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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습관화된 아침 등교 방역 지도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 한 분이 따뜻한 커피를 들고나오셨다. '추운데 고생한다'면서. 고마운 마음에 울컥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은 춥긴 추웠던 것 같다.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등교하는 중3 아이들에게 마스크 꼭 쓰자고 불편해도 벗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아이들 역시 지겹도록 들어서 그런지 별 반응이 없다. 턱스크를 한 아이를 불러 세워 똑바로 쓰게 해도 그때뿐이다. 감동과 인내와 걱정 속 등교 지도를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오는데 한 담임선생님께서 걱정하셨다.

"선생님, 애들이 말을 너무 안 듣죠?"
"그러게요. 추석 연휴 지나고 코로나19가 확산될까 걱정인데... 애들은 너무 태평한 거 같아요." 
"그나저나 선생님, 다음 주는 2/3 등교할까요?"
"글쎄요. 늦어도 내일쯤은 교육부에서 지침이 나오지 않겠어요?"
"이렇게 마스크도 안 쓰는데... 2/3 등교해도 걱정이에요."
"어떻게 하겠어요. 한 번 더 말하는 수밖에..."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하루가 다 가도록 등교 지침은 나오지 않았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전체 선생님들은 연구부에서 주관한 성적 관리 연수에 화상으로 참여했다. 다음 주부터 3학년 지필 1회 평가(중간고사)를 앞두고 실시한 연수였다. 학교에서는 감염 예방을 위해 웬만한 회의는 취소하고 꼭 필요한 회의는 이렇게 화상으로 하고 있다. 한 시간 반 정도 들으니 눈과 귀가 아파져 왔다. 하루 6~7시간을 듣는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나름으로 열심히 원격 화상 연수를 듣고 퇴근하려고 나오니 벤치에 열댓 명의 3학년 아이들이 축구를 했는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몇 병의 음료수를 나눠 먹고 있었다. 선생님 한 분이 "애들아, 지금 운동하고 이렇게 음료수를 나눠 먹으면 어떻게 하니?"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그저 "우리가 이겼어요" 한다.

선생님은 빨리 씻고 집으로 가라고 호통을 치셨지만, 애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슬 신발을 끌고 시시덕거리며 학교를 나갔다. 그런 아이들을 보자 난 가슴이 콱 막혀 왔다. 정말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몇 달 동안 감염 예방을 위해 한 노력이 헛수고로 느껴졌다. 허무했다. 내가 그동안 뭐한 건가 싶기도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하고 있는데 보건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 행정실 직원 한 분이 열이 39도 가까이 돼서 병원에 갔어요. 혹시 확진 판정받으면 행정실 폐쇄해야 하는데 어쩌죠? 거기 마스크 안 쓰고 근무하더라고요."
"코로나19가 오래되니 많이 느슨해졌어요. 퇴근하며 보니 중3 애들은 운동하고 음료수 나눠 먹더라고요."
"저도 그 애들 보고 뭐라 했어요. 이러다 우리 학교 코로나19 터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옆 동네에 확진자 발생했다고 매일 문자 오는데..."
"그러게요. 그래 놓고 학교 책임 운운하겠죠?"
"저도 사실 걱정돼 죽겠어요. 확진자가 나오면 그동안 애쓴 건 무시되고 제대로 못 했다고 난리 칠 거 같아요. 어떡하죠?"


심신이 지쳐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밖에서 쓰고 온 마스크를 현관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쓰고 들어왔다고 잔소리를 한다. '딸이 고3으로 미술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혹시 감염시키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나가나 힘든 하루다.

내일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한다고 효과는 있을까? 서울은 다음 주에도 1/3 등교를 유지한다고 하는데 경기도도 그렇겠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답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오늘 아침, 하루가 지나도 풀리지 않은 답답한 마음에 어두운 표정으로 등교 방역 지도를 하고 있으니 출근하시던 선생님 한 분이 뭔 일 있냐고 물으셨다.

"아뇨, 아이들이 마스크를 너무 안 쓰고 코로나를 무시하는 거 같아서요."
"그렇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그럴수록 우린 우리 할 일을 해야죠. 힘내세요. 선생님 제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고요."

 
마이크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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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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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선생님의 말이 의례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선생님 말이 정답이지 싶었다. 걱정만 하지 말고, 책임 문제에 위축되지 말고 내 할 일을 한 번 더 하자고 생각했다. 조회 시간에 맞춰 방송을 했다. 아이들에게 호소했다.

"학생 그리고 선생님들께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코로나19로 너무나 당연했던 것도 못 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모두 힘들고 지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마스크 쓰기 등 기초적인 방역 지침을 어기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코로나19로 현재 1, 2학년은 등교도 하지 못했고, 여러분도 근 한 달 만에 등교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감염되고 그 사람이나 가족,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혈압이나 당뇨 같은 병이 있는 사람, 면역력이 약한 아이를 둔 부모님, 나이 많은 부모님을 둔 자식,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시험을 앞둔 고3 자녀를 둔 학부모 등은 코로나19에 걸릴까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숨쉬기 힘들다고, 또 학교에서 유난 떠는 거라고, 난 걸려도 안 죽는다고, 그냥 싫다고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는 것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제발 마스크를 똑바로 쓰기 바랍니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지키는 최소한이자 최대의 행동입니다. 부탁합니다."


내 방송이 효과가 있었는지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나를 보자 마스크를 좀 올려 썼다. 그래, 그걸로 됐다. 수십 번 말해도 소용없으면 수십 번에 한 번 더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코로나19도 끝나겠지. 그때까지 지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태그:#코로나 19 학교 방역기, #마스크 쓰기, #방역 지침 지키기, #방역 책임자,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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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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