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모든 뉴욕> 영화 포스터

▲ <내 앞의 모든 뉴욕> 영화 포스터 ⓒ Wheelhouse Creative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다. 5개 자치구인 브롱크스, 브루클린, 맨해튼, 퀸즈, 스태튼 아일랜드와 수백 개의 거주 지역에 약 850만 명이 살고 있다. 면적은 서울의 두 배에 달하며 길은 6천 마일이 넘는다. 다리, 해변, 공원, 묘지 등을 합치면 총 8천 마일(1만 2800km) 이상이다. 세계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라 불리는 도시답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소개하는 책과 각종 영상물도 부지기수로 많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 앞의 모든 뉴욕>는 뉴욕을 소재로 삼은 여타 영상물과 결이 다르다. 주인공인 30대 후반 남성 맷 그린은 뉴욕의 모든 골목과 거리를 모두 걷겠다는 일념으로 물병과 스마트폰만 갖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6년째 걷고 또 걷는 중이다.

맷의 동료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제레미 워크맨은 3년여 시간을 함께하며 현대 도시의 <모비 딕> 또는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걷기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맷의 목표는 단 하나다.

"도시 전체를 보겠다는 것 외엔 특정 목적이 없어요."
 
<내 앞의 모든 뉴욕> 영화의 한 장면

▲ <내 앞의 모든 뉴욕> 영화의 한 장면 ⓒ Wheelhouse Creative


맷은 뉴욕의 모든 골목과 거리를 '빨리' 걷지 않는다. 최단 시간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건 걷다가 우연히 마주하는 '놀라운' 순간이다. 그는 걸을 때 선글라스와 헤드폰을 끼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맷은 "뉴욕에는 새소리가 들리는 곳이 많아요. 도시에서 흔치 않은 경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치니까 못 듣는 경우가 많죠"라고 말한다. 눈과 귀를 온전히 열은 상태로 걷다가 만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과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맷은 일상과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걷다가 아름다운 풍경, 거리의 이정표, 개성 가득한 벽화, 재미있는 가게 이름, 길가의 식물들을 만나면 사진을 찍는다. 만나는 사람들에겐 인사를 건네고 때론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일도 잦다. 그들의 모습과 삶 역시 사진으로 담아 추억으로 남긴다. 그리고 하루의 걷기가 만든 순간이란 '사적 역사'엔 공간이 지니는 '공적 역사' 등 다양한 주변 지식이 덧붙여져 블로그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세상에 유용한 일이 많은 데 유독 왜 이걸 하냐?" 맷이 주변 사람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집을 포기하고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며 종일 걷기만 하는 그를 이해하질 못 한다. 일부는 책을 쓰거나 투어가이드를 하는 등 걷기로 얻는 지식과 유명세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속셈이라고 의심한다. 실제 그는 걷기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수익을 낼 생각도 없고, 블로그가 아닌 고양이 봐주기 등으로 돈을 버는 상황이다.
 
<내 앞의 모든 뉴욕> 영화의 한 장면

▲ <내 앞의 모든 뉴욕> 영화의 한 장면 ⓒ Wheelhouse Creative


맷의 걷기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토목기사를 그만둔 맷은 카트에 짐을 싣고 길가에 캠핑하며 5개월간 도보로 미국 횡단을 시작했다. 단지 직장 생활에 지쳐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당시 맷 자신이 자전거 사고로 크게 다치고 동생이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삶의 가치관이 변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때의 경험이 전환점이 되어 현재의 삶에 충실할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삶을 미룰지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것이다.

영화 중반부엔 다섯 개의 소제목 <펜트하우스>, <비교노트>, <영화관에 가다>, <첫 무화과>, <퍼즐>이 나온다. <펜트하우스>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 <비교노트>는 함께 걷는 사람과 서로 느낌 점을 나누는 재미, <영화관에 가다>는 걷는 것으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 <첫 무화과>는 느리게 걸으면서 관찰하는 즐거움을 보여준다.

마지막 <퍼즐>은 맷의 여정을 함축하는 단어다. 그는 "이 걷기의 목표는 끝내기에 있지 않아요. 목표는 종료로 가는 과정 동안 일어나는 모든 걸 체험하는 거죠"라며 "제가 보고 있는 마구잡이 자료들은 나중에는 퍼즐처럼 맞춰지게 될 겁니다. 시작할 때 퍼즐이 어떤 모양인지 알 필요는 없어요"라고 설명한다. 마치 정답을 모른 채로 살았던 삶이 나중에야 비로소 일상의 무수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퍼즐로 맞추어지듯이 말이다. 시작과 끝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기쁨과 애정으로 가득한 퍼즐을 만드는 과정이다.

<내 앞의 모든 뉴욕>엔 뉴욕의 5개 자치구의 모든 블록, 공원, 해변, 심지어 묘지까지 모두 걷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행 중인 한 남자의 열정이 담겨 있다. 그 속엔 도시에 새겨진,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공적, 사적 역사뿐만 아니라 일상의 아름다움, 관계의 소중함 등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수박겉핥기 식의 정보 나열에 불과한 '가짜' 뉴욕 이야기가 아닌, '진짜' 뉴욕 에세이라 부를 만하다. 제12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상영작.
내 앞의 모든 뉴욕 다큐멘터리 서울국제건축영화제 맷 그린 제레미 워크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