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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에 핀 야생화
 마당에 핀 야생화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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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어 가는 계절 따라 바람이 서늘해진다. 높아진 하늘 위로 흰 구름이 떠다니는 시간에도 바람이 분다. 저 멀리 시베리아의 차가운 공기를 가져와 장난치는 바람이 나뭇잎을 간지럽히고 있다. 약 오른 잎새는 창피함에 붉어진 얼굴로 몸서리를 친다. 견디다 못해 떨어지는 나뭇잎은 어느새 바닥을 뒹굴다 돌담 밑 햇살 포근한 자리에 살며시 눕는다.

주말에 하루를 더하니 쉬는 날이 그렇게도 길게 느껴진다. 코로나19는 편히 쉬는 시간을 허락해 줬다. 문화생활을 절제하고, 여행도 자제하며 사람 간 거리두기를 하는 세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손바닥으로 가리면 안 보일 작은 마당이라도 아이들과 더불어 누리는 여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 아닐까.

그렇게 좁은 공간을, 우리는 누리고 싶은 만큼 누리며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다. 우리 집 마당은 이웃들과 바비큐를 하기도 하고, 미니멀 화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꽃집으로 변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에 3일의 연휴는 또 다른 고민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배제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아이들은 늘 새로운 걸 원하기에 한정된 공간에서의 변화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고민하던 중 문득 캠핑족이 늘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가을이 익어가는 시간이기에 앞으로 조금만 지나면 누릴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은 '홈핑'을 생각해 봤다. 캠핑을 즐기지 않던 우리 집에서 텐트가 있을 턱이 없었지만, 대용품이 떠오른다. 창고를 정리하면서 잘 모셔두었던 그늘막을 꺼냈다.
 
 그늘막에 모기장으로 방충망을 만들었다.
 그늘막에 모기장으로 방충망을 만들었다.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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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비만 안 온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늘막을 마당에 펼친다. 공간이 좀 작기는 했지만 그늘막을 펼치고, 두 면을 그늘막 천으로 가려놓고 보니 그런대로 쓸만했다. 다만 날파리나 모기가 덤비면 피할 공간이 없겠다 싶어 딸아이가 썼으나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모기장으로 그늘막을 덮었다.

그늘막 위에 삼각 타프가 있고 두 면이 가려지고 모기장을 두르고 나니 방충망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바닥에 두꺼운 돗자리를 깔고 나니 옆에서 거들던 딸아이는 독점하고 싶어 한다. "이제 여기는 제 집입니다"라고 말하더니 방에서 베개랑 인형, 바닥에 깔 이불과 책들을 들고나온다.

오전에 만든 그늘막에서 밤이 되도록 눌러앉아 책도 보고 칼림바 연주도 하고 과자도 먹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오늘 밤은 그늘막에서 잔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영화 한 편 보여주는 조건으로 방에서 자기로 합의를 한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아이는 집으로 들어왔다. 별것도 아닌데 새로운 장소가 주는 소소한 재미가 있나 보다.

다음 날도 느지막이 일어난 딸아이는 마당으로 향한다. 이웃에 사는 엄마 친구(아이들은 '이모'라 부른다)가 마당에 만들어진 딸아이만의 공간에 놀러 오기로 했단다. 딸아이는 손님맞이 정리를 한다. 바닥에 깐 이불을 정리하고, 책이랑 그림 그리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름 깔끔을 떨고 있다.

태양이 빛을 발하는 정오쯤 이모가 찾아왔다. 그늘막에서 그들만의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신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일이 있어 출타를 했다 돌아왔다. 딸아이만 덩그러니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재잘거린다. 딸아이와 재미나게 놀아주던 이모는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따스한 햇살 이불을 덮고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고 한다. 나라도 따스한 햇살 아래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오면 낮잠에 빠질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은 이틀 동안 그늘막에서 여러 권의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연주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홈핑을 즐겼다. 누가 봐도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늘막에서는 휴대폰도, TV도, 게임도 하지 않고도 즐거워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작은 공간에 변화를 주니 또 다른 행복이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늘막에 사각타프로 텐트를 만들다.
 그늘막에 사각타프로 텐트를 만들다.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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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가 되자 하늘이 잔뜩 어두워졌다. 비가 내릴지 몰라 사각 타프를 덮었다. 타프를 덮자 그늘막은 텐트처럼 둔갑했다. 그늘막 안에도 온기가 머물고 있어 따뜻해지기까지 하다. 분위기가 바뀌자 딸아이는 또 다른 기분인지 침낭을 찾아 가지고 나온다. 정말 따뜻하다며 오늘 여기서 자면 안 되냐고 또다시 투정을 부린다.

아무래도 하룻밤은 이곳에서 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옆지기는 본인이 추위를 심하게 타니 감기 걸린다고 절대로 안된다고 하지만 열 많은 우리 부녀는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해야겠다.

아이가 자라면 언제 또 이런 낭만을 즐길 수 있겠는가. 사춘기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딸과 어쩌면 이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과 만들어가는 소소한 추억이 작지만 큰 행복은 아닐까. 먼 훗날 아이는 이 순간이 어쩌면 향수처럼 아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을바람 불어오는 그늘막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사색에 잠기며 글을 쓰는 지금, 막바지 꽃망울 터트리는 장미와 야생화가 내 눈으로 밀려들어 잔잔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그늘막으로 퍼지는 꽃향기가 더없이 향긋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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