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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앙칼진 비명이 들린다. 창밖으로 나가보니 아래층 싸움하는 소리다. 올해 초 신혼부부가 이사 왔는데 시도 때도 없이 싸웠다. 특히 새벽에 여자가 이성을 잃고 지르는 고함, 흐느껴 우는 소리는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을 사운드로 듣는 거 같았다.

'쾅!' 소리와 '쿵쿵' 찧는 소리가 반복되면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겨 뉴스에 나오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불상사를 막고 싶어 경비실에 연락했다. 경비원은 도와줄 수가 없으니 앞으로는 경찰서에 연락하라고 한다.

경찰서에 연락하기에는 일이 커지는 거 같아 싸움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동시에 시들지 않고 싸웠던 우리의 신혼을 이웃들이 조용히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끄러움과 함께 이름 모를 이웃들에게 얼마나 고맙던지 아래층 분에게 안녕을 빌어주었다.

어느 날 위층에 이삿짐 사다리가 놓였다. 어떤 이웃이 올지 몰라 우리 가족은 맘을 졸였다. 이웃에 따라 집안의 공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벽을 사이로 둔 빌라, 아파트와 같은 건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살면서 몸소 체득한 사실이었다.

이웃들과 더불어 살면서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게 힘든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고3 수험생 시절, 위층에는 음대 재수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있었다. 매일 자정이고, 새벽이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는 소음 그 자체였다.

수험생이라는 같은 입장에서 절박했지만, 다른 목표를 가진 입장에서 싸웠다.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미칠 거 같았던 시간이었다. 당시 너무 큰 스트레스로 인해 피아노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렸다. 뉴스에서 층간소음으로 흉흉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웃 간의 불협화음을 겪는 고통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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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의 이사 날, 초인종이 울렸다. 젊은 부부와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수박을 건네주며 위층으로 이사 왔다고 잘 부탁한다고 했다. 수박을 본 순간 덜컥 겁부터 났다. 얼마나 시끄럽게 뛰어다니려고 미리 뇌물을 주는 것일까. 혹시 층간소음으로 맘고생 하다 전의를 다지고 이사 오신 건 아닌지 의심부터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사 왔다고 인사하러 온 이웃을 처음으로 본 사실에 신기하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저도 그 마음 알아요. 조심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노력해야죠"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분들은 수박을 극구 건넨다. "이거 받으면 힘들 때 싫은 소리 못할 거 같아요. 진짜 괜찮아요." 난 진담 섞인 농담으로 사양했지만 도로 가져갈 수 없다며 손에 쥐여 주셨다. 층간소음으로 누적된 경험이 쌓였던 터라 수박을 보며 갸우뚱했다. 이 수박이 독이 되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토요일 밤,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드르륵, 쿵! 와다다닥 거리는 소리는 밤이라 그런지 더 크게 울렸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새벽 2시가 넘어도 멈출 기세가 없다. 나는 이 시간에 찾아가면 실례가 아닐까, 수박도 받았는데 참아야 하는 건 아닌지 깊이 고민했다.

누웠다 일어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실례를 무릅쓰고 올라갔다. 위층 분들은 깜짝 놀라 미안해 하셨다. 늦은 밤 못 참고 올라간 게 미안했지만 어찌 해결된 거 같았다.

그 다음 주 토요일,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소리에 화가 났다. 지난주보다 더 심했다. 한낮에도 그렇게 시끄러울 수 없을 거 같았다. 사람들의 동선이 그려질 만큼 소리는 가까웠다. 한참을 고민하다 또 찾아가는 건 실례라는 생각에 손편지를 썼다.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는 것과 밤에는 자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편지를 위층 문틈에 끼워놓았다. 이틀 뒤 답장이 왔다. 정말 죄송하다고 집들이였다고 했다. 바로 올라오지 않고 망설였다는 것과 편지로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집들이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항상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가 되었다. 소통하는 거만으로 후련했다.

층간소음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이웃이 되는 거라고 한다. 수박을 답례로 난 김치를 선물로 드렸다. 우리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분은 내 손을 덥석 잡고 시끄럽지 않냐고, 괜찮냐고 물어봐 주었다.

"집인데 편해야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는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주었다. 걱정해주는 마음만으로 작고 큰 소음이 무뎌졌다. 언제라도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음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웃이 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집에 사는 아주머니는 우리 집이 며칠 비우면 전단지를 떼주고, 택배 물건이 장시간 노출되어 있으면 잃어버릴까 보관도 해주신다. 속 깊은 이웃을 보며 배워가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거만으로 마음이 놓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짐을 나를 때 열림 버튼을 눌러주는 성의에 감동하고 만다. 기대하지 않았던 이웃에게 느끼는 반전 포인트라서 그럴까. 사려 깊은 이웃을 보면 절로 닮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서로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이웃이야말로 행복의 척도가 되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중복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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