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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5일 이 공무원이 피격된 것으로 추정된 황해도 등산곶 해안 인근에 북한 군함이 이동하고 있다.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5일 이 공무원이 피격된 것으로 추정된 황해도 등산곶 해안 인근에 북한 군함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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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벌어진 비극은 참혹하다. 많은 이들이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고 슬픔을 견뎌야 하는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을 것이다. 북한이 관련된 일에서는 더욱이 일방적인 정부의 발표나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믿는 것이 섣부른 일이고, 더구나 이번 일은 납득가지 않는 부분들이 꽤 많다. 현재로서는 이 비극의 진상에 대해서, 돌아가신 이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남북한 군부의 주장들을 모두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군대는 국가기구 중에서도 특히 더욱 억압적이고 비밀주의, 관료주의, 보신주의가 심각한 곳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터지면 일단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진실을 덮고 '안보'를 핑계로 정보를 비공개하는 일이 너무 자주 있는 곳이 군대이다. 그래도 양쪽의 주장 중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바탕으로 했을 때도 이번에 북한 군부의 대응은 명백히 반인도적인 것이었고 규탄받아 마땅하다. 분명하고 철저한 반성과 사과, 재발방지 조처가 이어져야 한다.

그런 대응이 코로나 방역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맞다면, 이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낳은 카오스적 공포 속에서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대응 중에 하나로 남을 것이다. 사람을 바이러스 취급하면서 입국금지를 주장하고, 다수를 위해 소수 병약한 사람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 취급하고, 검은 가방에 넣은 시신들의 화장 처리를 지원도 없이 방치하던 세계 곳곳의 권력자와 언론들은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북한 정권과 군부만을 타자화하고 악마화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잘못된 프레임으로 몰아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과 많은 주류언론이 보이는 지독히 선택적인 분노와 철저히 이중적인 반응에는 공감보다 거부감이 들뿐이다. '어떻게 이런 야만적이고 엽기적인 행태가 있을 수 있냐'고? '비무장한 민간인에게 저렇게 대응하는 국가가 어디있냐'고? '우리 국민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데 정부는 뭐하고 있냐'고?

국경을 넘어가려는 사람을 죽이는 행태는 멕시코 국경에서 미국 국경수비대가 흔히 저지르는 일이고 트럼프는 그 벽을 더 쌓아 올리고 있다. 비무장한 민간인을 함부로 잔인하게 사살하는 것은 미국 경찰이 너무 많이 해 온 일이어서 지금 거대한 운동이 촉발된 상황이다. 우리 국민이 산업현장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데도 기업의 이윤을 우선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만들지 말라고 막아온 것이 누구인가?

남북간의 국경에서 벌어져온 야만도 어느 한쪽만 저질러온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 휴전선을 넘어 월북하려던 사람을 잔인하게 사살한 것은 한국군이었고, 그게 '매뉴얼에 따른 정상적 대응'이었다. 그때 보수언론들은 뭐라 한 적이 없다. 휴전선에서 사소한 일만 벌어져도 '대응 사격과 응징'을 주문하고, 소극적 대응에는 "노크 귀순" 운운하면서 '휴전선이 뚫렸다', '안보가 무너졌다', '교전수칙이 사라졌다'며 목소리를 높여온 것도 국힘당과 냉전 보수언론들이다.

이런 냉전적이고 호전적이 태도와 세력이 당연히 북한에도 존재하고, 그것이 또 이런 비극을 낳은 것이다. 무엇보다 이 비극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과 바다에 선을 긋고 벽을 세워놓고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넘어가면 총을 쏘고 처벌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군사적 대치 구조를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는 것을 다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군사 안보는 너무나 중요해서 군인과 군대에게 맡겨둘 수 없다'는 말을 상기하게 한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투명성과 거리가 먼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병장회의'가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큰 웃음을 준 것도 그 때문이다. '카투사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병사 소비에트가 등장했다는 말인가'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 했던 게, 군대는 철저한 상명하복과 계급적 위계질서로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치고 아프고 심지어 수술을 해서 잘 걷지 못하면 당연히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다는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이 군대이다. 청년들을 가둬두고 살상 훈련을 시키며 서로 감시하고 갈구도록 만드는 곳이 군대이다.

