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언가를 사용하거나 이용할 때,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고 어딘가 수고스럽다 여겨진다면 망설임 없이 그것을 '불편하다'라고 정의 내리곤 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의 여부는 수정의 정도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문제는 다수의 편리함을 위해 소수의 불편함이 무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우리는 '차별'이라고 부른다.
 
코로나 19 이후, 이제는 다중이 이용하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마다 손 소독제가 비치되고, 버튼 위에 비닐 커버가 씌워진 진 것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 그것을 아주 다행스럽고, 또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씌운 그 비닐 커버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손으로 버튼 위 점자를 만져서 층수를 알아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그 비닐 커버가 얼마나 '불편'할 것인지에 대해 나는 부끄럽게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터뷰에 응한 한 시각장애인은 코로나19로 식당이나 쇼핑센터의 출입을 꺼리게 되면서부터 비장애인들이 아주 '편리'하게 사용 중인 배달 어플 또한 음성 안내가 되지 않아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순간, 그사이 존재하는 약간의 틈을 비집고 차별은 날카롭고도 아프게 우리의 허를 찌른다. 기사를 읽고 자연스럽게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1960년대 백인 우월주의가 뿌리 깊이 박혀있던 미국 남부 지역을 배경으로 흑인 헬퍼(가정부)들의 고달픈 삶과 그녀들을 응원하려는 백인 여성 작가의 끈질긴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 '헬프'이다.
 
부유한 백인 사모님과 가난한 흑인 헬퍼
 
영화 헬프의 포스터 영화 헬프는 2011년 개봉작이다.

▲ 영화 헬프의 포스터 영화 헬프는 2011년 개봉작이다. ⓒ 조하나

 
'헬프'는 2011년 개봉작으로 영화 '라라랜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엠마 스톤이 주인공 스키터역을 맡았고, 배우이자 감독인 테이트 테일러가 메가폰을 잡았다. 84회 미국 아카데미와 6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등 각종 영화제에서 미니 역을 맡은 옥타비아 스펜서에게 여우 조연상의 영예를 안겨 주기도 한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3년 미시시피 잭슨 주에서 백인 여성들은 부유한 상류층 집안의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정원이 딸린 큰 집에 살며 음식 솜씨 좋은 흑인 헬퍼를 두는 것이 여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라 믿고 있다. 또 같은 시기 흑인 여성들에게는 백인 안주인에게 잘 보여 한집에 오래 머물면서 그녀의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헬퍼가 되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부유한 백인 사모님과 가난한 흑인 헬퍼의 입장이 시종일관 대비적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단순한 인종 차별의 문제뿐 아니라, 부와 빈곤, 오랫동안 수동적 삶을 강요받으며 주체성을 억눌러왔던 '여성'의 이야기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인 스키터(엠마 스톤)가 아니라 핵심 악역이자 그 마을 백인 사모님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의 입장에서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해보려 한다.
 
힐리는 그 당시 젊은 여성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가졌다. 능력 있는 남편과 정원 딸린 집, 파이를 기가 막히게 굽는 솜씨 좋은 흑인 헬퍼까지. 그래서 그녀의 주위는 늘 그녀를 동경하는 친구들로 넘쳐나고 그녀는 파티와 각종 사교 모임에 다니느라 바쁘다. 게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부녀회장 격인 그녀는 흑인 헬퍼들이 백인 집주인과 같은 화장실을 쓸 수 없도록 집집마다 별도의 '흑인용 화장실'이 만들어야 한다는 '위생법'을 발의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때, 힐리의 친구인 스키터(엠마 스톤)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힐리는 자신과 친구들 모두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를 꿈꾸며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스키터가 못마땅하다. 힐리는 스키터에게 남자를 소개해주는 등 겉으로는 잘해주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그녀를 은근히 비웃고 따돌린다. 그러다 스키터가 지역 신문사에 취직하자, 힐리는 자신이 발의하려는 위생법 법안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 실어 줄 것을 스키터에게 요구한다. 스키터는 당황한다. 사실 스키터가 진짜 쓰고 싶은 글을 따로 있기 때문이다.
 
스키터는 살림 정보 칼럼에 실을 노하우를 인터뷰한다는 명목으로 베테랑 흑인 헬퍼 에이빌린 (바이올라 데이비스)를 찾아가고, 그녀에게 백인 거주지 안에서 흑인 헬퍼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관한 증언을 책으로 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에이빌린에게는 백인 가정 아이 17명을 모두 사랑으로 키워냈지만, 정작 자기 아들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사고로 잃었다는 아픔이 있다.
 
스키터는 에이빌린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고, 집주인의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쫓겨난 에이빌린의 친구 미니(옥타비아 스펜서) 역시 에이빌린을 위해 스키터를 돕기로 한다. 백인에 관한 불평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목숨마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에이빌린과 미니는 차별과 모욕으로 얼룩진 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만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라 믿고 스키터를 돕는다. 그리고 에이빌린과 미니의 설득으로 다른 흑인 헬퍼들 또한 스키터의 책에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하기 위해 모인다.
 
오래된 차별의 역사
 
영화 헬프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백인 집주인 중 헬퍼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단 한 명  셀리아 역에 제시카 차스테인이 열연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된 배우인데 너무 매력적이라 분량이 더 많았으면 하고 아쉬울 정도였다.

▲ 영화 헬프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백인 집주인 중 헬퍼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단 한 명 셀리아 역에 제시카 차스테인이 열연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된 배우인데 너무 매력적이라 분량이 더 많았으면 하고 아쉬울 정도였다. ⓒ 조하나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차별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정의로운 저항 또한 그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 속 스키터는 정의가 아닌,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 글을 쓰려 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일부 사람들은 백인 구원자를 자처하는 위선적인 스키퍼를 응원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성이 욕망이 죄악시되던 시대상을 감안하면,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스키터의 선택은 정의롭진 않더라도 솔직하고 통쾌하다. 그리고 나는 힐리 또한 단순한 악역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키터가 쓴 책을 읽은 힐리는 분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힐리가 그동안 그녀의 세계 안에서 옳다고 믿어온 가치관을 통째로 배반하고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욕망이 단순히 부자 남편, 정원 딸린 집, 요리 잘하는 흑인 헬퍼, 아름다운 드레스로 한정되었던 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도 악인이라기보다는 시대에 순응하기를 택한 나약한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60년 전 인간의 존엄성은 피부색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졌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나서 우리는 이제 모두가 공평하게 '존엄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헬퍼'를 통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엘리베이터의 비닐 커버처럼,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어떤 사소한 차별에 관해서 말이다.
차별과 저항 영화 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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