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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애들 빨리 재워."
"왜?"  
"있잖아, 그거."
"안 되는데... 아흥후훗."


말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나도 당기긴 했다. 뭐가? 바로 떡볶이다. 다사다난한 추석을 보내고, 맘 속에 거무죽죽한 앙금이 쌓여갈 때쯤 남편은 내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해왔다. 누구도 쉽게 거부하지 못할 떡볶이 딜. 그것도 아이들이 잠든 야심한 밤에 말이다. 나는 끝내 굴복하고야 만다.  

심야 떡볶이 배달 작전은 여느 스릴러 영화와 비슷하다. 배달원 초인종 소리에 아이들이 깨기라도 한다면... 초롱해진 눈으로 자기도 먹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물론, 어찌 어찌 잘 설득해 다시 재운다 해도 내 눈앞엔 팅팅 불어터진 떡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한 방에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편과 나의 완벽한 호흡이 필요하다. 애들방, 취침 성공! 그쪽 상황은 어떠한가 오바. 아직 미션 수행중. 현관 앞에 보초서듯 서 있는 남편과의 보이지 않는 수신호가 긴박감을 더한다. 

아이들이 잠들면... 맵고 느끼한 맛이 열린다
 
우리는 매운맛에 못 이겨 '씁씁' 거리며 서로의 앙금을 털어낸다.
 우리는 매운맛에 못 이겨 "씁씁" 거리며 서로의 앙금을 털어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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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우리 층에서 열리면 누가 볼새라 얼른 물건을 받아들고 살곰히 문을 닫는다. 그야말로 첩보 작전과 맞먹는 수준이다. 꽁꽁 묶인 비닐을 풀어 메인 요리를 상 위에 올리고 술까지 꺼내 세팅을 마치면 무사히 작전을 마친 병사 마냥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아이들이 뒤척일까 봐 노란 불빛의 스탠드를 켜 놓은 것은 왠지 달밤의 비밀 회동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볼륨을 최대한 낮춘 채 티비를 켠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떡볶이를 하나 집어 올린다. 거기에 '쭈~우욱~' 하고 딸려오는 치즈는 마치 행복의 농축액 같다. 떡을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대면 매운 맛이 바로 확 올라와 술을 한 잔 들이키게 되는데, '아차! 여보, 짠!' 하고 잔을 부딪치면 사감 몰래 기숙사에 놀러온 친구와의 일탈마냥 짜릿하고 재미있다. 

그렇게 우리는 매운맛에 못 이겨 '씁씁' 거리며 서로의 앙금을 털어낸다. "이러 이러해서 속상하더라", "그 점은 미처 생각못했네. 담엔 좀 더 신경쓸게" 같은 말도 매운맛이 섞이면 덜 느끼하게 느껴진다.  
 
아이들 몰래 시켜먹는 떡볶이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부부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비법 중에 명 비법일 것이다.
▲ 부부금실 살리는 심야 떡볶이 솔루션 세트  아이들 몰래 시켜먹는 떡볶이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부부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비법 중에 명 비법일 것이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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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언컨대 이것이 우리 부부의 결혼 만족감과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안 좋은 감정을 묵히지 않고 빨리 털어내 버리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것 말이다.

결혼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예컨대 우리 둘만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가겠다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갑작스런 조연(시댁, 친정, 자식)들의 활약이 드러나면서 중반부부터는 장르가 바뀌어 버린다. 로맨스인 줄 알고 봤는데 알고 보니 참혹한 치정 스릴러였던 영화처럼. 나중엔 환불을 요구하고픈 충동마저 들기도 한다. 그게 바로 결혼이라는 시나리오의 반전.  

그럼에도 우리는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와 남주를 바꿀 수도 없고, 조연을 없앨 수도 없다. 그럴 땐 인생이라는 노트 위에 새로운 결혼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남편과 나의 단짠단짠한 위기 극복 스토리로 주인공 대사 비중을 확 높여서 말이다.  

가정 불화의 모습은 제 각각이지만, 씨앗은 비슷

남편은 20대 초반에 이혼 직전의 부부를 다시 이어주는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했었다. 눈만 마주쳐도 싸우는 일반 가정집에 며칠 간 머물며 그들의 삶을 촬영하는 것이 남편의 주된 일이었는데 그때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불화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불화의 씨앗은 거진 비슷한 모습이라고 했다.  

씨앗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화, 또 하나는 스킨십이란다. 나중에 이혼사유에 흔히 쓰이는 성격 차이라는 것이 이 두 씨앗이 두루뭉술 하게 변종된 거라고 했다. 십 년이 넘게 결혼 생활을 해보니 웬만큼 수긍 되는 이야기였다. 

당시 총각이었던 남편은 지옥같은 촬영 환경이었다고 회상 했지만, 인생은 역시 알 수 없는 법! 그 지옥길이 결혼 생활을 꽃길로 인도하는 지침서 였는지... 그때의 남편은 몰랐을 것이다. 

당시 경험 때문인지 남편은 대화를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명절 같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센스가 여우 저리가라다. 명절이 끝나면 꼭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만한 음식을 시켜놓고 느끼한 대화를 시도하곤 한다. 나는 또 그 분위기와 맛에 홀라당 넘어가 딱딱하게 굳은 감정이 배달 떡볶이처럼 몰랑몰랑 해지곤 한다  

부부 간의 말문이 닫히면 자연스레 마음의 문도 닫히게 마련이다. 부부끼리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싶다면 사회이슈, 노후문제, 기후환경, 하다 못해 오늘도 성공 못한 변비 이야기라도 하면 될 일이다. 거기에 배우자가 좋아하는 배달 음식까지 딱 세팅해 놓으면, 없던 금실도 되살아 난다고 나는 장담한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상담센터에 가면 서로에 대한 질문과 적극적인 경청을 기반으로 문제를 풀어간다고 한다. 굳이 상담센터에 가서 비싼 돈 내고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는 떡볶이 금실 소생 작전을 권장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물어봐 주는 것. 거기에 배우자가 좋아하는 음식까지 갖추면 금상첨화! 이것이 바로 부부의 관계를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할 수 있는 비법 중에 명비법일 것이다.

태그:#떡볶이 , #금실회생 , #명절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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