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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기자가 물었다, "조영남 그림이 대작이라는데 책은 직접 썼나?">에서 이어집니다.)

2017년, 그가 내게 연락해 책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재판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미처 몰랐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고 다시 세상에 나가는 그가 이 책을 들고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고, "평생 사기꾼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그는 2심을 강행했다. 영동대교가 보이는 널찍한 거실은 점점 그가 그린 그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좁아져가기만 했다.

조영남의 지난 몇 년은 시련이 아니었다 
 
그림으로 점점 채워지는 청담동 자택 거실. 어린아이들이 뜀박질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은 점점 발을 디딜 틈이 없어질 정도로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 그림으로 점점 채워지는 청담동 자택 거실. 어린아이들이 뜀박질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은 점점 발을 디딜 틈이 없어질 정도로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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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두 아는 것처럼 아니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또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진작에 본문 교정은 물론 표지 그림까지, 표지 디자인까지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출간까지 시간을 더 갖게 되자 원고의 끝없는 보완과 수정이 또 이어졌다. 책 두 권을 넘나들며 선생과 나는 현대미술과 시인 이상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 희망하는 바를 깨알 같은 글씨, 개미의 행렬 같은 글줄에 모두 쏟아냈다.
   
그렇게 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시련이라 여겨지는 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와 몇 년 동안 한 달에 거의 한두 번씩 만나며 지냈다. 그에게 지난 몇 년은 과연 시련을 견디는 시간이었을까. 적어도 내 눈에 그리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일지도 모르는 그 끝을 기다리는 나와 달리 그는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쉴 틈없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개봉영화란 영화는 모두 찾아보며, 만나면 좋은 사람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그는 판결을 기다리는 대신 그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더불어 책을 만드는 나 역시 점차 그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니던 곳을 떠나 집을 짓고, 작은 출판사를 차리느라 분주한 와중에 그와 만나는 날은 수많은 변화의 변곡점에 대응하는 나의 복잡다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항상성'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그럼으로 그의 원고를 읽고, 입력하며 곱씹고, 그의 머릿속의 자유로운 착발상의 일면을 엿보며 어느새 나는 선생의 새 책 두 권의 최종 교정지를 마주하고 있었다. 마지막 교정을 끝낸 날, 선생은 말했다.

"우리, 그동안 참 재미있게 잘 지냈다. 정말 멋있는 시간이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그는 매우 핫한 이름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앞다퉈 그를 조명했고, 기다렸다는 듯 그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어쩐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듯한 기사에 아쉬움을 느끼는 쪽은 늘 나였다.

선생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 있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나만의 우려와 달리 화가로서 그를 주목하여 전시를 제안하는 곳들도 많았다. 그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과 별개로 그의 전시는 성공적이며 작품 판매는 매우 순조롭다.

역시 그의 출연 소식에 반대 여론이 뜨거웠던 모 방송 프로그램 시청률은 최고점을 찍었고, 분당 최고 시청률 역시 그가 노래하는 장면이 차지했다. 누군가는 이런 그를 가리켜 '괴물 같다'고도 했다.

작은 출판사에서 조영남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이런 현상의 뒤에 선 그는 어떨까. 여전히 그는 영동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청담동 자택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피곤하면 달달한 것으로 떨어진 당을 충전하는 보통의 일상을 누린다. 이전보다 빼곡하게 채워진 스케줄표, 훨씬 늘어난 방문객으로 분주해졌을 뿐.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표지.  조영남 선생은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보다 이 책에 더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 이상을 향한 그의 덕질의 역사는 무려 60년에 달한다.
▲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표지.  조영남 선생은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보다 이 책에 더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 이상을 향한 그의 덕질의 역사는 무려 60년에 달한다.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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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법원 판결 직후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을 출간하고, 뒤이어 시인 이상의 탄생 110주년에 맞춰 최근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을 출간했다.

