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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어느새 익숙해진 기분입니다. 코로나 블루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우울감과 무기력함, 불안 등을 느끼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코로나19가 쉽게 종식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섣부른 '극복'을 말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겪은 시민기자들이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얻은 작은 해결책들을 '나만의 심리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싣습니다.[편집자말]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췄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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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당연했던 일상이 멈추었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에 갈 수 없다. 코로나가 잠식될 거라는 기약 없는 내일을 기다렸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보냈다.

우리 가족은 지지부진한 방학 같은 시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우리는 아이가 즐겨 읽는 학습만화 <사막에서 살아남기>, <빙하에서 살아남기>의 살아남기 마지막 코스, '집에서 살아남기' 응용 버전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각자의 취향대로 집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종이접기 세계에 빠져들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종이를 피고 접었다. 딱지, 팽이, 공룡을 따라 만들더니 종이를 여러 개 조립하여 로봇을 완성했다. 아이는 밤이고 낮이고 지치지 않았다. 아이를 보면서 단지 종이접기를 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알려줄 수 없는 세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배워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집에서 살아남기 버전으로 자신의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쿠키와 빵을 만들고, 베란다에 텃밭을 가꾸고 싶다며 흙 한 포대를 사 왔다. 파 한 대를 박아두고, 깻잎,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씨앗이 발아하고, 줄기가 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뿌듯해했다.

남편은 텃밭에 있는 식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수초를 키우기 시작했다. 수초 씨앗을 뿌리니 며칠 뒤 잎사귀가 푸릇푸릇 돋아났다. 수초에 얹을 체리 새우를 사고 마침내 자신이 좋아하는 물고기도 샀다.

남편은 꽤 진지했다. 자동히터, 온도계, 기포기 등 물속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그 시간은 돌보고 키우는 데 재주가 있는 자신의 취미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일하면서 지치고 맘이 상할 때마다 말 없는 식물과 동물이 건네는 위로가 크다고 했다.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의 일정에 맞춰 부지런히 움직이던 일상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 활동을 자제해달라는 알림은 건강과 안전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로 해석되었다.

대신 밥을 차리고 설거지, 청소 등 살림의 강도가 커졌다. 장기화된 온라인 학습으로 아이의 기초학력이 떨어질까 걱정되면서 별다른 일정 없이 지내도 되는 건지 불안했다. 온라인 수업이 답답하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흐지부지한 하루.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일상이 멈춘 거 같은데 시간이 흘러가는 게 이상했다. 몸의 움직임이 덜해지니 살이 찌고, 생각은 많아졌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다가 남편의 일을 걱정하기도 했다. 아이와 남편은 딱 봐도 사회가 정한 성공적인 삶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종이접기, 물고기, 텃밭 등 소소한 것에 만족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진 행복과 성공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정말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성공도, 업적도 아닌 내가 당장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가족을 먹여 살리는 밥순이 껍데기 말고 오늘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일상의 비상구가 필요해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중요하다.
 글쓰기는 나를 얼마만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지 용기가 필요하고, 내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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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도 하고, 책, 영화도 보았지만 허기진 하루가 달래지진 않았다. 멍하니 시간을 견딜수록 민낯의 나를 마주쳤다. 10년 동안 아내와 엄마의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꼭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지자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듬어보게 되었다. 독백이 담긴 일기장이 생각났다. 그동안 곱씹을 시간이 없어서, 결론 없는 갈등이 답답해서, 한계를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 여러 변명들로 멈추었던 일기를 꺼내 들었다. 다시 일기에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를 들여다보고 덜어낼수록 자유롭고 충만함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를 얼마만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지 용기가 필요하고, 내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다. 나에게 집중된 시간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내일이 크게 부담 없는 오늘에 안정감이 들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난잡하고 헝클어진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어디에서부터 잃었는지 정처 없이 헤매는 나를 돌이켜 세웠다. 고요할 때 들리는 세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진 언어로 표현해보는 연습은 내 인생을 의미 있게 바라보는 몸부림이었다.

표현의 욕구만큼 글을 알리고 싶은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는 플랫폼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문턱이 낮은 심사과정을 통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었다. 또 어떤 글이든 읽을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는 너무나 역량 있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는 연습, 글을 꺼내는 용기를 더하면서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라는 직분으로 글을 올렸다. 작가로 등단하지 않아도, 정식 기자가 아니더라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글을 쓰고 소통하는 방법은 답답하고 막혔던 일상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비상구였다.

글쓰기는 내 삶의 갈증 해소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사람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 세상에 겪는 고통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사회 안에서 비슷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존 보고서'다. 마스크로 입이 막힌 세상에서 글로 소통한다는 것. 또 다른 세상이 주는 위로였다.

맨 얼굴의 하루를 혼자 또는 가족이 견디는 것만으로 감사한다. 그래서 열심을 내지 않는다. 사회가 정한 역할과 규범에 맞게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속도를 줄이고, 욕심을 비울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동안 바깥에서 찾아 헤맸던 우물이 우리 가정 안에,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에게는 몰입하는 시간을, 남편은 자신만의 취미를, 나에게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권태롭고 우울한, 혹은 치열하고 애타는 시간일지 모르겠다. 바이러스의 위협이 창궐하는 시대에 경제적인 손실, 독박 육아, 관계 단절 등으로 저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가 힘들지만 코로나가 사회에, 각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다를 것이다.

바이러스의 백신만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우리는 쳇바퀴 돌아가는 세상을 한 번쯤 멈춰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가족이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렇게 우물을 파내고 길러내고 마시면서 오늘도 살아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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