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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정약용
ⓒ 강진군청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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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가 말한다.

"괴테는 한 인물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이다."

정약용도 그렇다. 그는 조선지성사, 실학사, 경학사를 뛰어넘는 '조선의 문화'였다.

"어떤 사상가는 들판에 솟아오른 봉우리 같아서 전체 규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정약용의 경우는 워낙 큰 산줄기라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수한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고 깊은 골짜기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어느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 보아도 전체의 모습은 짐작하기 조차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석 1)

기왕 나선 길이니, 이제부터는 강진 유배지에서 쓴 책에 관해 탐사하기로 한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쓴 책이 무려 500여 권에 달하니 일일이 다 소개하기는 어렵고, 필자는 그런 역량에도 이르지 못한다. 하여 세간에서 주요 저작물로 평가하는 책을 중심으로 살피기로 한다.

그가 귀양에서 풀려나 귀향한 후 61세에 지은 「자찬묘지명」(집중본)에서 열거한 저서의 총목과 그 권수는 다음과 같다.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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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자찬묘지명』에 실린 저서 총목록 및 분류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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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2)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머물 당시 나뭇군들이나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머물 당시 나뭇군들이나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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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인록(引錄)한 경집, 문집을 합계하면 한 권이 부족한 500권의 절대적 거질(巨帙)이다.    이것만 가지고 보더라도 규모의 거대한 것과 수량의 풍부한 것은 참으로 경탄하지 않을 수없다. 규모의 넓음(汎博)은 실학 선구자인 반계(磻溪), 성호(星湖), 여암(旅菴)의 어찌 미칠 바이랴." (주석 3)


주석
1> 금장태, 『다산 정약용, 유학과 서학의 종합자』, 18쪽.
2> 최익한 지음, 송찬섭 엮음, 『여유당전서를 독함』(최익한 전집 3), 82~83쪽, 서해문집, 2016.
3> 앞의 책, 8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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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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