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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는 회원 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페미워커클럽>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함께 감상하고, 성평등 노동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일하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비평한 문화의 이야기를 '페미워커의 모두까기'라는 제목으로 비정기 연재한다.[기자말]
2020년도 10월 21일,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이 모였다. 절반은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모여 앉았고, 절반은 각자의 공간에서 함께 보기 기능을 통해 온라인에서 만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하향된 시대상이 우리네 모임에도 반영됐다.
 
우리가 함께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은 어떤 정치 드라마보다 더 격정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진짜'다. 미국에서 정치에 도전했던 여성들의 실제 모습이 담겨있는 생생한 이야기이다.
    
워싱턴 D.C "새로운 국회 회의"에 참석한 여성 출마자들 -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중에서
 워싱턴 D.C "새로운 국회 회의"에 참석한 여성 출마자들 -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중에서
ⓒ 넷플릭스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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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동하기 위해서 출마합니다. 우리는 뭔가를 주장하려고 출마하는 게 아닙니다. 좌파가 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출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기 위해서 출마하는 것입니다." -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이 여성들은 왜 정치를 시작했을까.
 
여성들이 미국정치판에 보라색 출사표를 던졌다. 2018년, 529명의 여성이 하원의원 출마했다. 전국에 출마할 여성들이 '정의민주당'이라는 민주당 내 조직에 모였다. 많은 민주당 기득권층이 예비 선거에서 도전을 받았다. 이런 미국을 바꾸기 위해, 미국의 국회를 바꾸기 위해 여성들이 풀뿌리 정치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뉴스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이 민주당 예비선거를 어지럽게 만들 것'이라고 떠든다. 
 
80%가 넘는 국회의원이 남성이라는 점은 한국 국회와 미의회의 공통점이다. 다른 점은 많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당제와 양당제이다. 2020년 10월 21일 기준 대한민국 중앙선관위에는 44개의 정당이 등록되어 있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뿐인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어느 쪽이 풀뿌리 정치가 싹 틔우기 좋은 환경일까?
  
남미 이민자 2세·28세 여성 후보, 하원의원이 되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아래 코르테스)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하원의원 선거를 시작했다. 비영리활동을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웨이트리스 일을 시작했다. 버니 샌더스가 2016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왔을 때 참모로 활약했다는 그가 이번엔 직접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상대는 무려 10선 현역의원으로 미국 민주당 내 서열 4위인 조 크롤리이다. 14년 동안 당내 경선에 경쟁자가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이 직업 덕분에 경선 준비가 많이 됐어요. 하루에 18시간 서 있는 것도 익숙해요. 뜨거운 것도 잘 참고, 예의 없는 사람들도 잘 상대하죠. 제가 하는 일은 사람들과 항상 대화하는 거예요. 우리 지역구의 주민들과요. 이게 바로 풀뿌리 선거운동의 핵심입니다."
 

뉴욕의 하원의원이 10선 조 크롤리 대신 코르테스로 바뀌면 지역주민들은 권력자를 잃고 손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닐까? 지역주민들의 질문에 코르테스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현재의 권력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를 위해서 권력을 쓰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에요."
 
결국 코르테스는 435명 미의회 하원의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하게 됐다. 투표율 82%, 득표율 57.2%. 이례적인 기록으로 남미 이민자 2세, 28세 여성 후보가 당선됐다. 소위 말하는 '이변'이었다. 
 
대한민국 여성정치, 이변이 가능할까?
 
당선 후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 찾아간 AOC -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중에서
 당선 후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 찾아간 AOC -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중에서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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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인의 성폭력, N번방, 손정우 미국 송환 문제, 조두순 출소 등 한 멤버는 요즘 한국사회의 굵직한 이슈가 모두 '젠더 이슈'라고 꼬집으며 여성들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80%가 넘는 기록적인 투표율을 보며 그동안 뉴욕의 시민들이 얼마나 변화에 목말랐을지 짐작이 되기도 했다. 그들의 갈증을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역시 풀뿌리 지역운동이 가진 힘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시 선거는 수작업.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정치라는 것이다. 
 
페미워커클럽에는 코르테스가 의회에 입성하여 기존의 정치인들이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던 곳을 건드리고 있다는 의정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생각의 방식, 문화, 인종, 각자 처한 문제와 해결방법이 각각 다른 많은 여성이 정치에 도전하는 모습을 횡단적, 종단적 여러 층위에 걸쳐 잘 보여준 다큐였다는 감상을 공유했다. 
 
대한민국 땅에서도 코르테스가 일으킨 것과 같은 '이변'을 보고 싶다. 임기 시작을 앞둔 코르테즈는 다큐 말미에서 미의회 앞 벤치에 앉아 1명의 성공을 위해 100명이 시도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아득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성후보가 얼마나 힘든지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앞으로는 달라질까? 한국 정치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을까?

정치에 도전하는 여성들

정치에 도전하는 여성들을 응원해왔다. 청년여성정치인 장혜영 의원, 류호정 의원의 활약을 보며 매번 고민했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정치에 더 많은 여성들이 뛰어들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다. 그 결과는 나 또한 100명 중 한 명이 되는 것.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기를 바라며 지난달, 용기를 내어 한 정당의 당직선거에 도전했다. 감사하게도 경기도의 당원들에게 표를 받아 전국위원이 되었다. 
  
이번 당직선거는 많은 여성 정치인을 탄생시켰다. 당내 의사결정기구인 전국위원회는 52명 선출직 전국위원 중 절반이 넘는 27명의 여성이 당선되었다. 광역시도당 지역위원장 16명 중 절반이 여성이다. 이례적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다른 당은 어떨까? 이 변화는 특정 정당만의 흐름일까, 대한민국 전체의 흐름일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차곡차곡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 '여성들의 의리는 모래알'이라는 옛말은 그야말로 옛말이다. 여성들은 말을 뱉어내고, 쌓아내며 현생과 현실에서 정치를 해내고 있다. 
 
여성정치가 만들어내는 미래

코르테스가 여성인 조카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멤버들이 많았다. 어린 조카와 함께 시민들에게 전단을 건네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지만, 지나가는 시민 모두가 코르테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면 코르테스는 조카에게 말했다.

"10번 시도해야 1번 이기는 거야. 그럼 이기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조카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자라게 될까? 우리가 더 많은 여성청소년, 여성 어린이에게 이런 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조카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AOC -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중에서
 조카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AOC -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중에서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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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 물결에서 여성들의 분위기는 다음 세대로도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전 세대와 다른 세상을 살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우리와 또 다른 세상을 살며 더욱 진보적인 요구를 우리에게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바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 
 
누군가는 이 도전의 결과가 코르테스 한 명의 당선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틀렸다. 이 도전의 결과는 희망이다. 함께 도전했던 529명의 여성, 그 여성후보들의 선거를 도왔던 수천 명의 사람들, 그들에게 표를 보낸 수만 명 사람에게까지, 이 도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의 불꽃을 심었다. 다큐멘터리의 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던 노래가 의미심장하다.
 
"이 땅은 당신의 땅. 이 땅은 나의 땅. 이 땅은 당신과 나를 위한 거야." 

* 페미워커의 모두까기 연재기사 모음 : http://kwwnet.org/?p=12944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보라 님은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멤버 입니다. '페미워커클럽'은 매달 1-2회 온/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영화·전시·공연, 북세미나 등을 함께 즐기고 비평합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은 한국여성노동자회 이메일(kwwa@daum.net)로 문의해주세요.


태그:#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넷플릭스, #오카시오, #류호정, #장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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