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 07:57최종 업데이트 20.10.2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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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진영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삼국지의 한 인물인 '예형'에 빗댄 일이 화제가 되었다. 그러면서 온라인에서는 그 비유가 적절한지 아닌지에 대한 온갖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는데, 그러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박진영 부대변인이나 진중권 전 교수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그러한 논쟁이 맞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또야? 싶었던 것이다.

대체 삼국지가 무엇이길래. 국가 지정도서도 아니고 전 국민의 필독서도 아니건만, 무슨 일이 터졌다하면 삼국지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중년 남성들이 왜 이리도 많은 것일까. 물론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대강의 줄거리나 주요 인물은 세간에서 보편적으로 알고 있을 확률이 높겠으나, 아무리 그렇다한들 마치 누구나 알아 마땅한 정보인 것처럼 왜들 그렇게 삼국지를 끌고 오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삼국지 이야기만 나오면 외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제발 삼국지 소리 좀 안 나게 해주세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얼마 전 한 드라마를 본 뒤로 조금 바뀌었는데, 그들, 그러니까 무슨 일만 생기면 삼국지를 꺼내들고 오는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왠지 모르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사건과 인물을 너무도 생생하게 재현해 낸 가상의 세계가 감탄스러워서, 자꾸만 그것을 소환하여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 절묘한 비유와 묘사에 끊임없이 감탄하면서 거듭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를 본 뒤 나의 마음이 꼭 그러했기 때문이다. 아, 이 캐릭터는 현실의 누구랑 너무나 비슷해. 어라 이 사건은 완전 얼마 전의 그 사건과 흡사하잖아! 기타 등등.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여자들
      

왓챠 <미세스 아메리카>의 한 장면 ⓒ 왓챠

 
올 봄 FX on Hulu에서 방영한 뒤 국내에서는 왓챠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중인 <미세스 아메리카>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성평등 헌법수정안(ERA:Equal Rights Amendment)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정치적 갈등을 그려낸 미국 드라마다. 흔히 '정치' 하면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기며 여성은 배경으로 치부하거나, 남성 정치인의 애인이나 어머니 정도의 지위만 부여했던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들과 다르게 여성들을 주요 캐릭터로 전면에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기혼, 비혼, 이혼, 무자녀, 유자녀, 워킹맘, 전업주부, 지식인, 노동자, 고용주, 고용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처지의 여성이 등장한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은 각자의 환경과 관심사에 따라 정치적인 의견도 판이하게 갈리는데, 이들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재에도 과거에도 여성들은 그저 남성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대로 '가만히 있기만' 하지 않았으며,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로 드라마 속에서 보수 진영의 전업주부들이 주된 멤버인 '이글스 포럼'은 나름의 세력을 형성하는데, 이들의 리더인 필리스 슐래플리는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훗날 레이건이 당선된 대통령 선거에서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흔히 '극렬 페미니스트'라 불리던 활동가들이나 전문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지극히 평범한 시민, 그중에서 가장 무지하며 무력한 존재 취급받는 전업주부들 또한 알고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갈등하는 양상은 마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대로 옮긴 듯하여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간사의 보편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의 아이콘과 같았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는 '낙태'로, 그녀는 한 에피소드에서 '낙태죄' 폐지 조항이 포함되지 않는 한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동료인 벨라가 나서 그래도 민주당이 집권해야 장기적으로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있으므로 이번에는 조금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식인데, 볼수록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상황,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사이지 싶다.

물론 갈등은 페미니스트들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보수 진영의 여성들 또한 각자의 정치적 욕구에 따라 끊임없이 갈등한다. 개중에는 그저 '안정적인 가정'이 모든 욕구의 최고봉에 있는 여성도 있고, 극우적 가치관을 지닌 인종차별주의자도 있으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나 인종차별 등에는 단호히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갈등이 어느 하나 대충 넘어가는 법 없이 매번 섬세하고 세심하게 그려진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특정한 주인공 한 명에 집중하는 대신 주요 인물 여러 명을 회차 별로 다르게 하여 비슷한 비중으로 고루 다루는 것이 특징인데, 드라마 속에서 일종의 '악역'을 맡고 있는 안티 페미니스트들에게조차 이러한 시선과 비중이 공평히 뻗어나간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큰 미덕이다.

여자도 한 명의 '개인'일 뿐이다 
 

왓챠 <미세스 아메리카>의 한 장면 ⓒ 왓챠

왓챠 <미세스 아메리카>의 한 장면 ⓒ 왓챠

 
개중에서도 안티 페미니스트의 선봉주자라고 할 수 있는 필리스 슐래플리에 대해서는 'ERA를 저지하려던 사악한 마녀' 혹은 '페미니스트의 적'과 같은 프레임을 씌우는 대신, 그가 어떠한 욕구를 가졌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현하려 했는지, 그것을 위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며, 정치적 야망을 위해 모순된 선택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고뇌, 번민, 그로 인해 비틀리는 자아를 보여주는 등 대단히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그래서일까. 나로서는 보는 내내 슐래플리에 대해 대단히 복잡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극중에서 여성 인권에 해로운 역할을 한 그를, 발 벗고 나서 여성 인권 향상을 저지하려고 했던 그를 딱히 미워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특히나 "살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단 한번도 차별 받은 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슐래플리가 남성 정치인들과의 모임에서 마치 속기사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어정쩡하게 물러서는 장면, 보수 진영을 위해 헌신한 그가 마지막 순간에는 정치적 이유로 집권세력에게 버림받은 뒤 고통을 감추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장면을 볼 때는 궁극적으로는 페미니즘 이슈와 여성 진영을 위해 잘된 일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아마도 그 이유는 드라마가 필리스 슐래플리를 포함하여 여성 캐릭터들을 그만큼 공정하게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 명 빠짐없이, 어떤 정치적 의견에 치우침도 없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나 스테레오 타입을 부여하지 않고 여성을 이리도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해준 서사가 여태 얼마나 되었던가.

이처럼 <미세스 아메리카>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입체적이며, 방영된 모든 에피소드가 흥미로웠던, 참으로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 그렇기에 <미세스 아메리카>를 보는 사이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고, '여성은 오로지 여성을 위해 연대한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며, 오로지 각자의 입장과 상황과 처지에 따라 최선의 방편을 추구하는 정치적인 여성들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정치적 '개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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