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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전 광주 북구 서강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2020.9.16
 16일 오전 광주 북구 서강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2020.9.1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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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도 학교의 시계는 돌아간다. 어김없이 학교엔 1차 지필 평가를 봐야 할 시기가 왔다. 요즘은 중간고사를 1차 지필 평가라 부른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우스개가 실감 나는 시절이지만, 학교 수업은 어떤 형태로든 진행되었고 그에 맞춰 평가도 실시해야 한다. 이제 두 달 정도 지나면 수능도 치를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실시되어도 수능은 예정대로 실시될 것이라고 교육부는 공언했다.

1학기는 줄어든 수업 일수 탓에 상시 시험기간 체제였지만, 2학기는 정상적인(?) 학사 일정이 진행되어 1학기보다 마음 급한 것은 많이 덜해진 편이다. 그래도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수시 비중이 커지면서 고등학교엔 시험 기간만 되면 극도의 긴장감이 돈다. 시험을 보는 당사자인 학생이 초긴장하는 거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긴장을 하는 사람은 학생 이외에도 많다. 먼저 학부모. 고등학교 자녀를 둔 가정은 시험 기간만 되면 초긴장 모드에 돌입한다. 학생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본격적으로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곳은 학원이다. 프로선수를 지휘하는 감독처럼 학원의 선생들도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하여 선두에서 진두지휘한다. 어쩌다 학교 시험 문제를 한두 개라도 적중시키면 그것이 학원 홍보의 엄청난 재료가 된다. 그 한두 개의 변별도는 중요하지 않다. 적중시켰다는 것이 중요하다.

학원 입장에서 힘든 것은 각 학교의 시험 기간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시험 대비는 보통 한 달 전부터 시작하지만, 시험 기간이 2~3주에 걸쳐 널리 퍼져 있는 바람에 실제 전투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학부모와 학원의 고생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고, 다들 어느 정도 예상들을 하고 있을 테니깐 말이다.

출제 오류 시비

과거와 아주 많이 달라진 것은 평가의 주체인 교사가 느끼는 긴장감이다. 과거에 시험 기간은 학생에겐 평가의 시기였지만, 교사에겐 일종의 휴식기였다.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하교하고 나면, 오랜만에 부서별로 선생님들끼리 회식도 하고 만나지 못했던 옛 동료들과 약속을 잡곤 하였다.

요즘은 어림없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일단 논서술형 평가가 늘어난 탓에 채점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기타 행정 처리 등이 복잡해졌다는 측면이 있긴 한데, 이런 건 크게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교사를 극도의 긴장으로 몰아넣는 건 출제 오류 시비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출제 오류가 제기된 적이 있다.

"성순이는 바나나와 수박 2개를 샀다"

극중 출제자는 이 문장에 나오는 '바나나'가 사람을 나타낼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엄청난 오류 시비에 휩싸인다. 바나나가 사람을 나타내는 별명이라면 성순이와 바나나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함께 수박 2개를 샀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냐는 문제제기.
 
 "성순이는 바나나와 수박 2개를 샀다" 드라마 <블랙독>에서 출제자는 이 문장에 나오는 '바나나'가 사람을 나타낼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해 엄청난 오류 시비에 휩싸인다.
 "성순이는 바나나와 수박 2개를 샀다" 드라마 <블랙독>에서 출제자는 이 문장에 나오는 "바나나"가 사람을 나타낼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해 엄청난 오류 시비에 휩싸인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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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시비는 시험을 치르고 나면 반드시 거치고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가 되었다.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해석은 천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수업을 통하여 해석을 일치시키는 공동의 탐구 과정을 겪어도 언어의 중의성은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간혹 문장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가 아니라 더 많은 지식이 출제 오류를 불러오는 수도 있다. 어느 영어 선생님은 영국과 프랑스 간에 펼쳐진 해전을 묘사한 지문을 출제했다가 큰 시비를 겪은 일이 있다.

문제를 풀던 학생이 그 해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것. 그 지식을 갖고 있는 학생이 문장을 읽을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읽을 때의 해석이 묘하게 달라지는 지점이 발생하였다. 출제한 영어 선생님은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다. 서로 해석이 달라지면서 정답 시비가 생겼다.

이런 분위기 탓에 과거에는 길어야 2~3일, 빠르면 하루에도 완성해내던 시험 문제의 출제 기간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출제 오류 시비가 없도록 문제를 내려면, 초안 문제를 내고 다른 선생님과의 교차검토, 그리고 자체적인 점검 기간까지 족히 2주는 넘게 걸린다.

과거에는 없던 풍속도 중 하나가 시험 당일 새벽에 시험지를 다시 등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번 시험에서 어쩐지 기분이 싸해서 시험 당일 새벽에 눈이 떠졌다. 오늘이 시험날이란 긴장감이 잠을 못 이루게 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시험지를 한번 다시 살펴보자는 마음으로 새벽에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아뿔싸. 이중 해석의 가능성이 있는 문항이 두 개나 발견된 것이었다.

