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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은 오랫동안 군사기지였던 탓에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작년 12월, 용산기지 반환 협상이 시작되면서 오래도록 미뤄졌던 용산기지 공원화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 세기 넘게 군사기지였던 땅이 생태역사공원으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공원에 우리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요? 깨진 유리 조각 맞추듯 오랫동안 용산이라는 공간에 천착한 사람들을 만나 담장 너머 펼쳐질 공간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역사, 생태, 예술, 환경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를 만나 용산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기자말]
부산의 중심에 위치한 서면역에서 15분쯤 걷다 보면 '부산시민공원'을 만날 수 있다. 큰 도로와 철로로 둘러싸여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입구에 보이는 인공폭포와 확 트인 하늘이 공원에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부산시민공원은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가 2010년 반환된 후 만들어진 공원이다.
 
 부산시민공원 남측 출입구 전경.
 부산시민공원 남측 출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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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뿐만 아니라 화성 매향리, 원주, 인천 부평 등 미군으로부터 돌려받는 상당수의 미군기지에는 공원화 계획이 있다. 그중 부산시민공원(옛 캠프 하야리아)은 대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14만 평의 대규모 평지형 공원이라는 점에서 향후 조성될 용산공원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미군기지에 공원을 조성하는 건 보통의 도시공원과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미군기지 내부는 작은 도시에 가깝다. 용산미군기지 사우스포스트의 경우 미군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 병원, 학교, 운동장, 도로, 주거시설이 있다. 벙커와 같은 군사시설이나 일제강점기부터 남아있는 건물들은 역사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것을 모두 없애고 '새롭게' 공원을 만드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둘째, 대부분의 미군기지는 한국전쟁 전후부터 70년 넘게 사용해오면서 지하의 노후된 송유관과 기름탱크들에서 유출된 기름이 토양에 스며들어 있다. 매번 미군기지가 반환될 때마다 오염정화를 둘러싸고 미군과 정부가 책임 공방을 벌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원을 만들 때도 이 기름 오염이 문제가 된다는 것.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을 존치시키고 싶어도, 기지 내의 오래된 나무들을 남겨두고 싶어도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려면 건물과 나무를 들어낼 수밖에 없다.
 
 1949년 경 지어진 미군의 장교클럽 건물을 활용한 공원역사관. 일제강점기 경마장 건설부터 군속훈련소, 미군기지, 공원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1949년 경 지어진 미군의 장교클럽 건물을 활용한 공원역사관. 일제강점기 경마장 건설부터 군속훈련소, 미군기지, 공원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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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군이 떠나고 텅 비게 되는 땅을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건 척박한 도시환경 속에서 생태적 공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군사기지였던 역사와 장소 특성을 살리고,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역사, 생태, 환경오염 등 여러 변수로 이루어진 '반환기지 공원화'라는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과거 사례부터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부산 캠프 하야리아의 공원 조성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공론화를 이끌었던 '하야리아 공원포럼'의 강동진 교수(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지난 8일 만나 이야기 나눴다.

- 부산시민공원은 민간 주도의 공론화와 거버넌스가 돋보였던 곳이다. 하야리아 공원포럼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하야리아 공원포럼이 만들어진 건 2009년이다. 당시 부산시는 기지가 반환되기도 전에 외국 조경가인 제임스 코너에게 스케치를 맡기고 그 도면으로 실시설계를 완료한 상태였다. 현장 조사도 하지 않고 주변 높은 건물에 올라가 스케치를 한 게 실시설계까지 간 거다. '얼루비움(Alluvium)'이라는 낙동강의 퇴적지를 모티프로 성토를 하고 지난 흔적을 모두 다 덮어 버리는 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부산일보> 이병철 기자와 100만평문화공원 운동을 전개하시는 김승환 교수, 일신설계 김승남 소장, 향토사학자 주경엽 선생님과 저, 이렇게 다섯 사람이 모여 공원 설계안에 대한 작은 토론회를 했다. 그 토론회를 계기로 도시, 건축, 조경, 사회복지, 거버넌스 등 다양한 분야의 10여 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하야리아 포럼을 결성했고 전문가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공원포럼에서 세미나, 심포지엄, 해외사례 답사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부산일보>에서 매달 신문 전면에 실어주면서 시민들에게 이슈를 알리고 부산시를 설득하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하야리아 공원포럼의 활동과 시민사회 그리고 부산시의 결단으로 지방 도시 최초로 라운드테이블도 해냈다. 전문가와 일반시민, 각종 이해당사자 30~40명이 모여 공원 조성 방향에 대한 공론화를 이어나갔다. 사실 실시설계(문건과 도면을 보고 직접 건설할 수 있도록 항목별로 상세하게 설계하는 일 : 표준국어대사전)도 끝난 상황에서 계획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는데, 지속적인 공론화 끝에 설계안 일부를 변경하도록 부산시를 설득할 수 있었다. 제임스 코너가 직접 설계 변경을 시행하도록 하여 그가 부산에 와서 직접 변경 작업을 주도했다."
 
