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3 08:37최종 업데이트 20.10.2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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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인플루엔자 발생 시 미국 캔자스 긴급병동의 모습. ⓒ 위키커먼스

 
최악의 독감, 20세기 최악의 팬데믹, 흑사병과 함께 인류 역사 최악의 전염병.

'스페인 독감' 혹은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조선에서는 '무오년 독감'으로 불렸던 인플루엔자A바이러스(H1N1)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아래 1918년 인플루엔자).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상황에서 종종 언급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무시무시한 이름만큼 남긴 기록도 대단하다.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918년 초에 첫 대유행을 일으킨 이후 1920년 봄 4차 파도까지 이어진 이 팬데믹은 당시 세계 인구 18억~19억 명 중 27퍼센트 정도인 5억 명을 감염시키고, 대략 5000만 명의 사망자(1억명까지도 추산함)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2019년 말에 등장해 2020년 팬데믹으로 번져가고 지금은 2차 파도로 다시 커지고 있는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10월 18일 기준 112만 명인 것을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1914~1918년 4년 이상 지속되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공식 병사 사망자 수가 약 900만으로, 일반인 사망자는 1300만으로 집계 되는데, 그의 수배에 달하는 숫자가 독감으로 죽어갔던 것이다.

독감 사망자수가 정확하지 않고 범위가 넓게 추산되는 것은 당시 세계 대전 중이던 곳에서는 독감으로 사망한 군인들의 숫자가 누락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을 진단할 여력이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행정능력이 미비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채 합병증 등으로 죽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1차 땐 그냥 독감, 2차 땐 치명적 전염병

1918년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인후통, 두통, 열과 같은 전형적인 독감 증상이었다. 1918년 초 첫 유행 때만 하더라도 사망자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말 2차 파도가 시작될 즈음엔 증상이 세균성 페렴으로 이어지면서 환자의 피부가 검게 변하고, 수시간~며칠 내 사망하는 등 한층 심각해졌다. 1918년과 1920년 사이 총 4번의 대유행 중에 2차 파도 때 최악의 사망자 수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대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통상 2세 이하의 영아들이나 65세 이상의 노인들과 같이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약자들의 사망률이 높은 편인데, 1918년 인플루엔자는 20~30대 젊은이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무수한 젊은 장병들이 야전지에서 바이러스 전염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쉬웠던 터라, 세계대전은 바이러스 감염과 확산의 요지였다. 대유행이 세계적으로 심각해지면서 젊은 층이 대거 사망하자 위기감도 커졌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이 같은 위기 속에서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서둘러 마무리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1차 유행과 2차 유행의 증상이 크게 달라진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돌연변이 때문으로 해석한다. 1918년 말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장병들이 세계 각국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동하면서 전파력이 커졌고, 그것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생긴 돌연변이 중에 이 같은 증상을 초래하는 변이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 독감'이 아니라 '미국 독감'?

이 인플루엔자가 어디에서 발생해 어떻게 퍼져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남아있는 관련 진료기록들과 바이러스의 계통 발생학적 분석 등을 종합해 보면, 미국에서 유래해 지역감염으로 번졌고,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군들에 의해 유럽으로 퍼져간 것으로 보는 설명이 유력하다.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번졌다. 당시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던 다른 나라들은 적국에 내부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전시검열로 인플루엔자 유행을 숨긴 데 비해,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스페인은 유행 상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처럼 스페인에서의 인플루엔자 유행이 두드러지게 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흔히 그렇게 불리지만, 사실은 '미국 독감'이었던 셈이다.
 

1918년 12월. 1918년 인플루엔자(스페인 독감) 당시 미국 시애틀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 ⓒ 위키커먼스

 
1918년 인플루엔자가 몰고 온 사회적 영향도 컸다.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개념이 도입되어 학교나 공연, 종교 모임, 대규모 모임 등을 금지시키고, 대중교통 이용에 제한을 두는 것과 같은 시행령이 실시되었다. 마스크 쓰기도 장려되었는데, 당시 방역에 특별히 노력을 쏟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과 일본과 같은 곳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진들은 지금도 남아있는 자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방역효과를 갖는가에 대한 논쟁은 당시에도 뜨거웠다. 

지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방역에 적극 이용되고 있는, 대중시설 폐쇄와 대규모 모임 금지 등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수치로 계산하기는 쉽지 않지만, 200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918년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미국 여러 도시들의 방역 노력과 그 해의 초과사망률을 그 전해인 1917년의 초과사망률과 비교 분석한 결과, 샌프란시스코나 세인트루이스, 밀워키, 캔자스시티와 같이 특별히 방역 노력이 효과적이었던 곳에서는 전염률이 30~50퍼센트까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나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발표자료로, 1911-1917년 평균 사망자수 대비, 1918년 인플루엔자(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1918년 사망자수의 나이대별 분포를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20,30대 젊은층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 위키커먼스

 
흥미로운 것은, 1918년 인플루엔자 유행 때 여러 음모론이 함께 유행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에서 적국이던 독일을 겨냥해, 독일 잠수함들이 세계를 돌며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는 소문이 유행했고, 그 외에 독일이 제약사 '바이어'를 사주해 아스피린을 통해 팬데믹을 조종했다거나, 독가스로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등의 루머가 돌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도 5G 기지국이 바이러스를 쉽게 퍼지게 한다는 루머가 돌아 세계 곳곳의 5G 기지국들이 불에 탔다는 뉴스들이 있었고, 대형 제약사들이나 특정 재벌들이 팬데믹의 배후에 있다는 등의 음모론이 크게 유행한 것과 흡사하다.

