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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전야 키르기즈 시위대와 야당연합 지지자들이 비쉬켁 알라토 광장에 모여 중앙선관위의 의회 선거결과발표에 항의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 혁명의 전야 키르기즈 시위대와 야당연합 지지자들이 비쉬켁 알라토 광장에 모여 중앙선관위의 의회 선거결과발표에 항의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 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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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치러진 키르기스스탄 의회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일련의 시위대들이 10월 6일 새벽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근무하는 '화이트하우스'를 장악했다. 약간의 유혈사태는 있었지만 사실상 무혈입성에 가깝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총선 무효"를 선언했고, 총리 등 주요 관료들은 사퇴의사를 밝혔다.

소론바이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모처에서 "법 질서 확립"을 요구하며 아직 하야하지 않고 있다. 기존질서가 유지되고 있으니 아직 완전한 의미의 혁명은 아니다. 시위 3일째를 맞은 10월 7일. 화이트하우스와 주변 알라토 광장엔 늦가을 정취가 가득하다. 격렬한 시위가 언제 있었는지 되레 평온하기까지 하다. 대형 백화점과 다운타운의 상점들은 문을 굳게 걸어잠갔다. 귀한 물건들은 미리 치웠다. 백화점들은 혹시 발생할지 모를 약탈사태에 대비해 자경단을 운영하며 감시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시위로 얼룩진 거리를 말끔히 치웠다.

7일 기자와 가까운 키르기스스탄 화이트하우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번 시위는 '혁명'으로 보여진다. 기존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듯 하지만 화이트하우스 궁 내부는 텅 비어있다. 혁명수비대를 자처한 시위대원들만이 삼삼오오 지키고 있다. 대통령 이하 장관들은 한 명만 빼고 모두 빠져나간 상태다. 

현 대통령도 시위를 주도한 세력들도 어느 쪽도 공개적으로 권력행사는 하지 않고 있다. 혁명이되 혁명이 아닌 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 헌법적으로는 아직 소론바이 현직 대통령의 통치 하에 있긴 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모든 현직 장관이 행정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총리와 국회의장, 검찰총장과 주요 시장·군수 등이 스스로 회견을 자청하고 사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히 혁명적인 상황이다.

시위 도화선은... 금권·부정선거에 경제적 타격

영국 BBC는 키르기스스탄의 시위에 '예기치 못한 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현지에 있는 필자 눈에도 적확한 표현으로 보인다. 심지어 시위대와 함께 '점령'에 성공한 야당 연합의 리더들도 큰 유혈사태 없이 총리 이하 각료들이 스스로 나가준 데 대해 의아할 정도다. 

주변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현 정부여당의 '부정 기획선거' 의혹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완패할 것에 대비해 여당 2중대 역할을 할 야당을 급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친여 성향의 유력 재력가와 기업가들이 급조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당명부에 올라 의원이 됐다. 친여성향의 이 신생정당은 여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원을 배출했다. 정부여당과 대통령에 가까운 정당들은 전체 의석의 90%에 가까이를 차지했다.

시위대들은 "급조된 정당은 선거관리 관계자들의 지원과 묵인 하에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대량으로 살포했다"라며 "선거는 당연히 무효가 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사회전반의 개혁과 깨끗한 정치를 부르짖던 야당들, 여론도 좋았고 당연히 의회 진입이 예상되던 유력 야당 4~5곳이 의회 진출 하한선인 7% 지지율 턱을 못넘어 한 사람의 의원도 내지 못한 것이 국민들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더해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국민들이 알라토 광장으로 순식간에 모여들었다는 분석이다.
     
시위대의 대통령궁 입성... 정부수비대 저항은 미미
 
 소론바이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소론바이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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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세력들이 그다지 조직화되지 않았는데도 혁명적 상황이 쉽게 진척된 것이 이 이채롭다. 지난 6일 새벽, '야당연합' 지지자와 시위자들 1500여 명이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근무하는 '화이트하우스' 정문을 밀치고 손쉽게 진입했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건물의 철문대문이 힘 없이 열렸다.

