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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폭력·성폭력 문제는 그 심각성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9년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피해 폭로, 올해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거치며 스포츠 폭력·성폭력 문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20년 동안의 스포츠 폭력·성폭력 판결문 163건을 입수해 분석했다. 판결문에 담긴 사건의 심각성·특수성,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양형사유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이 기사는 그 일곱번 째다. [편집자말]
 쇼트트랙 임효준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1000미터 예선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쇼트트랙 (해당 내용과 무관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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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경기도의 한 쇼트트랙 실업팀 코치는 29세, 22세 등 소속 선수에게 자세 교정을 명분으로 수차례 성추행을 저질렀다. 같은 공간에서 훈련 중이던 11세 초등학생 선수의 바지와 팬티를 끌어 내리는 등 미성년자 강제 추행도 저질렀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더 나아가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들을 무고죄로 고소했다. 1심은 그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어찌 된 일인지 항소심에선 가해자의 형량이 벌금 2천만 원으로 대폭 낮아졌다. 항소심 판결문에서 그에게 유리한 양형사유로 판단된 대목을 살펴봤다. '성실'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피고인은 국가대표 선수를 거쳐 감독으로서 성실하게 후배 선수들을 양성해왔고, 이 사건은 대체로 공개된 장소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발생한 것이며, 일부 범행의 경우 피고인이 훈련 중 자세 교정 등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 2015년 9월 11일 서울고등법원 2심(재판장 이광만) 판결
 
성폭력 가해자의 성실함이 감경 사유 중 하나로 언급된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항소심에서 벌금형이 확정된 이후 해당 코치를 영구제명 처분했다가 재심을 통해 3년 자격정지로 징계를 축소, 가해자에게 다시 필드에 설 기회를 쥐여줬다.

"피고인이 훈련 중 자세 교정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가해자의 훈련 방식을 함께 찾아봤다. 1심 판결문 속 범죄 사실로 자세히 기술된 내용이었다.

쿠션 훈련, 벨트 훈련, 밀고 모으기 훈련, 방향 전환 훈련, 중심이동 훈련, 직선 운동 훈련... 이 코치는 피해자들에게 각종 훈련을 지도하며 "양 손바닥으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감싸듯 만지"거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쓸어" 내리는 등 추행을 저질렀다. 2013년 1월부터 5월까지 반복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30년 교사 경력이 거기서 왜 나와?
  
 2018년 9월 3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사격장에서 열린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 대회 10m 공기소총 본선 여자 경기에서 각국 대표 선수단이 집중하고 있다.
 사격 대회가 열리는 현장 (해당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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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폭력·성폭력 판결문에선 가해자의 성실함에 주목한 판단이 양형사유에 종종 등장한다. 체육교사로 수십 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공적을 언급되는가 하면, 양형 수위에 따라 공무원 연금법상 연금을 못 받게 되거나 급여에 제약이 생길 수 있는 걱정도 담긴다.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 사격부 감독이자 체육교사의 성추행 사건에서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그의 30년 교사 경력을 강조했다. "30년 동안 교사로서 성실히 복무하였고", "피고인의 사회적 유대 관계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었다.

"절 불러서 틴트 발라줄 테니까 이리 와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셔서 제가 싫다고 했는데. '아 그냥 이리 와봐' 힘으로 끌어 당겨서 턱을 잡고 한 손으로 발라주셨어요. 립스틱 바르는 그 손길? 번진 자국이 있을 것 아니에요. 그걸 자기 손으로 만져서... 되게 기분이 더러웠어요."

사건 발생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한 피해자의 진술이다. 가해자는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브래지어 끈이 있는 부분을 만지거나,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피해자를 불러 갑자기 팔을 수회 주무르고 양 볼을 감싸 쓰다듬는 등의 추행을 저질렀다.