 하야리아 기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던 380여 개의 건물 중 24개(주황색 표시)만 현재 공원에 남아 있다. 공원 곳곳에서 미군 기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야리아 기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던 380여 개의 건물 중 24개(주황색 표시)만 현재 공원에 남아 있다. 공원 곳곳에서 미군 기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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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캠프 하야리아에서는 90년대부터 부산땅 되찾기 운동, 하야리아 시민공원 추진운동 등 부지를 반환받고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활발한 시민운동이 전개되었다.
 부산 캠프 하야리아에서는 90년대부터 부산땅 되찾기 운동, 하야리아 시민공원 추진운동 등 부지를 반환받고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활발한 시민운동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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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야리아 공원포럼이 당시 주장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
"먼저 남겨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부산시의 설계안은 캠프 하야리아의 건물 380여 동 중 단 1개만 남기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지 내의 경마장, 군사시설도 모두 역사자산으로 보았기 때문에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남겨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하지만 지하의 기름 오염 때문에 많은 건물은 철거해야 했고, 결국 25여 개소 건물을 남기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원래 저의 제안은 공원 설계를 따로 하는 게 아니라 도시처럼 짜인 군부대 안에서 정말 빼내야 하는 공간 일부만 제거하는 방식으로 공원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남는 곳이 광장이 되고 운동장, 잔디밭이 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실시설계가 다 진행된 후 뒤늦게 제안하다 보니 공간이 가진 기본적인 패턴만 남기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또 하나의 주장은 시민들이 운영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외의 여러 공원을 돌아다녀 보니, 운영이 잘되는 공원 중에 관이 관리하는 곳은 한 곳도 없더라. 뉴욕 하이라인 공원화를 이끌고 공원 운영까지 맡아서 하는 민간단체 '하이라인 친구들'과 같은 시민조직이 운영했으면 했다. 하지만 하야리아 공원포럼 구성원들도 각자 직업이 있는 상황이었고 마땅한 시민조직이 없어 결국 부산시설관리공단이 운영 주체가 되었다."
 
 미군이 사용하던 하사관 숙소는 60여 채가 있었으나 그중 12채를 보존하여 남겨 놓았다. 하사관 숙소를 리모델링하여 문화 예술촌으로 갤러리와 작가 공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군이 사용하던 하사관 숙소는 60여 채가 있었으나 그중 12채를 보존하여 남겨 놓았다. 하사관 숙소를 리모델링하여 문화 예술촌으로 갤러리와 작가 공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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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초기 만들어져 미군의 숙소로 사용된 ‘퀸셋 막사’. 5동 정도 남아서 편의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전쟁 초기 만들어져 미군의 숙소로 사용된 ‘퀸셋 막사’. 5동 정도 남아서 편의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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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했으니 6년의 세월이 지났다. 공원이 완공된 이후 평가는 어떠한가?
"부산시민공원은 위치나 규모 면에서 서울의 용산 같은 곳이다. 부산 도심에 14만 평의 대규모 평지형 공원은 정말 귀중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땅의 잠재력에 비해 현실은 큰 근린공원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확 트인 잔디밭이 있고 넓고 시원해서 시민들은 이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제가 보기엔 허하고 밀도가 너무 낮다. 원래 있었던 것에서 시작하지 못하고 거의 다 새로 만들다시피 하다 보니까 가지는 한계다. 또 부산에 땅이 부족하다 보니 공공 개발을 할 때 공원 부지를 자꾸 편입시키려고 한다. 이미 지상 주차장, 부산아트센터가 들어올 계획이 있다."

- 결국 기름 오염이 건물이나 수목 존치에 있어 중요한 변수인 것 같다. 역사성과 환경 모두 지킬 방법은 없을까?
"독일에서는 공장지대, 광산지대의 오염을 긴 시간을 두고 자연정화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원형을 깨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환경보전법상 일시에 시설을 들어내고 흙을 치환하는 방식으로 공원을 만든다. 그렇게 하면 그 공간의 장소성이 모두 깨져버린다. 부산시민공원도 하야리아 공원포럼이 절충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건물 하나 남기고 모두 녹색으로 바뀌었을 거다. 그게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 땅이 가진 과거의 기억이 모두 말살되어 버리는 것이다. 생태공원을 기본으로 조성하되, 기지 안의 흔적과 기억을 최대한 남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공원 이름을 두고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들었다.
"캠프 하야리아의 공원 명칭에 대해서 시민 공모를 했다. 그런데 '오이소 공원'이 표가 가장 많이 나온 거다. 부산 자갈치 시장의 슬로건이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인데 거기서 따온 거다. 하야리아 공원포럼에서는 당연히 하야리아 공원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야리아'(Hialeah)는 미군 초대 사령관의 고향 지명이자 인디언 말로 초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시민운동가들은 이를 두고 미군 잔재이고 영어를 쓰면 안 된다고 반대를 했다. 그래서 하야리아 공원 이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과정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소 '부산시민공원'으로 공원 명이 선정되었다."

- 용산공원의 경우 부산의 사례와 달리 관주도로 공론화가 이뤄질 예정이다. 국토부는 내년부터 300명의 국민참여단을 구성하여 용산공원 설계계획에 대한 국민권고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공론화 과정에 대해 제언이 있다면?
"용산공원은 국가공원으로 지정되어 국가 예산으로 공원이 조성된다. 서울에 있긴 하지만 용산구나 서울시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공원이므로 공론화 작업을 전국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사실 용산뿐만 아니라 춘천이나 부평, 부산 등 전국 각지에 미군기지가 공원이 되는 곳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책은 없는 실정이다. 지역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 수도 있다. 서울에 용산공원을 만들어주는 대신, 지방에 대해서는 도시공원일몰제로 사라져가는 공원을 지키는 데 정부가 재원과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등 지역 간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에 집중되는 재원을 나눠서 전 국민들이 더 많은 공원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색연합 홈페이지(www.greenkorea.org)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용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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