1918년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치료방법을 두고도 루머들이 있었는데, 이를 테면, 몸에서 피를 조금 뽑으면 예방 효과가 있다든지, 염소가스를 많이 들이 마시면 소독효과가 있어 균이나 바이러스가 모두 죽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역시 코로나19 유행 중에, 손소독제를 마시거나 자외선을 쬐면 예방 효과가 있다고 믿고,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에도 치료효과가 있다는 입증되지 않은 소문이 돌았던 것과 닮아 있다.

조선의 '무오년 독감'

1918년 인플루엔자는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조선에서도 예외 없이 유행을 했는데, 남아있는 관련 기록들을 보면,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9월에 이미 서울에 환자가 나타났고 10월에 전국적인 유행이 절정에 달해 공사립학교와 사숙은 휴학, 각 관청과 단체에서는 시무를 보지 못했다. 11월 들어서는 개성군의 경우 다른 때의 7배의 사망률을 보였고, 충남 서산지역은 8만 명의 인구 중 6만4000명이 질병에 걸렸으며 매일 100명 이상 150명씩 사망하여 사망자를 처리할 사람이 없었다. 일반 농가에서는 사람이 없어 추수를 못한 논이 절반 이상이다.
- 조선총독부 연감

독감이 들거든 이렇게 조섭하라. 앓는 이를 딴 방에 거처하게 하고, 다른 사람은 곁에 가지 아니하도록 주의를 할 것이요, 환자가 쓰던 침구와 자리 옷 같은 것은 볕을 쏘여 소독하고. 방도 자주 쓸어 정하게 하고, 가끔 공기를 갈고, 볕을 쏘이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유행 감기로 인하여 개성은 사망자가 평시의 7배나 되었다.
- <매일신보> 1918년 11월 11일자

악성 감기의 창궐로 인하여…지방 우체국 중 국원이 전멸되어 다른 곳에서 응원자를 파견케 하는 곳은 평남 개천군 우리, 충암 아산 우편국, 인천 전화계, 김천우편국으로 거의 전멸이 된 곳은 풍산, 갑산, 박천, 용암포, 공주, 삼수의 각 우편국이다.
- <매일신보> 1918년 11월 14일자

당시 인플루엔자 감염 확산세가 크고 사망자가 많아서 사망자 처리가 문제가 될 지경이고, 농업과 우체국 운영과 같은 일들에 지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역을 위한 지침으로 감염자를 분리시키고, 접촉을 자제하게 하고, 환기 등을 장려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11월 13일자 <매일신보>는 "독일에 있던 감기로 독일이 일종의 독가스를 발명하여 퍼뜨렸는데, 전쟁지에서 그 감기에 걸린 자가 만주로부터 조선을 거쳐 들어와서 그 사람이 병독을 전파하였다"고 보도했는데, 당시 돌고 있던 음모론이 조선에도 퍼져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1918년 인플루엔자의 소멸

그렇다면 이같이 맹위를 떨치던 1918년 인플루엔자는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몇 해에 걸차 4차 파도로까지 이어진 유행이었던 만큼 감염자 수가 많았고, 점차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게 되고, 그러는 사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축적해가면서 맹독성이 사라지고 서서히 소멸해 가게 되었을 거라고 분석한다.

2007년 2월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은 1918년 인플루엔자에 생긴 단 두개의 아미노산 변이가 혈구응집소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부위에 변화를 일으켜, 사람에게서 전이되던 것에서 조류에게서만 전이되는 성질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미미해 보이는 돌연변이로 바이러스의 성격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동시에, 그 같은 미미한 변이들로 다른 동물들에게서 번지던 바이러스들이 언제든지 인간에게로 옮겨와 유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코로나 19 전 세계 발생 현황 ⓒ 월드오미터

 
코로나19 유행을 두고도 바이러스에 생긴 돌연변이로 인해 독성이 더 강해지거나 감염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들이 있고, 감염 후에 면역력을 갖게 된 사람에게 재감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지, 혹은 백신 개발 후에 바이러스에 생긴 돌연변이로 그 효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과도 같은 선상에 있는 내용이다.

엄청난 사망자수를 기록하고 백신 없이 소멸한 1918년 인플루엔자. 그리고 강도 높은 방역에 유례없이 집약적인 백신 개발 과정에 있는 코로나19. 과연 그 결말은 어떻게 끝맺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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