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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이 유행이자 대세라고 한다. 비대면 수업, 비대면 회의, 비대면 배달에 이어 비대면 회식까지 한다니, 대세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활동들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대체할 수 없는 여러 필수적인 노동에 기대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가 노동시간에 미친 영향 중 많은 논의가 일자리 감소 관련 직종 아니면 '재택근무', '디지털 업무' 등에 쏠려 있는 지금, 대신할 수 없는 노동을 하는 이들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기자말]
올해 1월부터 스스로 안식년을 맞이한 프리랜서 기록활동가 림보(활동명)를 만났다. 일은 기록 작업만 남기고, 세미나 한 개에만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결혼한 지는 11년이 좀 넘었고, 10살 여자 어린이와 남편과 살고 있다. 오랫동안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어린이의 학교생활과 교육 문제를 전담하고, 빨래, 식사 준비, 설거지를 하는 등 가사를 주로 맡고 있지만, '주부'라는 소개는 아직 어색하다고 한다. 청소를 게으르게 하는 등 가사 부담을 상당히 줄여왔지만 코로나로 가족들이 집에 오래 머물게 되니, 예전과는 상당히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전업주부 돌봄노동 강도 상승해

"어린이가 태어난 이후로 긴 시간을 붙어 지내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코로나로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워지다 보니, 키즈 카페를 운영하는 집 자녀인 친구랑 그 키즈 카페 가서 노는 것 말고는 종일 집에 있게 됐다. 사실 가정주부에게는 집이 '일터'다. 여기에 갑자기 온종일 누군가가 같이 있게 되는 거다. 이러저러한 갈등도 많아졌고, 어린이에게 쏟는 감정노동이나 노력도 훨씬 강도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오후 10시부터 2~3시간은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또, 약속이나 세미나 때문에 나가던 일정도 크게 줄이지는 않았다. 가사도 남편이 있을 때는 혼자 하지는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쓰기도 하는데, 그런 걸 다 직접 챙기는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매우 보편적인 상황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 '코로나19 위기를 넘어 성평등 노동으로' 토론회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 5~6월 시행한 설문에서 여성 응답자(318명)의 56%가 '돌봄 노동시간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특히 이른바 '전업주부' 돌봄노동 강도가 심각하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가정에서 돌봄을 전담하고 있는 전업주부 응답자들은 돌봄노동 시간이 "6시간 이상 늘었다"라고 답했다. 강화된 돌봄노동 중 가장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엔 '세 끼 식사준비', '온라인 수업과 과제 챙기기 등 아이들 학습지도' 뿐 아니라, '개인시간 부재'도 나왔다. 
 
ⓒ pixabay

"사회적 거리두기를 얘기하면서도 가족들은 붙어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가족은 사회 바깥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전제한 것이다. 공적 영역인 사회와 가정을 구분하고,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긴다. 공적인 공간에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가족끼리 이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 붙어 지내든 말든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코로나 이후,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가정 내 여성폭력이 하도 늘어서 SOS를 요청하는 비밀 신호도 나왔다고 하더라. 가족 역시 권력 관계가 존재하며,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유행한 '저녁이 있는 삶'이 실은 전업주부의 희생을 기본값으로 놓고 그리는 환상이었다. 언제든 '가족'이 사회적 돌봄을 메꿀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시선 역시 전업주부든, 임노동을 하는 여성이든, 가족 내에서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본다."


당연히 엄마가 챙겨야 하는 학교생활? 

림보는 '집안일은 엄마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싫어, 다른 가족들이 일할 때는 본인도 가사를 안 하려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 다 모여 있는 동안 한 끼 정도는 피자나 치킨, 떡볶이 등을 시켜 먹는 게 늘었다. 암암리에 빨래니 끼니 챙기기 등 소소한 일이 늘었는데도, 배달음식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늘었다. 게다가 특수고용으로 일하는 남편이 8월 한 달간 일을 못 했다.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고, 여러 사정 때문이었는데, 현금이 똑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이렇게 쉬어도 되나, 일해야 되나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일하던 사람도 지금 일을 그만두고 어린이들의 학습을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게 지금 온라인 학습의 현실이다.

