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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댓바람에 마당에 나오니 제법 쌀쌀해진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정신을 깨운다. 차가운 공기와는 다르게 햇살은 더없이 포근히 내려 피부를 감싸는 시간이다.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에 몸이 움츠러드는 순간, 기억 저멀리 꼭꼭 숨어있던 석빙고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이유도 없고, 연관도 없이 정말 뜬금없는 생각에 '피식'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러다 오늘은 석빙고를 찾아가 보자는 생각에 서둘어 준비하고 차에 올랐다. 출발하면서도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석빙고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었다.

낙동강 강변도로를 따라 안동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안동댐 보조댐을 지나고 얼마 가지 않아 월영교 공영주차장이 보인다. 보조댐 반대쪽에도 공영주차장이 있지만 석빙고를 가는 길에 월영교를 지나기로 하고 주차를 했다.

토요일 오전임에도 벌써 월영교 입구 쪽에선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월영교 입구에서 호수를 바라보았다. 바람조차 숨죽이는 고요한 물결 위로 고기비늘 반짝이듯 햇살이 은빛 비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눈부심에 살짝 고개를 돌리자 길게 늘어선 월영교의 난간과 다릿발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월영교
 월영교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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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나무다리를 이야기하면 당연히 거론되는 것이 바로 월영교(月映橋)다. 이 다리는 바닥과 난간을 목재로 만든 인도교로서 폭은 3.6m, 길이는 387m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인 것이다. 안동댐 본댐 아래에 보조댐이 있고, 본댐과 보조댐 그 중간쯤 월영교가 있다. 다리의 명칭은 달과 연관이 많은 이 지역의 유례에서 착안하여 작명한 '월영교(月映橋)'가 주민 공모에서 선정되었다.

안동댐 유역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명칭이 '달골(月谷)'이라고 한다. 월영교를 건너면 바로 '엄달골' 마을과 연결되고, 산 중턱에는 옛 선비가 시를 읊었던 '월영대(月映臺)가 옮겨져 있다.

이름에서 유추되듯이 밤이면 고요한 호수 위를 달빛이 비추어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이러한 풍경을 알기에 이곳 주민들은 낮에는 시원한 호수 위를 건너는 기분을 만끽하고, 밤이면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월영교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에메랄드빛 호수와 깊어가는 가을만큼 물들어가는 은행나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호수 위를 잔잔하게 흐르는 바람이 어느새 다리 위로 올라왔는지 한껏 품은 차가운 호수의 냉기를 귓가에 불어넣고 있다. 가을 풍광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길을 재촉한다. 다리 양쪽으로 보이는 호수의 잔잔함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 한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베스가 눈에 들어온다. 베스는 외래어종으로 포악하고 천적이 없어 토종 물고기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베스가 서식하는 지역의 토종 물고기는 씨가 마른다고 하니 우리나라 생태계를 얼마나 교란시키고 있는지 미뤄 짐작이 가능할 것 같다. 안동댐에도 외래종으로 토종 물고기 개체 수가 줄어 매년 치어를 방류하는 행사를 한다고 들었다.

베스를 뒤로 하고 월영교를 건너자 흙길이 나타난다. 요즘 어디를 가나 포장도로 뿐이라 흙길이 반갑다. 흙을 밟는 기분 좋음은 포장도로를 걷는 기분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좋은 기분도 잠깐이다. 불과 얼마 가지 못하고 석빙고로 향하는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다소 가파르게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서 세어보니 64개의 계단이 돌과 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월영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흙길과 석빙고로 올라가는 계단
 월영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흙길과 석빙고로 올라가는 계단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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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자연 그대로의 돌을 흙과 조화롭게 이어 계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계단 끝에 도착하자 묘지처럼 봉긋이 솟아오른 석빙고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듯 흙길이 반질반질 윤기가 흐를 정도다. 석빙고에서 바라본 월영교는 또 다른 기분이 든다. 공영주차장에서 바라본 다리는 하부에서 위로 바라보는 기분이었으나, 석빙고에서 바라본 월영교는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모습이라 또 다른 모습이다.
 
 석빙고 정면 모습
 석빙고 정면 모습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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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사각형의 큰돌로 만들어진 석빙고 내부의 모습
 직사각형의 큰돌로 만들어진 석빙고 내부의 모습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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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석빙고 앞에 섰다.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 두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다. 안동 석빙고(보물 제305호)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왕에게 진상하기 축조되었다고 한다. 조선 영조 13년(1737년)에 이매신이 현감으로 부임하여 3년간 재임하던 중 녹봉을 털어 석빙고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72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몰리자 1976년 도산면 서부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석빙고 입구로 다가가자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게 막혀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막아 놓은 듯하다. 다만 내부에 거울을 두어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곳은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직접 보지 못하고 거울을 통해 봐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내부로 들어가 자세히 살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동 석빙고 내부를 살펴보면 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가운데로 경사진 바닥에는 배수구가 있어 바깥으로 물이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빙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크게 다듬은 돌들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 벽과 천장을 만들었다. 여기에 빙실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환기 구멍을 3개 만들었다. 석빙고는 한겨울의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기 위한 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 중 하나인 것 같다.

석빙고를 지나 몇 걸음 더 가면 '선성현 객사'가 보이는데 객사 입구 왼쪽에는 '월영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라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월영대도 안동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원래는 월영대라 적혀있는 바위 바로 위에 '금하재'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하재는 이곳으로 옮겨지지는 못한 듯 '월영대'라 적혀 있는 바위만 이곳에 남아 있다.
 
 월영교 가운데 쉴 수 있는 누각이 있다
 월영교 가운데 쉴 수 있는 누각이 있다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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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대 바로 위에 있는 선성현 객사는 조선 숙종 38년(1712년)에 예안현감 김성유가 고쳐 지은 건물로, 조선시대 객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객사 중앙에 위치한 '정당'에서는 초하루와 보름에 전패를 모시고 궁궐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정당의 양쪽은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는 장소였다. 선성현 객사도 안동댐 건설로 1976년에 도산면 서부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선성현 객사, 조선시대 객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선성현 객사, 조선시대 객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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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이곳에 위치해 있는 초가토담집, 초가도토마리집 등 많은 민속문화재가 안동댐의 건설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겨지는 수난을 겪었다. 문화재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면 그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개발과 문화재 보존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서로 상충되어 어쩔 수 없이 포기되는 쪽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안동댐으로 수장되어 보지 못할 수도 있었을 문화재가 이곳에 옮겨져 보존된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한정된 시간이라 민속촌과 세계물포럼기념센터, 안동 문화관광단지 등 더 많은 곳을 돌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나마 민속촌은 선성현 개사를 지나 내려오면서 살짝 맛보기는 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월영교에는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 평소보다는 적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거리두기가 다소 어려울 정도였다. 방문자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호수의 모습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호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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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로 늘어선 은행나무에 노랗게 물든 가을이 발길을 붙잡는다. 약속 시간으로 마음은 급한데 발길은 곱게 물든 은행나무 길로 향하고 있다. 아름다움에는 늘 반전이 있다. 풍경에 시야를 빼앗겨 바닥을 보지 못한 채 걷다가 그만 은행을 밟아 버렸다. 고향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려한 가을에 시선을 맡기고 기분을 만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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