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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조사단은 유해가 매장된 구덩이가 세 줄기로 좌우로 뻗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현재 유해발굴은 가로 10m, 세로 10m 정도에서 진행 중이다. 발굴단은 산 위쪽을 중심으로 비슷한 폭의 세 개의 구덩이가 좌우로 뻗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붉은 선은 기자가 구덩이 방향과 위치를 임의로 사진에 그려 넣은 것이다.
 공동조사단은 유해가 매장된 구덩이가 세 줄기로 좌우로 뻗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현재 유해발굴은 가로 10m, 세로 10m 정도에서 진행 중이다. 발굴단은 산 위쪽을 중심으로 비슷한 폭의 세 개의 구덩이가 좌우로 뻗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붉은 선은 기자가 구덩이 방향과 위치를 임의로 사진에 그려 넣은 것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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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골령골 1학살지의 구덩이 위치와 개수. 너비 2m, 깊이 2m 가량의 100m 길이 구덩이 2개와 50m 구덩이 1~2개로 모두 3~4곳으로 추정했었다. 첫번째 열 사진은 스카이뷰, 두벌째 열은 지도이고, 우측에는 지적도를 표시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골령골 1학살지의 구덩이 위치와 개수. 너비 2m, 깊이 2m 가량의 100m 길이 구덩이 2개와 50m 구덩이 1~2개로 모두 3~4곳으로 추정했었다. 첫번째 열 사진은 스카이뷰, 두벌째 열은 지도이고, 우측에는 지적도를 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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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골령골 민간인 집단 1학살지에서 세 줄기의 구덩이가 확인됐다. 골령골 학살 사건의 중심부인 1학살지에서 구덩이의 수와 형태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아래 공동조사단)은 유해가 매장된 구덩이가 세 줄기로 좌우로 뻗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현재 유해발굴은 가로 10m, 세로 10m 정도에서 진행 중이다. 그런데 유해가 산자락 아래, 중간, 아래쪽에서 각각 드러났다.

발굴단은 산 위쪽을 중심으로 비슷한 폭의 세 개의 구덩이가 좌우로 뻗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덩이의 폭은 각각 약 3m 정도다. 세 줄기 이상의 구덩이에 유해를 매장했다는 증언 또는 기록과 일치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은 사실이었다

<오마이뉴스>가 만난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1학살지에서는 폭 2~3m, 길이 100m 가까운 구덩이가 2개, 같은 폭의 50m 길이의 구덩이가 1~2개로, 모두 3~4개의 구덩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모두 합하면 1학살지에서만 암매장 구덩이 길이가 250~300여m에 이른다.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이름 붙인 이유다.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직후 유해가 매장된 모습을 목격하고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제목의 기사에서 암매장 구덩이 수를 모두 6개라고 썼다.
 
"6개의 구덩이는 모두 6피트(2m)의 깊이다. 세로는 6피트(2m)에서 12피트(4m)에 이르렀다. 구덩이의 길이는 가장 긴 것이 200야드(200m)였고 두 개가 100야드(약 100m), 가장 짧은 것이 30야드(약 30m)였다."

[관련 기사 : "죽음의 구덩이, 삐져나온 손·발·머리" http://bit.ly/4nW5Rt]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직후 유해가 매장된 모습을 목격하고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제목의 기사.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직후 유해가 매장된 모습을 목격하고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제목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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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가 골령골 민간인학살 사건 직후 현장을 방문한 후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제목의 기사 사진. 암매장 구덩이 위로 채 묻히지 않은 희생자의 발과 손, 다리가 삐져 나와 있다.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가 골령골 민간인학살 사건 직후 현장을 방문한 후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제목의 기사 사진. 암매장 구덩이 위로 채 묻히지 않은 희생자의 발과 손, 다리가 삐져 나와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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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턴 기자가 본 200m 구덩이는 골령골의 2학살지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1학살지에는 100m(100야드) 2개, 30m(30m) 1개 등 모두 세 개의 구덩이가 있다고 기록해 지역 주민들과의 증언과 유사하다.

하지만 매장지 주변이 70년 동안 농경지나 건축용지, 개발사업 등으로 훼손돼 암매장지 또한 대부분 훼손됐을 가능성도 큰 상태다. 다행히 일부이지만 3개의 구덩이 존재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발굴단은 구덩이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면 이중 2개의 구덩이는 길이가 최소 수 십미터가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7년 시굴조사 중에 현재 발굴지 왼쪽 인근에서 유해매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장지의 길이는 아직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구덩이 세 개 이상, 형태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

박선주 유해발굴단장과 안경호 총괄담당(4.9평화통일재단 사무국장)은 "유해발굴 과정이지만 1학살지에서 유해 매장된 구덩이가 세 개 이상이고 그 형태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유해발굴은 1학살지를 중심으로 40일간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이곳 골령골에 평화역사공원(진실과 화해의 숲)을 조성하기로 하고, 현재 유해발굴과 설계 국제 공모를 진행 중이다.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 2차 : 7월 3~5일, 1800명 / 3차 : 7월 6일~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가 자행됐다.

[관련 기사]

'대전산내 골령골 대책회의' 발족 http://omn.kr/1p2mh
대전 골령골 희생자 유해 22구 발굴 http://omn.kr/1p2b7
대전 골령골 민간인집단희생지 역사공원 설계 국제공모 http://omn.kr/1oyvb
대전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유해 본격 발굴한다 http://omn.kr/1p09z
"멈춰요, 멈춰!" 흙 사이로 모습 드러낸 두개골 http://omn.kr/1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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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민 의원 "골령골 아픈 과거 치유, 내게 주어진 사명" http://omn.kr/1p245

태그:#골령골, #유해발굴, #대전 동구청, #공동조사단, #민간인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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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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