따라서 군부의 고위장성들은 기본적으로 호전적이고 냉전적, 권위주의적, 우익적이다. 국힘당에서 최근에 추미애 공격을 주도한 신원식이 대표적이다. "문재인이라는 뿌리를 따라가면 김정은이라고 하는 악의 뿌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던 신원식은 '전광훈 키즈'라 불리며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단골연사였다.

더구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군부 고위장성들은 대표적으로 선출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진정한 권력자들이다. 국가의 군사안보 정책과 전략은 기본적으로 이들의 통제와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은 기본적으로 냉전적 대립, 군사적 대치와 긴장, 군비증강, 무기 수입, 심지어 전쟁을 선호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지위와 기득권 유지에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서해는 이런 남북한의 군부와 주변 강대국의 군부가 오랫동안 군사적 대치를 유지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만들어 온 곳이다. 각종 포격 사태와 두 차례의 해상교전이 모두 이 곳에서 벌어졌다. 미군의 전투기와 항공모항, 잠수함 등이 수시로 전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소한 충돌이나 심지어 오해와 오판이 국지적 충돌이나 전쟁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번에도 어업지도원이 사망하던 무렵에 주한미군은 전투기 3대를 그 지역에 출격시켜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고인의 유해라도 하루빨리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NLL을 두고 또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NLL이라는 이상한 것이 함부로 못 건드리는 괴물이 돼서, 우리 어릴 때 책상에 줄 그어놓고 넘어오면 칼로 찍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노무현 전대통령)하게 돼 있는 것이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 무슨 선이 있느냐, 넘어오면 어떻고 넘어가면 어떠냐, 같이 힘을 모아서 주검이라도 빨리 찾아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지 않냐...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이런 상식은 잘 통하지 않고 있다.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목소리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일본이 식민지배와 전시에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들에 대해선 사과없이 넘어가자거나,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게 '반일 종족주의'라던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점에서 정의당 김종대 전의원의 '북한 함정을 격파했어야 했다'는 발언도 너무나 안타깝다. 평소의 합리적 견해와 비교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언론이 또 발언을 왜곡한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국힘당은 김종대 전의원 발언을 환영하며 악용하고 있다.

정의당의 '민주당과 차별성 긋기'가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정말 곤란하다. 이것은 정의당이 박근혜 정부 때 종북몰이에 타협하면서 "헌법 내 진보"를 말했던 것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정의당이 기성체제가 강요하는 논리에 머무르며 진보정당으로서 차별성을 흐리게 된 출발점이었다. 이번에 세워질 정의당 새지도부가 이런 오류의 뿌리에서 벗어나 기득권 우파에 누구보다 단호히 맞서며, 미적거리는 민주당을 뛰어넘는 급진적 차별성 긋기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차별금지법 문제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듯이 말이다.

오늘날 청년남성들 속에서 <가짜사나이> 유튜브와 '이근 대위'가 커다란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도 불길하다. 군사훈련 과정에서 대상자들을 강압적으로 학대하며 괴롭힘과 막말, 욕설까지 난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민간군사기업이 만든 이 프로는 남성중심적이고 폭력적인 군대문화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마초적인 남성성을 우상화하고 있다. 이런 일부 청년들의 정서는 공감할 것이 아니고 도전할 문제다. 국경도, 국가도, 소유도 없는 세상이 오면 살인도, 전쟁도, 희생자도 없을 것이고 평화와 인류애 속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될 것이라던, 존 레넌이 <이매진>에서 노래했던, 그런 이상주의야말로 지금 가장 절실하다.

따라서 만약 지금 보수언론들이 비난하듯이 문재인 정부와 통일부 등이 '이 지경에도 평화, 대화, 화해, 종전을 추진하려 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벽을 세우는 게 아니라 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러니 국힘당과 주류, 보수 언론들에게 말한다. 스스로 눈에 핏발을 세우고 목에 핏대를 높이는 것은 자유겠지만 '당신 눈에는 왜 핏발이 안 서 있냐? 혹시 종북이냐?'고 다그치지 좀 말라. 이 비극 속에서 슬픔을 나누기도 아까운 시간에 당신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도 괴롭다. 

태그:#서해 , #어업지도원, #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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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행동하길 원하며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실행위원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여기서 봐 주세요. http://anotherworld.kr/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74673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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