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진군 다산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더불어 다산의 '일표이서' 중 하나이다.
 강진군 다산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흠흠신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더불어 다산의 "일표이서" 중 하나이다.
ⓒ 김병현

관련사진보기

 
이른바 '일표이서'의 하나인 『흠흠신서(欽欽新書)』는 책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흠(欽)이라는 글자는 '공경할 흠' 자이다. 정약용은 책의 서문 말미에 "흠흠이라 한 것은 무엇때문인가? 삼가고 또 삼가는 것(흠흠)은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다."고 밝힌다.

오늘의 사법 관련 공직자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내용도 200여 년 전의 학자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담았다.

"『흠흠신서』의 내용을 요즘의 법률적 논리로 본다면 형법과 형사소송법상의 살인사건에 대한 형사소추에 관한 절차나 전개과정에 해당하는 부분이지만, 여기에는 법률적 접근만이 아닌 법의학적ㆍ형사학적인 측면을 포괄하고 있으며, 사건의 조사와 시체 검험 등 과학적 접근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 (주석 7)

그래서 형법ㆍ형사소송법과 관련한 저술에 '공경할 흠' 자를 붙인 정약용의 치열한 인도주의사상의 무게를 살피게 한다.

『흠흠신서』는 1819년에 완성하여 1822년(임오년)에 30권 10책으로 묶은 법률 관련 저술이다. 저자는 임오년 봄에 쓴 서문에서 저작의 의도를 말하고 있다.

내가 전에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 왕명을 받들어 옥사를 다스렸고, 내직으로 들어와서 형조참의가 되어 또 이 일을 맡았었다. 그리고 죄를 받아 귀양살이하며 떠돌아다닌 이후로도 때때로 형사 사건의 정상을 들으면 또한 심심풀이로 형사 사건을 논하고 죄를 판정해 보았는데, 변변치 못한 나의 이 글을 끝에 붙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전발지사(剪跋之詞)로 3권이다. 이들은 모두 30권인데, 『흠흠신서(欽欽新書)』라 이름지었다. 비록 내용이 잗다랗고 잡스러워서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일을 당한 이가 더러는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8)

그가 관리 시절 한때 곡산부사와 형조참의가 되어 죄인들을 다스리는 일을 하였다고 하여, 유학자 출신이 어떻게 이토록 일반은 물론 관리들의 범죄행태를 꿰고, 결코 누구라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는지 경탄을 금할 수 없다. 1권의 목차 중에 일부를 찾아본다.

 강제 자백이 사실대로 바로잡히다
 꿈에 알려 주어 시체를 찾다
 꿈에 알려 주어 다친 자죽을 알아내다
 대신 구속된 죄수가 사실대로 바로잡히다
 뜻밖에 걸린 재앙이 사실대로 바로잡히다
 덮어쓴 억울한 허물이 밝혀지다
 억울한 누명을 덮어씌우기를 금지하는 법조문
 꾸미고 속여서 이익을 보려고 고발한 자의 반좌율
 얼굴빛을 살펴 살인자를 알아내다
 소리를 듣고 살인자를 알아내다 
 우물을 헤아려 보고 살인임을 알아내다
 새를 쏘려다 잘못하여 사람을 맞히다
 채소를 훔치려다 잘못 사람을 찌르다
 메추리를 잡으려다 잘못 살인을 하다
 새를 잡으려다 잘못 사람을 죽이다.
 
 동백숲에 들어앉은 다산초당.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10년 동안 살았던 산정이다.
 동백숲에 들어앉은 다산초당.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10년 동안 살았던 산정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정약용은 관직에 있을 때나 귀양살이를 하면서, 본인을 포함하여 수 많은 사람이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 쓰고 목숨을 잃거나 곤장을 맞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배지에서는 관리들의 횡포로 '죄인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듣고 보았다.

백성들과 하급 관리들의 잘잘못을 가려야 할 목민관들의 행태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사대부(士大夫)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할 때까지 오직 시부(詩賦)나 잡예(雜藝)만 익혔을 뿐이므로 어느날 갑자기 목민관이 되면 어리둥절하여 손쓸바를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간사한 아전에게 맡겨버리고는 감히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니, 저 재화(財貨)를 숭상하고 의리를 미천히 여기는 간사한 아전이 어찌 법률에 맞게 형벌을 처리하겠는가." (주석 9)

그래서 쓴 책이 『흠흠신서』이다. 책의 '서문' 첫 대목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형률의 집행에 '흠흠'할 것을 역설하는 휴머니스트의 모습이 돋보인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민관이 또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죄지은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별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하게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히 편안하게 지낸다. 더구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여자에게 미혹되기도 하면서, 백성들의 비참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휼할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 된다. (주석 10)


주석
7> 정약용 저, 박석무ㆍ정해렴 역주, 『역주 흠흠신서(1)』, 「책 머리에」, 4쪽, 현대실학사, 1999.
8> 앞의 책, 20쪽.
9> 정약용 저, 박석무ㆍ정해렴 역주, 『역주 흠흠신서(1)』, 저자서문.
10>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일본 편든 미국에 따지러 시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