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거리를 유지한다. 타인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인간은 균형을 벗어난 타인을 싫어하며,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부족함을 인정한 뒤론 줄곧 내 자리를 찾으며 지내온 것 같다. 타인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 그게 내 자리이길 바라면서.

가끔은 균형을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내가 짊어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짐을 다 풀어헤쳐 그것을 나눠 갖자고 제안해볼까. 뻔뻔한 사람이 되겠지만 뻔뻔하게 즐기면서 무책임 해져볼까. 아니면, 아주 숨어버릴 테니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볼까. 몇 번 고민해보면 타인은 내게 그리 큰 관심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시시한 결론이 난다. 결국, 이런 질문들 전부 스스로에게 보여주려고 무대에 올리는 인형극에 불과할 거다. 그럼에도 늘 의문형으로 끝나는 머릿속 질문은 팽팽한 줄을 늘였다 놓기를 반복한다. 앞으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세련된 거리를 선택하는 멋진 어른이 되자고 속삭이며.
 
최근,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 고민하던 중 생각난 드라마가 있었다. 2018년, tv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였다. 당시에는 여러 논란이 일었던 드라마라고만 알고 있었지, 작품 자체엔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우연히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영상을 보게 됐다. 배경도, 배우들도 칙칙함을 넘어 차가워 보였다. 배경 음악도 튀지 않고, 배우가 무심코 놓은 물잔조차 그 자리가 어색해 보이는 정도였다. 서늘함에 매료가 된 걸까. 이지안(배우 이지은 분)의 터진 입술이, 바람 부는 날 그녀가 신은 얇은 운동화가, 목이 올라오지 않은 양말 때문에 맨살이 드러난 발목이 전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여기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있다고.
 
청각장애를 가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돌보며 대기업 파견직도 모자라 야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스물 한살 손녀 지안. 아무리 벌어도 모자란 돈을 채우기 위해 그녀는 회사 대표와 거래를 한다. 부하 직원 박동훈 부장(배우 이선균)의 부인과 내연관계인 대표는 동훈을 회사에서 자르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 계획에 일조하게 된 지안은 당돌하게 돈을 요구하며 본인이 중간에서 판을 짜겠다고 한다.

그녀가 동훈에게 덫을 놓는 방식이 그럴듯한데, 그녀는 지하철에서 소란스러운 틈을 타 동훈의 핸드폰에 몰래 도청프로그램을 설치한다. 그때부터 그녀는 동훈의 일상 속 소리를 들으며 그에게 익숙해져 간다. 이것이 작품 속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바깥 이야기를 더 살펴보자면, 동훈은 혼자 할머니를 돌보며 작은 방에서 살아가는 지안을 보며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어린 청년쯤으로 여긴다. 그 후로 그녀를 사소하게 나마 도우며,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지안에게 왠지 모를 연민과 측은함을 느낀다. 지안이 동훈을 바라보게 되는 시작점과 동훈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작점이 아이러니하게 다른 부분이다.

정도를 따질 순 없지만 지안과 동훈에겐 자신이 감내해야 할 어려움과 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지안과 동훈이 완전 반대였다. 그런 동훈에게 지안은 점점 마음이 열리며 동훈의 모습에서 진정한 어른, 진정한 인간애가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게 된다. 극 초반부, 지안이 동훈을 바라보는 관점과 동훈이 지안을 바라보는 관점이 교묘하게 바뀌어 간다.

지안은 '인간과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이었고, 동훈은 '인간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인간' 이었다. 사람에게 속고, 비난받고, 폭행당했던 지안과 그런 사람에게 기대하고 싶지 않고 실망하고 싶지 않아 애써 거리를 유지하는 동훈은 출발지점부터 인생의 레이스는 달랐지만 삶에 큰 아름다움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비슷했다.

그들은 그저 있는 자리에서 행복하기를 바랄 뿐, 더 큰 행복을 좇으려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바라던 행복은 다른 누구도 쉽게 누리기 힘든 행복이었다. 사랑하던 사람이 중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정희'도,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아내와 이혼하게 된 중년 남성 '상훈'도, 남편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떤 거리도 유지할 수 없게 된 동훈의 아내 '윤희'도. 자신들이 자초한 슬픔이겠지만 그들이 바라지 않던 슬픔이기도 하다.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은 자기의 고유한 슬픔을 누군가와 비교하며 으스대거나 자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안의 "빨리 그 나이(중년)가 되고 싶어요. 그럼 인생이 좀 덜 힘들거잖아요." 라는 말에 모두가 지긋이 바라봐줄 뿐, 이 나이가 되어도 인생이 안 힘든 건 아닐 거라는 말 따윈 하지 않는다. 윤희는 조용히 지안의 팔짱을 껴준다.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정희는 말한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도 인생이 안 힘들진 않았네"라고. 지안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긍정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들이 짊어진 짐을 함부로 쉬이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행복을 수치로 가늠할 순 없는 만큼 불행 또한 타인이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고유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너만의 행복, 너만의 불행이라 여기며 '그것은 나와 아주 상관없는 무지의 세계야'라고 결론 내려버리면 우린 더이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인간들이 되어버릴 것 같다.

단순한 동정이나 잠깐의 슬픔이 아닌, 당신의 아픔을 모두 이해하진 못해도 느끼려 한다고, 그럼에도 다 느끼진 못하겠지만 함부로 그것을 쉽게 내려놓으라 훈계하지 않겠다는 시선을 가지면 세상이 조금은 덜 추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동훈과 지안이 행복하자고 했던 대사에는 세상이 따뜻해질 거란 희망보단, 세상이 조금은 덜 추워지길 바란다는 염원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의 아저씨>는 로맨스나 치정극같은 장르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인간들이 무더기로 나와, 그런 인간들끼리 인연을 맺어가고 실수하고 자책하며 다시 노력해보는 매력 없는 인간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극 중 인물들 또한 정신없이 살며 지루한 어른이 되어있는 정도다. 지안에겐 그런 지루한 일상마저 대단히 행복해 보였을 것이었겠지만. 멋진 것을 기대하거나 보상이 되어줄 깔끔한 결론을 바랐다면 이 드라마는 기대에 부응해주진 못할 것이다.
 
난 이 드라마를 보며 내가 유지하고 싶은 '타인과의 거리'가 그렇게나 차가운 건 아닐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 시선이 적어도 나에겐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려는 방향으로 드라마를 이해하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있었던 생각에 윤곽을 잡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드라마를 받아들이고 싶다. 지안이 유지할 수밖에 없던 타인과의 거리, 동훈이 유지하려 애쓰던 타인과의 거리가 세상을 조금 덜 추워지도록 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물론, 극이 진행되면서 나오는 대사 중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내 생각과도 맞지 않는 이야기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그런 인물들의 사고라고 인정을 할 수밖에 없는 부족한 부분들일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타인을 향한 시선과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질타와 부정이 아닌 이해의 영역에 왔을 때, 우린 가장 좋은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내게 맞는 사람과 내게 맞는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게 인간이겠지만 말이다.
나의 아저씨 아이유 이선균 이지은 TVN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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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사와 문학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과 관찰을 통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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