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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들어서면서 완연한 가을이다. 아침저녁 볼에 스치는 바람이 싸늘하고 한기가 느껴져 마음이 스산하다. 계절이 바뀌면 맨 먼저 할 일 중에 여름 동안 입었던 옷을 빨아서 넣어두고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서 손질하는 일이 있다. 주부가 하는 일이다.

오늘내일 날마다 미루다가 며칠 전에야 넣어두었던 가을옷과 겨울옷을 꺼냈다. 여름옷을 넣어 두고 다시 가을옷을 꺼내려면 집이 온통 난리를 한번 겪어야 하는 번잡한 일이다. 매번 하는 일이지만 꼭 그 자리에 넣어두는 일이 쉽지가 않다.

상자 이곳저곳에 담아 놓은 옷을 한번 바꾸려면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럽다. 한 계절을 보낸 옷은 다시 꺼내어 빨기도 하고 아니면 다림질을 해서 옷장에 걸어 놓아야 입을 때 꺼내서 입을 수 있다. 옷 정리를 하고 나면 계절을 새로이 맞이하는 느낌이다.

옷을 꺼내서 다림질한다. 옷은 세월의 흔적과 사연이 켜켜이 쌓여있다. 나이 팔십이 넘은 남편 옷을 다림질하려니 올가을은 마음이 다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옷을 얼마나 다림질할까? 하고 생각하고 울컥해지는 기분은 왜일까? 나이 들어가면서 자꾸만 생각이 깊어진다.

지금 사는 이 순간이 참 소중하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는 날마다 사는 생의 길이가 자꾸만 짧아진다.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무한하지 않다. 그러기에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때가 되면 다 소멸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게 진리라 생각한다.

햇볕과 차 한잔이면 족하다 
 
가을이면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포실포실 하고 좋다
▲ 거실 안 가을 햇살 가을이면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포실포실 하고 좋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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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로 결혼 53차다. 참 많이 살아온 날들인데 순식간에 지나간 듯 짧게만 느껴진다. 세월의 흐름은 나이와 비례한다고 하는데 그게 딱 맞는 표현인 듯하다. 다림질한 옷을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걸어 두고 나니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듯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가을 햇살은 살며시 아파트 베란다 창을 넘어와 거실 안으로 들어온다. 유난히 가을 햇살은 포슬포슬하고 그윽하다. 나는 26년이란 긴 시간 동안을 이 거실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 즐겼다.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여러 가지 생각에 묻혀 마음이 환해지는 행복한 시간이 많았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일상은 작은 것으로부터 마음이 넉넉해진다. 내가 소유한 것이 적은 것일지라도 만족하고 넉넉하다. 이제 와 무엇을 더 얻으려 욕심을 낸들 소용없는 일들이다. 나를 감싸 안고 있는 햇볕과 차 한 잔이면 족하다.

차를 마시며 각가지 상념에 잠긴다. 우리 가족은 이 아파트 거실에서 지내왔던 삶의 많은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다. 가족이 모여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애환이 가득 담긴 곳이다. 지금은 다 떠나고 그 흔적만이 쓸쓸히 남아있다. 오늘 차를 마시며 차분히 옛날이야기를 기억 속에 꺼내어 마음에 줏어 담아본다.

참 행복하고, 때론 아프기도 한 수많은 날, 우리 인생이었다. 마음 안에 머무는 추억은 내 기억의 조각들이다. 나머지 삶을 어떻게 마무리 잘하고 떠나야 할지를 생각할 나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법정 스님 말씀이다. 나는 마음이 허할 때마다 스님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삶의 교훈을 얻었다. 생각이 고요해지며 숙연해진다.

가을은 마음이 맑아지는 계절이다. 이제 나는 할 일은 다 했다. 딸들 넷 낳아 기르고 결혼까지 다 보냈으니 우리의 몫은 다 한 셈이다. 각자의 삶은 자기들 몫이다. 결혼한 자녀들도 때가 되면 자기의 둥지 안에 자기들만의 삶이 있다.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 하는 일도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아득한 그 세월 다 지나간 시간이다.

우리는 날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비움을 하고 그 충만함으로 자신을 채우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이다. 봄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떠나보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행복도 고통도 슬픔도 모두 나의 삶이었다.

가을에 느끼는 체감온도는 서늘하다. 그래서 더 정신이 맑아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 그 일상 속으로 들어와 내 삶의 의미를 새김질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가을, #거실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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