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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림을 주변에 보여주면 "전시회 한번 해야죠!"라고 권하지만, 어쩐지 그림을 그리는 입장에서는 선뜻 용기를 내기 어렵습니다. "내가 미술대를 나온 전문 화가도 아닌데, 일상에 틈틈히 그린 그림일 뿐인데, 전시회를 열기에는 어쩐지 용기가 안나..." 대부분은 이 선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용기를 냅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시민교육을 기획해온 주은경 원장이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기획한 미술교육프로그램의 학생으로 직접 참여해 그린 그림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엽니다. 

작가는 참여연대 부설 시민교육기관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교육기획자이자 학생으로서 서울 곳곳을 다니며 그리는 <서울드로잉>과 풍경, 정물, 인물을 그리는 <미술학교>에 10년 동안 참여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가는 매일 다니는 동네공원 산책길, 홀로 여행길에서 그린 풍경화, 오래 된 신발 등 소중한 물건을 그린 정물화, 가족 친구들의 인물화를 그렸습니다. 그가 평범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전시를 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의외로 '내려놓기' 였습니다.

"잘 하려는 마음을 버리니 그림을 놀이로 즐길 수 있고 오래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림은 참 좋은 친구입니다. 그림을 통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삶을 즐기는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10년간 그려온 작품으로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10년간 그려온 작품으로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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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작품은 40점입니다. 10년간 공들여 그린 그림 중에서 골랐습니다. 서울 북촌, 남원 실상사, 목포의 골목길, 벨기에의 수도원, 길을 걸으며  그는 곳곳에서 풍경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풍경이 말했습니다. "나를 그려주세요". 작가가 말하는 그림이야기를 만나볼까요. 

풍경이 말한다  "나를 그려주세요" 
 
 <바다가 보인다, 목포 다순구미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38×45, 2016
 <바다가 보인다, 목포 다순구미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38×45, 2016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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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동백꽃이 한참이던 2015년 4월 초, 느티나무의 역사답사모임 '굴렁쇠'와 목포 여행을 갔습니다. 목포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후배가 이곳저곳 근대 역사문화유적지를 안내했고 거기서 다순구미 마을을 만났습니다.

'다순구미'란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온금(溫錦)동으로 불립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이 동네는 일제 개항시대, 목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동네라고 합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정성껏 가꾼 화분들이 정겨웠습니다.

막상 들어가 산다면 불편할텐데, 나의 이 느낌은 뭐지? 그때 찍었던 사진을 찾아 1년 후 그림을 그리니, 한 집 한 집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따스함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빨래가 되고 싶다1> 종이에 수채, 32×24cm, 2011
 <빨래가 되고 싶다1> 종이에 수채, 32×24cm, 2011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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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가 휘날립니다. 바람에, 햇빛에 빨래가 '바짝' 마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이 만져지고 햇살이 내 손 안에 있습니다.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빨래의 움직임. 빨래가 휘날릴 때, 그림자도 춤을 춥니다. 저 펄럭이며 춤추는 그림자를 붙잡고 싶습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서울드로잉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따뜻한 봄날의 오전 햇살을 받으며 맘에 드는 북촌의 한옥집을 그릴 때였습니다. 한 자리에 앉아 2시간 그림을 그리니 햇살의 움직임이 황홀했습니다.

그림자가 시시각각 변하고, 나무 그림자가 움직입니다. 그걸 그리려고 집중하는 나. 스멀스멀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한옥집 창문 하나, 창살 하나, 나무 기둥을 하나둘 세어가며 스케치를 할 땐, 마치 내가 목수나 건축가가 되어 집을 짓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수녀원에서 마주한 풍경, 나는 완전히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그림은 10년 전 '풍경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 깊은 충만감을 처음 경험했던 작품입니다.
 
 <빨래가 되고 싶다2> 캔버스에 아크릴,32×41cm,2020
 <빨래가 되고 싶다2> 캔버스에 아크릴,32×41cm,2020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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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에 펄럭이는 빨래를 보면 늘 살짝 '맛이 간 사람'이 됩니다. 햇살과 바람에 물기를 빼고 바싹 말리고 싶습니다.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저 하늘과 함께.
 
 <오래된 내 신발> 캔버스에 아크릴/2015/32×41cm
 <오래된 내 신발> 캔버스에 아크릴/2015/32×41cm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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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발. 아마도 1999년에 샀을 겁니다. 2000년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35일간의 실크로드 여행할 때도 이것을 신었습니다. 그후 밑창을 몇 번이나 바꿔가며 신었습니다. 구둣가게에서 수선을 포기할 때까지. 그런데도 난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습니다. 물건과 함께 한 '나의 시간'을 그린 그림. 함께 이 구두를 사러 갔던 친구도 생각납니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그 친구. 잘 지내고 있지요?
 
 <Sound of Silence, Madonna House> 펜/2014년/32×24cm
  펜/2014년/32×24cm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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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고요함, 이 깊은 맛을 아시나요? 벨기에 남부 시골마을, 가톨릭 영성공동체 마돈나하우스의 지부. 이곳 스태프로 일하는 후배 덕분에 1주일 동안 산책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주변은 녹색 구릉지대가 펼쳐지는 곳. 그 넓고 푸른 평원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집채 만한(^^) 소들이 풀을 뜯어먹고, 평원과 낮은 언덕이 끝없이 연결되어 깊은 호흡을 내쉬게 됩니다.