새벽 여명이 밝아오자마자 학교로 출근하여 새로 출력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급하게 등사를 하고 시험지를 계수하였다. 이랬다고 해서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험 치는 내내 교무실에 대기하면서 학생들의 질문을 기다린다.

솔직히 말하면 질문을 한 학생이 누구냐에 따라 교사의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 질문을 한 학생이 전교 수위권을 달리는 경우라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감내해야 한다. 혹시 내가 어딘가 틀렸을까?

반대로 공부 실력이 좀 떨어지면 약간 안도의 한숨이 내리 쉬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이가 뭘 잘 몰라서 질문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 이의제기가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최종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끝나는 건 없다.

학원 강사와 학부모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학원에서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기출 문제 분석에 들어가고, 고학력 학부모들은 자기 전공 분야의 시험지를 돌아본다. 2주 남짓 기간에 출제한 문제가 완벽할 리가 없다. 큰 탈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매의 눈으로 어딘가 오류가 발생하면 다음 날 학생을 통하여 정식 민원이 들어온다. 교과협의회가 열리고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면 출제한 교사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 된다. 언제부턴가 시험은 학생과 함께 교사도 평가하는 기간이 된 것이다.

동그란 네모를 그리라는 요구

요즘은 사교육 기관의 내신 시험 문제 출제 경향 분석이 정교해지면서 불평등 시비를 낳고 있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내신 따기 유리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 족보를 아예 학교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전 년도 기출문제를 학교에서 공개하고 복사해 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른바 족보라는 것을 학교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형태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선배 등 사적 연결망을 통해서 얻는 것이라면 모를까.

덕분에 학교 시험 문제 출제가 더 어렵게 되었다. 요즘은 인터넷의 족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에서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거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유실한 과거 내 시험 문제를 찾는 경우도 있다. 출제자도 안 갖고 있는 족보를 연도별로 잘 정리하여 갖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출제 습관까지 피해가면서 문제를 내야 하는 고통까지 안겨준다.

언제는 너무 화가 나서 족보 업체에 전화해서 문제를 내리라고 요구하였다. 엄연히 남이 출제한 문제로 돈을 버는 것도 싫었지만, 더 화를 돋우는 것은 출제의 고통을 배가시키기 때문이었다.

이 시점에서 왜 그렇게 문제를 어렵게 출제하려고 애쓰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이른바 킬러 문항이라고 하는 고난도 문제 출제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더니,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가 '그럼 그런 문제를 안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세상이 어디 그리 만만하고, 교육 문제가 그리 쉬우면 인생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현재 내신과 수능 시스템은 공히 상대평가 9등급제이다. 출제진에게 가공할 사태는 시험을 출제하고 치렀는데 만점이 속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1등급이 사라지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수능 출제진에게는 물수능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내신 문제를 낸 교사에게는 학생들 대학 입시 어떻게 할 거냐는 비판이 쏟아지게 된다. 학생 줄 세우기에 실패한 출제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출제 오류를 범했을 때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세다.

그동안 수능의 체감 난도를 낮춘다고 교육과정을 축소하거나 EBS 연계율을 높이는 등 온갖 대책이 쏟아져 나와도 문제가 쉬워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의 대책을 내든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정상적으로 분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사라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EBS 연계를 하든, 교육과정을 줄여 공부량을 줄이든, 시험 문제는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게 나올 수밖에 없다. 시험을 대신할 그 무엇의 선발 기준을 내오지 않는 한 이건 불변의 현실이다.

올해 고3 수험생들이 학교 수업을 제대로 못 받아 재수생에 비하여 불리하니 수능을 쉽게 출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들의 수능 문제 적응도를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의견이다.

수능을 현재보다 쉽게 낸다는 것은 선발 시험으로서 기능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이야기다.

출제자 입장에서 시험 문제를 쉽게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렵게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쉽게 내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다. 문제를 어렵게 낼수록 언어의 이중적 해석 가능성이 높아지는 위험도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하는 출제자는 없다. 그럼에도 머리를 쥐어 짜내서 고난도 문제를 만드는 것은 출제자들에게 무슨 가학 심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선발 시험의 구조적 한계 내에 출제자들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훈련된 출제진들이 이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니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최첨단 사교육의 문제 분석 능력이 고도화되었고, 이에 맞춰 출제진은 그걸 피하려는 스킬을 몇 십 년 동안 키워왔다. 이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시험 시스템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된 진화의 과정이다.

수능이나 내신 문제를 쉽게 출제하라는 요구를 해선 안 된다. 수능이나 내신 시험에 선발 시험의 기능을 맡겨 놓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동그란 네모를 그리라는 요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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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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