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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토요일, 금오름나그네들이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족은사슴이오름과 갑선이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금요일에 비가 오지 않은 것으로 예보했으나, 아침부터 비가 살살 오기 시작했다. 정오 때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비상을 걸었다. 비상! 비상! 삐삐삐... 비가 자꾸 옵니다. 오름탐방을 토요일로 미뤄야겠습니다. 토요일 오전이 좋아요, 오후가 좋아요? 금방 연락들이 왔다. 오후가 모두 좋단다.

오후 3시 가시리슈퍼 앞에서 4부부 8명 중, 7명이 모였다. 서울서 어제 귀도한 여성은 스스로 며칠간 자가격리한다고 참석 못했다. 제주에 살다가 육지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스스로 격리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들은.
 
소록산은 대록산 옆에 있다. 대록산에 가려 존재감이 덜하나 나름 개성을 지녔다.
▲ 대록산과 소록산 소록산은 대록산 옆에 있다. 대록산에 가려 존재감이 덜하나 나름 개성을 지녔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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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록산 주차장에 주차하고, 대록산 가는 길로 들어섰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도는 길은 대록산 가는 길이어서 우리는 직진한다. 갈대가 키높이로 자랐고, 지금은 꽃을 피워 장관이다. 그 길 가운데 삼거리가 나타났다. 왼쪽으로 가면 족은사슴이오름 가는 길이다.

억새밭길을 지나 족은사슴이오름 아래 자락을 돈다. 사유지이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플래카드가 거꾸로 붙어 있다. 오름이 사유지라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길이 오름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오름에서 나오면 그곳이 사유지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오름 안에서 제대로 보이게 플래카드를 거꾸로 걸어 놓았던 것이다.
 
길가에 파란 가을꽃 투구꽃이 피었다.
▲ 투구꽃 길가에 파란 가을꽃 투구꽃이 피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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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남보라색 꽃이 보인다. 꽃 모양이 투구처럼 생겼다 해서 투구꽃이라 부른다. 높은 곳에 있는 꽃인줄 알았는데, 족은사슴이오름에서 만나다니, 반갑고도 반갑도다. 남보라색이 이채롭다. 신비하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꽃 한 번 만나면 가을이 더 풍성해져 버린다.

좋은 길을 따라 족은사슴이오름을 돈다. 오름 아래는 삼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 안으로 들어가 오름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들어가는 길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오름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 했다.

결국 길은 오른쪽, 큰사슴이오름 쪽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그 플래카드가 또 거꾸로 걸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으로 알고 되돌아 간다. 조금 돌아가니 오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안에는 넓은 길이 있고, 조금 걸어가니 족은사슴이오름 안내판이 나왔다. 우리는 드디어 찾았다 하며 안심했다. 
 
어렵게 만난 작은사슴이오름 안내판
▲ 작은사슴이오름 안내판 글 어렵게 만난 작은사슴이오름 안내판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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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글을 통해서 작은(족은)사슴이오름을 이해한다. 남쪽에 큰사슴이오름이 있어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작은사슴이오름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작지 않단다. 두 개의 화구를 가진 쌍둥이 화산체로, 남북으로 터진 말굽형 분화구를 가졌다고 한다. 해발 441.9m이고, 비고가 102m로 높은 편은 아니다.

안내판을 만나, 의기양양해진 우리는 왔던 방향으로 더 걸어간다. 지도를 보니 두 분화구 사이를 통과하고 있었다. 왼쪽이 주봉으로 보였다. 그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으면서 계속 걸어간다. 길은 나타나지 않고, 록산로 큰 길이 나타나고 말았다. 길가에 '소록산 들어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있다. 어떻게 된 거지??

이럴 때 필요한 게 회의다. 아마도 여기가 소록산 입구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되돌아가면서 올라가는 길을 찾아보기로 하는 게 어떤가요? 많이 걷는데는 전혀 불만이 없는 우리들은 쉽게 합의한다. 되돌아 간다. 다시 안내판이 나타났다. 주변에 길을 찾으니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저 멀리 한라산이 늠름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앞에는 정석비행장이 있다.
▲ 족은사슴이오름 전망 저 멀리 한라산이 늠름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앞에는 정석비행장이 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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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방향은 잊어버렸다. 중간에 지도를 보니 어느새 두 분화구 사이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한 번 더 록산로와 평행되게 왼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앞을 바라보니 한라산이 저 멀리 늠름하게 앉아 있고, 그 앞에 크고 작은 오름들이 한라산에게 굽신거리고 있다. 밑에는 정석비행장이 자리잡고 있다. 비행기도 보인다.

분화구는 올라가는 길 왼쪽에 있다. 오른쪽도 경사가 급하다. 분화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 정상이다. 그러나 아무런 표시도 없고, 나무와 풀로 덮혀 있다. 곧 내리막길이다. 쉴 공간도 없어 정상을 그냥 통과하고 만다.
 
평지가 나타나 휴식하며 간식을 먹는다.
▲ 휴식과 간식 평지가 나타나 휴식하며 간식을 먹는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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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내려가니 평평하고 약간 넓직한 길이 나타났다. 휴식할 장소다. 힘이 드는 건 아니지만, 산중에서 한 번 쉬는 게 우리의 필수 코스다. 삶은 계란과 감귤을 먹는다. 10월 중순부터 극조생 감귤을 먹을 수 있다. 감귤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간벌한 나무들이 흩어져 있다. 나무를 끌어다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얼마 전에 간벌한 모양이다. '우리가 여기를 탐방하는 줄 어떻게 알고 길을 단장을 해 놓았네'라며 너스레를 떤다. 쉬는 시간은 시간이 멈추어 있다. 까마귀도 '아악 아아악' 하며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 바람도 잔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계란을 까고 있다. 사무사(思無邪)의 경지가 이런 걸까?

다 내려왔다. 처음 플래카드가 거꾸로 걸린 곳이 나왔다. 그제서야 우리가 걸은 길의 대강이 통찰되었다. 처음 그 길로 들어섰더라면 훨씬 쉽게 족은사슴이오름을 체험했을 것이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두 바퀴를 돈 것이다. 더 많이 걷는 게 오름오르기의 목적 중 하나인 우리들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셈이다.
 
큰사슴이오름과 작은사슴이오름 사이는 억새밭이다.
▲ 사슴이오름 억새밭 큰사슴이오름과 작은사슴이오름 사이는 억새밭이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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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슴이오름과 작은사슴이오름 사이 넓은 벌판이 억새 천지다. 제주에 오래 산 사람들은 억새가 그냥 억새일 뿐인데, 관광객에게는 멋지게 보이나 보다. 그런 것 같아서 우리도 억새 구경삼아 여기를 택했던 것이다. 

억새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어본다. 억새는 가까이에서 보면 어지럽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같은 높이로 멀리 보면 멋있다. 하얀 꽃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제주사람들에게도 아름답다. 

큰 사슴이오름보다 작을 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작은사슴이오름 탐방은 허점 투성이였다. 헛탕으로 걸은 거리가 제대로 걸은 거리보다 더 멀었을 것 같다. 그러면 또 어떤데? 투구꽃도 만났는데.

그래도 시간도 남고 힘도 남았다. 모두 가까이 있는 갑선이 오름까지 가 버리잔다. 족은사슴이오름 올라 '작다고 얕보아선 절대 안 된다'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잊어버린 진리를 깨달은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

태그:#족은사슴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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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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