2017년과 2020년 사이, 나의 신상에는 변화가 있었다. 2017년, 선생이 내게 연락을 줬을 때만 해도 나는 출판사의 직원이었다. 홍보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해줄 회사가 존재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사이 나는 나 홀로 회사를 차려 꾸리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작은 출판사, 1인출판사 대표는 아무런 뒷배도 없이 나 홀로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작고 연약한 존재다. 나는 이런 사실을 지체없이, 계획의 단계에서부터 선생에게 알렸다. 큰 출판사에서 관심 있어 할 만한 저자라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멋진 일이다! 잘 됐다. 이제 망해도 너랑 나랑 둘만 책임지면 되는 거 아니냐!"

나는 그것이 그의 호의임을 모르지 않았다. 나는 '다른 출판사에서 내시게 되더라도 원고의 완성까지는 돕겠노라'고 했다. 그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나는 진짜 나쁜 놈이지."

2018년 첫 책을 낸 뒤로 8권 남짓 만든 작은 출판사에서, 인문교양과 문화예술 분야의 책을 주로 내며 조금씩 기반을 만들어가는 나의 출판사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조영남 선생의 책을 낸다고 하니, 나 역시 무수한 염려를 들어야 했다.

"어쩌려고? 무슨 일을 겪으려고?"

나는 그때마다 나와 책을 내겠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조영남 선생을 떠올린다. 그 주변에서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음을 나는 안다.

'좀더 큰 출판사에서 내지 그래, 홍보나 마케팅을 잘하는 곳에 맡기지 그래, 그동안의 수고료를 쳐줄 테니 원고를 넘기라고 하지 그래.'

나는 책을 내는 행위를 넘어, 어떤 손익을 따지기 전에 그가 나와의 약속을 무겁게 여긴 만큼 나도 그러고 싶었다.

다시 조영남과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을 주제로 그린 조영남의 작품. 이 그림 이후 그는 시인 이상과 이 보컬그룹에 꽂혀 수십 점의 그림을 틈만 나면 그리고 또 그렸다. 이 그림 대부분이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에 실렸다.
▲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을 주제로 그린 조영남의 작품. 이 그림 이후 그는 시인 이상과 이 보컬그룹에 꽂혀 수십 점의 그림을 틈만 나면 그리고 또 그렸다. 이 그림 대부분이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에 실렸다.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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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을 내고 난 뒤 오래 준비한 책을 내게 되었으니 속이 시원하겠다고 누군가 물었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물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동안 내 책상 위에 머물던 교정지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간 일이야 더할 수 없이 반갑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나와 더불어 지내던 선생의 원고뭉치를 정리해서 보내던 날의 섭섭함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언제나 그와 더불어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의 '책을 펴내며'에 그는 이 책이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책이 나온 뒤 자신이 쓴 초기 원고를 본 그는 또 말했다.

"이야, 징그럽다. 이 짓을 다시는 못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에게 책을 쓰는 행위는 부단한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니, 그런 노동의 무한 루프에 다시 발 담그고 싶지 않은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 10여 년 전 이상의 시 해설서를 쓸 때는 뇌경색으로 병원에 급히 입원까지 한 그였다.

그러니, 그때보다 더 체력이 떨어져갈 그와 역시 눈이 침침해져가는 내가 다시 편집자로 만날 일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다시 책을 쓴다면 돋보기 안경을 쓰고서라도 그 입력부터 마무리까지의 작업이 다시 내 몫이 되길 원한다.

편집자라는 이름으로 그와 더불어 보낸 시간 내내 나는 조영남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다 읽은 걸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는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재미와 이전에 못 누린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출간을 기념한 전시가 한창이다. 이 전시 오프닝에서 나는 관람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영남이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을 게 참 많다. 온갖 논란과 그릇된 선입견으로 가려진 그의 진면목을 통해, 그의 끝 모르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다."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출간과 시인 이상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10월 24일까지 열린다. 책에 실린 그림을 비롯해 다양한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출간 기자간담회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조영남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자신이 작곡한 노래 <이런 시>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출간 기자간담회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조영남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자신이 작곡한 노래 "이런 시"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 호리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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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그룹 시인 李箱과 5명의 아해들 - 조영남의 시인 이상 띄우기 본격 프로젝트

조영남 (지은이), 혜화11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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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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