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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답이 없는 것에 대해 질문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기에 남에게 막연히 묻곤 한다. 가령 "날 평생 사랑할 수 있어?", "우리는 평생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만약에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어쩌지?" 같은.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미래라고 했으니, 아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평생이나 영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무수히 펼쳐진 영원이라는 것. 그것에 대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 몸을 내던지는 기분이다.

어디서 어떤 파도가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진 바다에도 '태풍의 눈' 따위를 떠올리며 불안에 떨겠지. 그러니까 하루치의 고민이나 계획을 떠올리는 건 그럭저럭 할지라도 평생을 한꺼번에 생각한다는 건 그토록 벅찬 것이다.

나에게 평생을 떠올렸을 때 겁이 나는 일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나의 건강이고 둘째는 사랑과 관계다. 나머지는 내 삶에서의 유희나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의지 같은 것들인데 그건 사실 선행한 두 가지만 충족되면 자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건강과 사랑 중에서도 더 걱정이 되는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후자인 사랑인데, 건강은 내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인 내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는 것은 당장의 몸매 관리를 위해서도 있지만 평생에 걸친 건강 관리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러니 매일 30분이라도 움직이고 뭐라도 들고 당길 수밖에. 다행인 것은 운동을 투입하면 무조건 어제보다 건강한 몸이 산출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내가 일흔의 허리를 조금이라도 담보할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문제는 사랑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워지고, 사회의 중심 세대와의 분리는 더욱 급격해진다. 무엇 하나 손쉽게 접근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나의 접근을 대부분의 사람이 반기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내가 당연히 누리는 사회, 경제, 문화 그 모든 측면에서 한 발자국씩 물러나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때에 내게 남을 것은 결국 내 옆에 있을 단 한 사람 내지는 단 한 무리 정도로 꼽을 수 있는 관계가 될 터. 그 관계를 잘 만들기 위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사회, 경제, 문화 그 모든 요소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무엇이 나를 끝까지 사람답게 살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최종적으로 나를 살게 할 것이 돈일지, 명예일지, 권력일지, 지식일지... 아무리 추려봐도 사람만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에 대한 고민으로, 사람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걸 보면 더더욱.

그래서인지 연애를 할 때면 종종 "우리가 평생 행복할 수 있을까?", "나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어?" 같은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떠올려 봤을 때 딱히 인상적인 답변이 없을 걸로 봐서는 그때의 대답들이 영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나 "모르겠는데"라고 말하는 이성적 성격의 소유자. 그 정도의 분류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남자친구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역시 "당연하지"라고 답을 했기에 그다음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부연설명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내가 그렇게 하면 되는 거잖아"라고.

'평생'이라는 걸 떠올렸을 때의 막연함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훨씬 강한 경우를, 글쎄 나는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사람에게 관계라는 건 나에게 건강과 같은 거구나. 오늘 운동을 좀 더 하면 무조건 건강은 점점 더 좋아진다, 라고 믿는 것처럼. 이 사람 역시 내가 잘하면, 내가 더 표현하면, 내가 진실되면 관계가 계속해서 깊어지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나에겐 좀 새로운 생각의 전환이었다. 나에게 관계는 잘 맞는 사람들이 서로를 잘 찾아내서 만나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견디면서 잘 만나가는- 아주 막연한 그림이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관계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그리고 그 과정에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충분히 개입되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어른이구나.

부끄럽게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적지 않은 연애를 했음에도 연애란 노력이나 의지의 문제보다는 직감과 궁합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서로 달콤한 말을 주고받다가 그게 거짓이거나 허황된 약속임을 알면 돌아설 수도 있는 게 연애라고 생각했다. 운동이나 일은 애쓰면서 해도 연애만큼은 운과 감으로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식의 안일한 태도는 단지 연애뿐 아니라 모든 관계를 견고히 만들지 못한다. 나 역시 그러한 깨달음이 없었기에 이제껏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또 동시에 많은 사람을 잃기도 했던 것이다(물론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많은 성장을 했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의 이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분명히 더 좋은 사람이 됐을 거라고, 나는 장담한다. 관계라는 건 내 의지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영원의 망망대해에 빠져 허우적 대는 상대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좋은 사람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온 것은 내가 이 사람과 같이 성숙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사람으로부터 관계라는 게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진실되게 임해야 하는 것인지 차근차근 배울 것이다.

영원이라는 것, 평생이라는 것. 당장 생각하면 너무 두려운 일이지만, "오늘의 내가 그렇게 하면 평생 잘 될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한 세트를 더하면 일흔의 내가 아주 볼품 없는 노인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믿듯이, 오늘 내가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면 일흔의 내가 꽤 외롭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야겠다. 지금의 내가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그 사람의 평생 역시 두렵거나 외롭지 않도록, 오늘의 그에게 오늘의 나로서 힘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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