청사경비들이 막아서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호대원 등은 보이지 않았다. 미리 대통령궁을 떠나있던 수비대원들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봤다. 간간이 허공에 사격이 이뤄지기도 했다.

권력의 축은 기울고 있었다. 대통령궁 내 장관실을 지키는 비서진들도 힘 없이 물러섰다. 특별한 저항은 없었다. 궁 밖에는 이미 야당연합 지지자들과 시위대 수천 명이 화이트하우스 점령을 지켜보고 통제하는 상황이 됐다. 정문에 있던 시위대 일부의 손에 돌멩이가 들린 것 빼고는 진입한 시위대는 맨주맥이었다.

시위대가 '보호'한 유일한 장관... 아자 맛 카파로

수색에 나선 시위대원들은 대통령실부터 찾았다. 텅 비어있었다. 이어 총리집무실 그리고 각 부처 장관실 수색에 차례로 나섰지만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실, 총리실, 각급 장관실에는 보좌진 한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소론바이 젠베코프 대통령과 쿠밧벡 보로노프 총리는 회의를 주재하다가 전날 밤 어디론가 떠나고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차관들도 떠나고 없던 새벽 3시께, 40~50명의 시위대가 불이 켜져 있는 문화부장관실을 급습했다. 문화부장관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위대 리더가 젊은 장관을 보자 소리쳤다.

"아자 맛 카파로 장관을 해치지 말라. 이 분은 부패와는 관계없는 개혁적인 장관이다." 

아자 맛 카파로 문화부장관은 30대 초반이다. 그는 유목대회를 계량화해 세계 최초로 '세계유목민올림픽대회'를 시작한 공로로 20대에 장관에 발탁된 인물이다. 
 
 아자 맛 카파로 비치 키르기스스탄 문화부장관.
 아자 맛 카파로 비치 키르기스스탄 문화부장관.
ⓒ 키르키스스탄 정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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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관 취임 초기 수십 년동안 전직 장관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부패 고리에 있던 국가서커스단장을 전격 해임시킨 것. 국가서커스단장은 차관급으로 휘하 공무원들과 함께 반발했으나 아자맛 카파츠 장관은 단장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환기해 그를 퇴진시켰다. 아자맛 카파츠 장관은 "나는 최선을 다해 국가와 국민를 위해 일해왔고 지금도 일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 뒤 건물을 빠져나갔다. 주변 인사에 따르면 17명의 현직 장관 중 유일하게 야당연합 인사들로부터 정상근무를 인증받은 장관이었다고 한다.

이번 혁명적 사건은 '조용함'이 특이점으로 꼽힌다. 상대를 제거해야 혁명에 성공한다는 통념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 죽기살기식으로 부딪히는 게 아니라 협상을 동반해 유혈사태를 최소화하는 '유목 키르기스식 혁명'이란 인상이다. 쉽게 말하자면 '조용한 혁명'이다. 

선관위 "총선무효", 총리·검찰총장·주지사·시장 등 줄사퇴... 앞으로는?

