 생태전환교육의 적극적 조치들을 끌어냈고 '21대 국회에 보내는 행운의 편지'를 통해 기후입법의 절박성을 호소했다. 
 

사진4 올해 3월 13일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19명의 이름으로 정부의 미온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질타하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 청소년기후행동

 
- 스웨덴의 17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매주 금요일 등교거부를 하며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FFF: Fridays for Future)를 벌인 게 2018년 8월부터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결성되는데 툰베리 효과가 영향을 끼쳤을까요?
"개인적으로 전기를 아끼거나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 외에, 정부의 정책을 바꿔라, 국회의원들은 입법을 강화하라고 당사자로서 명확히 말할 수 있다는 걸 툰베리가 깨우쳐 준 것 같아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 툰베리로 촉발된 운동이 큰 용기를 준 건 사실이죠. 지금 청소년기후행동은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된 FFF의 한국지부로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전세계 기후행동의 날 동시간대에 같이 시위를 하곤 하죠."

- 툰베리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주목받는 것에 마음이 끌려서 참여하는 경우는 없나요? 대학입시 스펙용으로 생각한다든가...
"그런 친구들은 금방 걸러져요. 결석시위를 할 때 외부에서 온 청소년들한테 발언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하거든요. 한번은 영어 발언을 하고 싶다고 신청한 친구가 있었어요. 한국의 정부에 말하는 시위인데 영어로 발언해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거죠."

- 그래서 뭐랬어요?
"담당자들이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했죠. (웃음) 실제로 그런 경우는 극소수이고 여기서 일하는 청소년들은 모두가 힘겹게 버티고 있어요. 새벽 3-4시까지 회의가 이어지고 다음날 7시에 학교에 가야 되는데, 이게 생기부(생활기록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봉사 시수가 주어지는 것도 아녜요.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은 번아웃이 수시로 되고요, 모든 걸 갈아넣고 해도 변화는 없으니 깊은 우울감에 빠지곤 해요."

- 그런 우울감을 어떻게 극복해요?
"극복 못 해요. (웃음) 저도 어디 가서 발표하다가 감정이 감당이 주체가 안 돼서 그냥 울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창피하지만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런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게 너무 명확해요. 그래도 희망적인 건 아직 소수지만 우리가 얘기하는 것에 공감하고 기꺼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게 유일한 버팀목이죠. 우리끼리 '기후행동 언제까지 할 것 같아?' 얘기를 나눠봤는데 '아마 죽을 때까지 하지 않을까?' 하는 답들이 나와요. 우리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지만 해결이 안 되면 죽을 때까지 가는 거죠."

2050년, 나는 80대 노모를 보살필 수 있을까?

- 청소년들은 그렇게 절박하게 느끼는데 기성세대의 불감증은 여전한 것 같아요.
"기상청이랑 환경부가 7월에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이라는 게 있어요. 이대로 가면 폭염 일수가 3.5배가 되고 감귤농사 한계선이 강원도까지 올라온대요. 제가 2050년이 되면 딱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거든요. 그때 제가 50대인데 생태계가 붕괴하면 먹거리 식량위기가 올 거고, 경제위기가 가중될 거예요. 저는 어떻게든 풀칠이라도 하고 살겠지만 그때 80대가 된 엄마를 지킬 만큼의 여유가 있을까? 그게 엄마가 아니라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 어쩜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떤 상황까지 갈지 상상하는 것조차 공포스러워요."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전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초기인 1880년에서 2012년까지 0.85도 오르는 동안 한국은 1912년~2017년 사이에 1.8도가 상승했다. 2080년대엔 벼 생산성이 25% 이상 감소하고 사과는 더 이상 재배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진다. 폭염은 연간 10.1일에서 35.5일로 증가하고 각종 감염병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폭증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정부는 그린뉴딜을 발표하고 국회결의안을 채택하면서도 구체적인 감축 전략과 로드맵을 명시하지 않았다. 지난 5월, 과학정책 전문연구기관인 독일의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한국의 감축목표는 매우 불충분한 수준'이며 '세계 각국의 기후행동이 한국과 같은 수준으로 이뤄질 경우 지구온도는 4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구온도가 2도 오르면 산호초의 99%가 절멸한다는 게 정설인데 4도가 오르면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멸종1급 생명체'가 될 것이라며 상황의 엄중함을 간절히 호소하지만 여전히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 핵폭탄이 터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가겠어?' 하면서 막연한 낙관론에 기대는 사람도 많아요.
"광화문에서 피켓팅하고 있으면 어르신들 오셔서 구경하고 가거든요. '너희가 복에 겨워서 그러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알아? 애들 선동하지 말아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해는 가요. 열심히 성장을 위해 노력하셨지요. 근데 이게 생존에까지 위협이 되면 바꿔야 하잖아요. 돌아서서 '이 분도 10년 뒤에는 우리와 같이 기후위기 대응을 외치고 있을 거고, 왜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원망하시겠지'란 생각을 하곤 해요. 전 공학을 전공했지만 기술만능주의를 믿지 않아요. 탄소를 포집해서 바다에 저장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다 해결될 거라는 이들도 있지만 그걸 하는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고 안전성과 비용면에서 아직 성공하지 못했잖아요. 공상과학처럼 한 번에 뿅 하고 해결될 수 없고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못해요." 
 

