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여름 동생네 집에 갈 때 동글이가 사촌 동생들과 먹는다고 과자를 여러 개 챙겨갔다. 영혼의 짝꿍인 한 살 어린 7세 사촌동생과 잘 노는 동글이는 바나나맛 과자를 사면서 "은우랑 수영하면서 먹을 거야" 했다.

베란다 간이 수영장에 아직 물이 안 차서 기다리고 있는데 4살 어린 사촌동생이 바나나맛 과자를 들고 온다. 7세 사촌동생과 놀던 동글이가 와서 과자를 뺏으며 이거 이따 수영할 때 먹을 거라고 말하지만, 우리 나이로 4살이지 36개월이 안 지난 동생은 기다리지 못한다. 동글이가 없는 틈을 타 바나나맛 과자를 들고 자기 아빠에게로 간다. 

"이거 먹는다고? 이거 형아 건데. 형아한테 물어봤어?"

이때 동글이가 와서 안 된다고 말하며 울었다. 동글이 아빠가 수영할 때 먹어도 좋지만 지금 동생이 먹고 싶어하니 같이 먹는 게 어떠냐고 말을 하려는 순간 과자 봉지가 부욱 찢어 졌다.

"여럿이 같이 있으면 다 같이 먹는 거지. 뭘 그거 가지고 그래. 이따 삼촌이 저거 10개 사줄게."
"으아아아아."


동글이의 대성통곡이 시작됐다. 삼촌은 과자 하나에 왜 우냐며, 너도 동생이 가져온 과자 먹지 않았냐며 혼낸다. 동글이는 과자가 아까운 게 아니라 수영할 때 먹고 싶었던 거다. 지금이 아니라 이따가 먹는 게 중요했던 건데 삼촌은 그 마음을 모르고 과자를 뜯고 아이를 나무란다. 수영할 때 먹을 수 있는 다른 간식을 준비해 주는 거로 아이를 달래면서 남동생에게 눈을 흘겼다.

동글이가 동생이랑 과자를 먹겠다고 사간 거기 때문에 과자를 나눠주는 게 아까워서 싫었던 건 아니다. 언제 먹는냐가 중요한 거였는데 삼촌은 같이 먹는 거에 방점을 두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면 작은 과자 봉지 하나에도 문제가 생긴다.

상대방 마음을 오해하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그림책이 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제목에 커다란 검은 괴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파라파 냐무냐무>.

곁표지를 넘겨 속표지에 들어가면 마시멜롱 마을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잠을 자고 있는 마시멜롱들은 통통한 하얀 몸체에 뾰족한 까만 모자를 썼다.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마시멜롱들의 언어인가? 제목이 무슨 뜻일지 궁금해 하며 그림을 따라가 본다.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지음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지음
ⓒ 사계절

관련사진보기

 
마시멜롱 마을에 해가 뜨고 마시멜롱들이 줄줄이 집에서 나온다. 손만 있고 발은 보이지 않는 마시멜롱들이 서로의 몸을 탑 쌓듯 쌓아서 커다란 나무 위 과일을 딴다.

겉모양은 서양배인데 속은 석류처럼 빨간 열매가 들어 있는 과일을 온 몸이 붉게 물들 때까지 먹은 마시멜롱들은 붉은 석양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잠이 든다. 다음 날 마시멜롱 마을 너머 먼 곳에 산만한 까만 몸체 일부가 보이며 "이파라파 냐무냐무"란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에 놀라 새떼도 날아간다. 

여기까지가 속표지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마시멜롱 마을과 마시멜롱들을 소개하는 데까지가 속표지라니 이후 펼쳐질 얘기는 제목에 나왔던 "이파라파 냐무냐무"를 푸는 게 관건이겠다는 짐작을 하며 그림책 본 페이지로 들어가보자.

나무 열매를 따던 마시멜롱들이 "이파라파 냐무냐무"라는 말의 진동에 나무에서 떨어진다. 마시멜롱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크고 산만한 검은 털숭숭이가 내는 소리인 "이파라파 냐무냐무". 마시멜롱들은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간다. 검은 털숭숭이가 외치는 저 무시무시한 외침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는 마시멜롱들. 

"이파라퍄 냐무냐무, 냐무냐무, 냐무 냐무우, 니아무, 냐아무냐아암, 니아암, 냐암, 냠냠? 우리마을 마시멜롱들을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말이야!"

검은 털숭숭이가 마시멜롱들을 꼬챙이에 기어 구워먹고 핫초코에 넣어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마시멜롱들은 공포에 떤다. 그리고 냠냠 먹히지 않기 위해 싸움을 결심한다. 1차전은 나무 열매를 따서 새총으로 공격하기. 검은 털숭숭이는 빨간 열매 범벅이 됐지만 혀로 핥아 먹을 뿐이다. 1차 공격 대 실패.