범행은 학교 강당 등 가해자가 '성실히 복무'했다는 지도 장소에서 벌어졌다. 1심에서 내린 벌금형 700만 원을 500만 원으로 깎아준 항소심의 원심 파기 배경도 눈에 띈다. 피해자가 당시 입은 '옷'에 주목,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대목이다.
 
"당시 피해자는 사격복을 입고 있었는데, 캔버스와 천연 가죽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써 자세 고정을 위하여 매우 딱딱한 재질로 되어 있고 (중략) 통상복 위로 주무를 경우와 비교해 신체 부위에 가해지는 느낌의 정도가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중략)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추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 2016년 11월 29일 광주고등법원 전주재판부 2심(재판장 노정희) 판결
 
가해자 기여도 주목한 판결들... "관련 없음 인지해야"

한 현직 판사는 일부 스포츠 폭력·성폭력 판결에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둘러싼 배경보다, 가해자의 정보를 더 부각하는 관행을 꼬집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판결문에) 가해자의 국위선양이나 기여도가 언급된다. 피해자의 (피해) 맥락은 판결문에 잘 나오지 않는다. 일부 판사들을 중심으로 그런 문제의식이 나오고 있다"면서 "(재판 절차도) 피해자를 계속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고 말했다.

해당 판사의 말대로, 판결문 분석 결과 가해 지도자의 직무 태도를 강조한 대목은 심심찮게 등장했다.
 
[전남 순천 A중학교 체육교사, 중학생 42명 상대로 체지방 측정 과정 등에서 강제 추행]
"피고인이 이 사건 이전까지 동종 범죄의 전과나 집행유예 이상으로 처벌받은 전력 없이 28년간 교사로 성실히 근무한 점, 피해자들에게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가 중한 것은 아닌 점, 피고인의 동료 교사들이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비교적 공고해 보이는 점 등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 2017년 1월 광주고등법원 2심 (재판장 노경필) 판결
[광주 C고교 여자 배구부 코치, 피해자 고교생 3명 상대로 재활 빙자한 강제추행 등]
"비교적 성실하게 가정생활과 생업을 유지했던 점 등 긍정 요인을 종합 고려한 후 보호관찰을 통한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통해 위법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이 제시."
- 2017년 11월 광주고등법원 1심 (재판장 노경필) 판결
 
가해자가 형 확정시 연금 수급에 불이익을 받는 상황을 감안해 형량을 판단한 사례도 적지 않다. 가해자는 대개 수업 중 제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벌인 학교 소속 체육 교사들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다.
 
- 경북 칠곡 E여자중학교 체육교사, 중학생 5명에 위계 추행

"피고인은 이 사건으로 2016년 5월 해임되어 교사직을 상실하였고, 30년 이상 성실하게 교사로 근무한 점 (중략)  피고인의 재직 중의 사유인 이 사건 범행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사립학교교원금법 제42조 제1항, 공무원연금법 제64조 1항 1호에 의해 급여제한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
- 2016년 9월 대구지방법원 1심(재판장 한재봉) 판결
- 충남 부여 B초등학교 체육전담교사,  초등학생 2명 상대로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 추행

"피고인이 초등학교 교사로 30년 이상 재직했는데, 재직 중 사유인 이 사건의 범행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연금법 제64조1호에 의해 급여 제한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기준에서 정한 권고 형량의 하한을 벗어난 징역형을 선고."
- 2017년 5월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 1심 (재판장 임은하) 판결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의 성실함이나 연금 문제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죄를 묻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스포츠분야 성폭력/폭력 사건 판례 분석 및 구제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피해자의 피해사실과 가해자의 직무 태도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법원은 피고인이 퇴직 이후 겪게 되는 연금 등의 불이익을 고려해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하거나 양형기준에서 정한 권고형의 하한을 일탈하는 형을 선고하기도 했다"면서 "평상시 직무 태도나 생활태도는 피해자에게 가한 성폭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를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그 코치 봐준 그 판결] 특별기획 바로가기 (http://omn.kr/1oz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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