짹짹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어느 오후, 과거 수녀원이었다는 이 공동체 건물을 그렸고, 한국에 돌아와 엽서 100장을 만들어 우편으로 보냈는데 1년 후, 엽서를 더 보내줄 수 있는지 연락이 왔습니다. "Why not? sure!" 기꺼이 추가 인쇄를 해서 보내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자랑스럽습니다.
 
 <기도하는 마음> 종이에 수채/2013년/32×24cm
 <기도하는 마음> 종이에 수채/2013년/32×24cm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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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로 꼭 찾아가야 하는 장소가 있나요? 인터넷, 유튜브로 많은 욕구와 욕망을 해결하는 시대. 스스로 내 발로 어디를 가는가, 이것은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줍니다. 절에서 소요하던 어느 봄날 저 색색의 신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알았습니다. 각자 돈 주고 산 신발인데도 어쩌면 저렇게 다 다를까?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법당 안에서 기도하는 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잘 그리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해요

그는 오십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은 늘 재미 없었습니다. 그러다 삶의 몇몇 순간에서 그림그리기가 즐겁다는 인상을 몇 번 받았고, 그림 수업을 받으면서 그림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그림들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개인전을 가진 마음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감회가 어떤지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 잘 그리려는 마음을 내려 놓으면 그림이 즐겁죠"
 " 잘 그리려는 마음을 내려 놓으면 그림이 즐겁죠"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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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10년간 꾸준히 그려왔는데요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보통사람들 못 그리고 잘 그리고 평가 받는 걸 두려워해요. 그래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이 즐겁지 않았던 거죠. 선생님들께서 지적을 많이 하시잖아요. 우리는 잘해야 한다는 것에 억눌려 있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 나의 선, 나의 색깔을 즐기면 됩니다. 누가 우리의 자신감, 예술가적 힘을 빼앗았을까요? 자신을 믿으세요.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스스로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 그림 그릴 때 어떨 때가 가장 즐거우세요?
"풍경과 대상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냥 놀러갔다가  앉아서 풍경이 아름답다 느낄 때랑,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 하나 그릴 때랑은 느낌이 완전이 다른 거죠. 자세히 보면 돌담의 돌멩이 하나 하나 색깔이 다 달라요. 그곳에서 느낀 햇살과 바람을 그림에 담죠. 그때 첼로 음악이 들렸다 하면 그림을 볼 때마다 그 음악이 떠오르죠." 

- 첫 개인전인데, 평범한 이들로서는 매우 벅찬 경험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저는 일단 시도 해요. 다른 사람들이 주은경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어, 이렇게 용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작품과 관객이 좋아하는 작품이 다르다는 거예요. 전시에 걸까 말까 망설였던 작품을 관람객들이 좋아해주세요. 아, 사람마다 다양한 생각이 있는거구나 느껴요. 너무 기분좋죠."

- 이번 전시의 또다른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10월 말에 정년퇴직을 합니다. 그림 전시회를 통해서 정년퇴직을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여러 사람을 초대하고. 함께 했던 추억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어요. 역사 답사를 갔던 곳, 벗들과 여행했던 곳, 복잡한 마음을 씻고 위로를 얻었던 곳, 모든 삶의 기록이 있어요. 친구같은 그림들이에요. 그림은 정말 나의 따뜻한 벗입니다." 

- 코로나 시대 그림 그리기,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함께 배운다거나, 동호회 모임도 어렵고요. 
"저는 <그림자> 라는 그림 동호회 모임을 하고 있어요. 매주 작업한 그림을 온라인에 올리고 있어요. 동호회 벗들끼리 서로의 작업을 지켜보며 격려하죠. 코로나19로 때문에 사람들끼리 만나지 못하고 어디가서 배울 수 없는 건 답답한 일입니다만,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어요. 일주일에 한 번 올리는데, 꼭 완성작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보여주며 얘기 나눠보세요.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당신 삶의 빛깔, 당신의 예술

여기 빈 종이가 있습니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그릴까. 흰 종이를 보면 그저 두렵습니다. 그러나 선 하나를 긋고, 다음을 잇고 형태를 만들고 마침내 흰 종이를 가득 채웁니다. 그때의 성취감은 큽니다.

1점의 그림 작품도 10년 간의 작업도, 40점의 작품도 모두 선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기 두려운 마음, 내가 전시를 할 정도일까, 라는 마음은 잠시 옆에 세워두시고 지금부터 시작해 보세요. 

많은 예술가들은 '삶이 예술이다'라고 합니다. 살아온 만큼 사물이 보이고, 풍경을 느끼고, 그 느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림일 수도 , 춤일 수도,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삶의 빛깔을 만들어온 우리 모두는 예술가입니다. 
 
< 주은경 개인전 '나의 다순구미 마을' >
* 전시기간 :  10월 30일(금) 까지.  
   월-목 09:30-21:00 / 금 09:30~17:30 / 토 12:30-19:30
* 장   소 :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 & 지하 느티나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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