혁명의 대상인 현 정부는 시위대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모처에서 "부정선거라면 선거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애매한 성명만 냈다. 화이트하우스 점령 이후 누르잔 샤일다베코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총선 원천무효"를 선언했다. 중앙선관위의 발표 이후 쿠바트베크 보로노프 총리를 비롯해 검찰총장, 주지사, 시장 등이 줄줄이 사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원집정부제인 키르기스스탄은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지만 행정부의 수반은 보로노프 총리다. 그는 시위대가 화이트하우스를 점령하자 저항도 없이 언론을 통해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라고 조용히 발표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일각에서 제기된 '모든 정당의 연석회의'는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그들대로 권력의 정통성을 갖고 있고, 시위를 주도한 야당연합도 승리를 주장하며 현 정부의 주요인사들을 교체하고 있다. 또한 12개 야당연합 내에서도 주요직책 등 '전리품'을 둘러싸고 내부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기 때문에 당장 모든 정당들이 함께 '향후'를 논의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 시국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현 소론바이 대통령이 야당연합과 협상을 통해 잔여임기 2년을 스스로 단축하고 대선과 의회 재선거 일정을 만드는 것이다. 소론바이 대통령의 정치적·법적 정통성 때문에 대통령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미 중앙선관위가 부정선거를 인정하고 선거무효를 상태여서 의회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 경우, 현 대통령의 잔여임기를 2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보장해줘야 소론바이 측도 받아들일 만하다. 소론바이 측도 자신들의 부정선거 기소문제가 걸려있어 의회 재선거엔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시나리오는 시위대와 야당연합들이 여세를 몰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면서 의회 선거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당장 대통령의 하야는 주변세력들과의 충돌이나 반발이 예상된다. 게다가 현재 야당연합에 의해 지명을 앞두고 있는 총리, 국회의장, 검찰총장, 비쉬켁 시장, 지역 단체장 등은 권력을 위해선 법적 효력을 가져야 한다. 야당연합은 현직 대통령과 현재 의회의 협조 하에서만 법적 효력이나 정당성을 갖출 수 있어 현재의 권력자들과 타협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양측간 무력충돌 가능성이다. 현재의 권력공백과 권력의 법적장치 문제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자신의 법적 지위를 강조하고 있는데 현행법상 이는 옳다. 시위대와 야당연합은 총리와 검찰총장, 국회의장을 자기 쪽 인사로 임명해놓고 의회를 통해 법적 효력을 밀어부칠 기세다. 시위대와 야당연합이 발표하고 있는 고위층 인사들은 의회의 인준을 받지않아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만일 대통령과 여당이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고 권력을 계속 행사하고, 야당연합은 이를 제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인사를 밀어 부치는 경우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현 대통령측도 그만큼 세가 있고 기득권층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정치분석가들, "소론바이 현 대통령 임기단축 후 의회 재선거" 전망
 
마나스 동상앞 부정선거 규탄 시위 키르기즈스탄 야당연합 지지자들과 시위대들이 지난 5일 밤 비쉬켁 알라토 광장에 있는 마나스동상 앞에서 키르기즈 국기를 흔들며 의회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 마나스 동상앞 부정선거 규탄 시위 키르기즈스탄 야당연합 지지자들과 시위대들이 지난 5일 밤 비쉬켁 알라토 광장에 있는 마나스동상 앞에서 키르기즈 국기를 흔들며 의회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 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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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언론에 따르면 야당연합이 이번 혁명에 대한 법적 보장을 위해 소론바이 현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자진사임'시키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탄핵을 하게 될 경우, 기득권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게 전개될 전망이다.

혁명 이후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혁명에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의로운 세상이 열릴까. 쉽지 않다. 이번에 정부를 향해 함께 기치를 든 세력에는 부패와 연루된 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번 혁명과정에서 정부는 대규모 시위에 놀라 감옥에 있던 인사들을 석방했다.

아탐바예바 전직 대통령이 석방된 데 이어, 비쉬켁 난방에 사용할 큰돈을 횡령했다는 전직 총리, 전직 비쉬켁 시장 등도 풀려났다. 물론 금광비리 폭로하다가 투옥된 자파로프 전 의원도 포함됐다. 석방된 이들은 부패 연루 여부에 관계없이 자의반 타의반 반정부 선봉에 섰다. 혁명전선에 서 있어도 모두 정의롭고 모두 뜻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를 향해 반기를 든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옥석'을 가릴 후일도 만만치 않다.

키르기스스탄 혁명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은 '힘 센 편이 우리 편' 정도다. 미국은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성명을 통해 "질서유지"를 촉구하고 "경제적으로 도울 일, 키르기스스탄의 발전을 위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유럽연합도, 돌발사태를 위한 독립국가연합 안보기구 모두 "폭력은 안된다. 우리는 민주주의 발전을 지지한다"는 수준의 성명을 냈다. 소론바이 대통령과 가까웠던 푸틴 대통령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속히 찾길 원한다"라는 외교적 수사로만 대응했다. "소론바이 대통령와 전화통화를 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푸틴 대통령은 "소론바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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