2차전은 검은 털숭숭이가 잠든 사이 실로 꽁꽁 묶어서 못 움직이게 하는 작전이다. 마시멜롱들이 잠자는 검은 털숭숭이에게 접근해 실을 몇 가닥 설치했을 때 털숭숭이가 눈을 떴다. 털숭숭이가 벌떡 일어나자 실에 매달린 마시멜롱들이 날아간다. 2차 공격도 대 실패.

이제 남은 방법은 불공격. 활활 타오르는 불공격을 하자는 마시멜롱들 뒤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요.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털숭숭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러나 뾰족한 발톱, 시커먼 털, 천둥같은 목소리, 무쉬무시한 덩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냠냠 먹힌다는 의견에 위의 의견은 무시당한다. 마시멜롱들이 불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그때 털숭숭이가 먹으려는 건지 아닌지 확인해 보겠다고 길을 나선 마시멜롱이 있다. 그는 털숭숭이에게 가서 물어본다.

이때 마시멜롱들은 불공격을 시작하고 숲의 나무들만 태운 채 공격은 실패한다. 자기에게 온 마시멜롱 한 마리를 입안에 숨겨서 불에 구워지지 않게 한 털숭숭이는 "이파라파 냐무냐무"라고 다시 큰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마시멜롱이 "소리 지르지 말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라"고 한다.

입을 크게 벌린 털숭숭이. 4줄로 겹쳐진 엄청나게 많은 이빨 중에 하나가 까맣게 썩어 있다. 그러니까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이빨 아파 너무너무"였던 것이다.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의 이빨을 치료해 주고 치약과 칫솔을 마련해 준다. 이로써 마시멜롱 마을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이빨 아파 너무너무"라고 말하면서 털숭숭이가 우는 장면에서 동글이는 떼굴떼굴 구르면서 웃었다. 이파라파 냐무냐무가 무슨 뜻일지 궁금해하면서, 털숭숭이가 마시멜롱들을 잡아 먹을까 봐 가슴 졸이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이빨이 아프단 소리였다니. 이빨이 아파서 애기들의 부정확한 발음같은 소리일 뿐이였다니. 무시무시한 털숭숭이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 귀여운 소리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극적 대반전이었다.

귀여운 마시멜롱과 털숭숭이가 나오는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이 이야기의 긴장을 잘 이끌어가면서 유쾌한 반전을 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러니까 똑바로 말해야 알아 들을 수 있는 거야. 앞으로 똑바로 말해"라고 아이들에게 잔소리할 부모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마시멜롱들이 털숭숭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게 더 눈에 들어온다.

털숭숭이는 그저 아파서 소리를 쳤을 뿐인데 그의 덩치와 발톱, 털이 숭숭한 외모와 큰 목소리만 가지고 마시멜롱들이 그를 오해한 게 먼저다. "이파라파 냐무냐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가서 물어보면 될 일인데 털숭숭이를 오해하고 공격한 건 마시멜롱들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고 날을 세우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인다.    
  
"수영할 때 먹고 싶어요"를 "동생이랑 나눠먹기 싫어요"로 들은 삼촌. 바나나맛 과자를 동생이랑 나눠 먹기 싫어서 동글이가 운다고 지레 짐작하지 말고 삼촌이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둘 사이에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이 과자를 안 주는 게 나눠먹기 싫은 거라는 선입견으로 동글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서 문제가 되었다.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동생네 아이들을 봐주는 엄마가 '올케가 아이들 반찬을 오랜만에 해놨다'며 아침에 내게 문자를 했다.

'00한테 찬찬할라는 거야.
너가 하는개 아니고 엄마가
찬찬할라는 건데 좋은 글이못 셔서
엄마입자메서 글 좀 써다라는 것'


우리 엄마의 '이파라파 냐무냐무'다. 글은 서툴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자기 대신에 칭찬하는 글을 써달라는 건데, 그 글이 쓰이는 용도와 엄마의 의도가 싫었다. '맞벌이 부부인데 왜 올케만 반찬을 해. 엄마가 칭찬하면 며느리 입장에선 그것도 부담이야'라고 답장을 보내려다 멈췄다. 마시멜롱처럼 내 맘대로 해석하지 않으려면 물어보는 게 중요하기에 전화를 걸었다. 

<이파라파 냐무냐무>의 마시멜롱처럼 오해하지 않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내 맘대로 해석하지 않고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상대를 내 맘대로 넘겨짚고 공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선 모르면 물어보자.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개제 됩니다.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지은이), 사계절(2020)


태그:#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그림책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