"아주 어린 이들의 돌봄만이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온라인 수업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사실상 온라인 수업을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있거나, 선행학습으로 이미 학교 교과 공부가 어렵지 않은 학생들, 50분의 온라인 수업을 알아서 집중해서 들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중심에 놓은 구상이다. 

우리 집 어린이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서, 수업을 집중해서 들어야 새로 익힐 수 있는데, 아무래도 온라인 수업은 집중을 어려워한다. 3학년이라서 처음 영어를 배우는데,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가 알파벳 좀 챙겨주세요' 하는데, '내가 영어까지 가르쳐야 하나, 그게 당연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코더를 열 곡 연습하라는데, 앞에 한두 곡은 알겠는데, 뒤쪽 어려운 노래들은 나도 모르겠더라. 학교에서 같이 배운다면, '나만 어려운 거 아니구나, 쟤도 어려워하는구나, 어? 저 친구는 잘하네, 나도 해볼까?' 뭐 이런 다양한 반응과 생각을 하면서 잘하든 못 하든 수업에 참여할 텐데, 혼자 앉아서 재미도 없고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학업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이 클 것 같다. 장애인 어린이나 특별히 학습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 어린이라면, 그 영향이 더 크겠지. 

옆에서 챙기기 어려운 집, 학교 수업도 겨우 따라가는 많은 학생을 중심으로 고민했다면 아예 1년 휴업을 선언하거나, 온라인으로도 따라갈 수 있게 학습 목표량을 조정했어야 했다. 저절로 격차가 나게 해 놓고, 1년 뒤에 너는 이제 4학년이니 4학년 수업을 하자고 할 건가? 우리 사회의 교육이 사실상 누구를, 어떤 사람을 중요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지 그 민낯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로서 이런 직관은 객관적인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시사인이 보도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코로나19와 교육: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조사에 따르면, 가정 경제 수준에 따라 학습 기기 소유 자체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가난한 집 학생일수록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학습하거나, 기기가 낡거나, 인터넷 속도가 느려 학습에 방해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온라인 수업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고 불편하다',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어렵거나 궁금한 점이 생겨도 선생님이나 보호자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혼자 해결하거나 그냥 넘어간다'는 응답이 저소득층 학생에게서 높았다.

영국에서도 이미 지난 상반기에, 코로나19로 인한 휴교 이후 교육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조사가 나왔었다. 영국 재정연구소라는 곳에서 낸 보고에 따르면, 4~15세 자녀가 있는 가구를 조사한 결과 휴교 이후 상위 20% 가정의 자녀는 하루 5.8시간의 교육 활동을 한 반면, 하위 20%는 4.5시간에 그쳤다.

코로나19가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로이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논의 방향은 긍정적이지 않다. 림보는 "아주 자연스럽게 가족, 특히 엄마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받는다"고 말했다. 

"'네가 학원을 안 보내서, 집에 데리고 앉아서 온라인 수업을 따라가도록 하지 않아서, 네 딸이 그렇다'는 무언의 압박을 코로나19 이후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친구도 발달장애인인 딸이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었는데, 등교가 거의 안 되면서, 점점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발달장애인에게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고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어린이나 발달장애인 등이 비슷한 측면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비상시국'이라면서 이들을 대상으로까지 세심하게 정보가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빈 자리를 당연히 엄마가 채우고 챙기는 거라면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림보의 가사노동시간은 코로나가 던진, '누구를 위한, 어떤 공교육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품고 있었다. '어머님, 학습 과정 잘 챙겨오고 계시죠?' 하는 메시지를 보내며, 여성의 무급 노동에 기대는 교육이, '혼자 50분 듣고 10분 쉴 수 있는 학습 능력'이 있거나, 보살피는 사람이나 선행학습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교육이 '공적'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태그:#코로나, #가사, #돌봄, #주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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