사진5 청소년들이 10년 후, 20년 후 세상에 대해 느끼는 공포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다. 과학의 경고를 정치와 산업이 무시하는 기후악당국가에서 청소년들은 절망한다 ⓒ 청소년기후행동

  
우리를 '기특한 청소년'이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 봐주세요

- 그래도 이렇게 앞장서주는 청소년 활동가들이 계셔서 큰 위안이 됩니다.
"우리를 잘 봐 주시는 건 감사한데, 우리를 '기특한 청소년'으로 한정 짓는 시각에 실망도 많이 했어요.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보지 않고 뭔가 덜 성숙한 존재, 자기가 원하는 잣대에 끼워 맞출 수 있는 애들로 생각하는 시선이 느껴졌거든요. 무슨 집회를 해도 '청소년+시민'으로 연사를 나눠서,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특별한 부류 취급을 하죠. 10대는 앞에 내세우기 좋은 마이크 같은 존재로 여기면서 맨날 기특한 청소년으로만 여기지, 문제의 본질에 도달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린 영웅이 되거나 연예인처럼 뜨려고 이걸 하는 게 아닌데."

- 동료 시민으로서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이럴 때 시민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이 뭘까요?
"플라스틱 줄이고 전기 아끼는 개인 단위의 실천이 다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이젠 거기서 조금 벗어나면 좋겠어요. 모든 국민이 한순간에 불을 다 끄고 고기를 먹지 않고 아무것도 안 쓴다고 하면 변화가 있겠지만, 그렇게 사람을 설득하기도 어렵고 시간도 없잖아요. 정부가 변해야 해요. 시민으로서 국가의 의무를 다하라고 얘기해야 해요. 쓸 수 있는 방법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환경부에 찾아가면, 그분들은 맨날 시민들의 의식을 얘기해요. 시민들이 원치 않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하겠냐고요. 너희들이 결석시위라도 열심히 해보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할 일을 안 하는 거죠."

- 하아! (한숨) 구체적으로 뭣부터 하면 좋을까요?
"민심이 어떻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기후행동과 관련한 온라인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른다든지 청원을 한다든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지지를 보여주셔야 윗분들이 알 것 같아요. 개인의 소박한 실천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얘기하고 요구해 주세요."
  

사진6 기후위기 불감증에 사로잡힌 기성세대의 통렬한 반성과 각성 없이는 청소년세대가 제기하는 생존의 위협은 제거되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보림(좌)과 이진순(우) ⓒ 와글

 
광기 어린 성장 만능의 질주를 계속하는 동안, 우리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수렁에 던져 버렸다. 지금 청소년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바는 성장이 아닌 생존, 이윤이 아닌 안전으로 삶의 모든 패러다임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으로,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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