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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투 블록과 상고머리를 하고 싶었던 고등학생 4명이 스포츠형만 강요하는 두발 검사는 과도한 규제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학교 측은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적법하게 학생 생활 규정을 제정했을 뿐 해당 학생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며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 발현 수단의 하나인 두발 형태를 획일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과 국제협약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라고 판단했다. 두발규제의 교육적 목적을 고려해도 제한이 과도하다고 지적하며 고등학생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8월 16일 광복절 다음 날 발행된 기사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기존 규칙에 의문을 품는 존재 탄생
 
우리가 자기 다움을 잃는 다면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인기 많은 시체와 다르지 않다.
▲ 자아실현 우리가 자기 다움을 잃는 다면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인기 많은 시체와 다르지 않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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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 제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지난 2005년에도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가 학생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단체 관계자들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도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정 개정과 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지나친 두발 단속이 교육적으로 옳지 않다며 각 학교에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학생이 외모를 꾸미는 것에 대해 얼마나 보수적이며 부정적인 편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와 같은 N세대,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학창 시절에 교복이라 불리는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똑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은 사상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선생들의 감독하에 선도부(학업 성적이 좋은 아이들로 선별)라는 이름으로 같은 학생이 같은 학생을 단속하게 했다.

학생이 옷을 변형시키거나, 머리 색깔과 모양을 다르게 하고 나타나서 왜 남들과 똑같이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반항아, 문제아로 낙인찍은 후 말 그대로 본보기가 되어 맞았다. 그걸 본 아이들은 겁에 질려 절대 권력자들 앞에서 개성을 감춘 채 순종했다.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미안해했지만, 나중에는 선도부가 선생보다 더 열심히 다른 모습을 한 학생을 찾아 지적했다.

나는 사춘기를 겪으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에 획일화를 강요하는 학교 시스템에 대해 정성껏 고민했다. 당시 친오빠와 함께 10대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으며, 서랍장을 잡고 헤드뱅잉을 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덕분에 나의 사춘기는 알찼다. 그 말은 학교에서 흔히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비행 청소년은 아니고 순종적이지 않고 늘 "왜 그래야 하는 거예요?"라고 기존 규칙에 질문해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별명은 '왜요?'가 됐다.

이를테면 왜? 여학생은 머리카락을 귀밑 3cm로 유지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고 쇼트커트를 하고 등교한다든지, 왜 흰색 운동화만 신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컬러 운동화를 신고 등교한다든지, 왜 비치는 스타킹은 신어서는 안 되는지, 왜 머리카락을 염색하면 안 되는지, 왜 머리에 핀을 꽂아서는 안 되는지, 왜 헤어 젤을 발라서는 안 되는지, 왜 색깔 있는 속옷은 입어서는 안 되는지 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다수 선생님은 그런 질문과 도전을 귀찮아했고 싫어했다. 너는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공부나 할 것이지 버릇없이 선생님에게 말대꾸하냐며 혼나기 일쑤였다. 특히 모든 아이가 벌벌 떨던 학생 주임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사이가 됐다. 원수가 됐다는 뜻이다.

학생과 대화나 토론이 아닌 언제나 일방적인 그들의 권위적 태도에 나는 분노했고, 반항했다. 이건 핵주먹 마크 타이슨의 말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미움받을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
 
공장에서 찍어 낸 상품형 인간 제조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왜 그래야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아이들.
▲ 정체성 공장에서 찍어 낸 상품형 인간 제조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왜 그래야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아이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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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왜요?'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다. 여자는 그저 다소곳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가정 선생님께서 나에게 화가 단단히 나신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나를 교탁 앞으로 부르고 수업을 중단한 채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혼내셨다. 수치심을 느끼게 하여 굴복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고개를 떨구는 대신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서 있었다. 넌 공부할 가치가 없는 아이라는 말과 함께 다음 수업을 듣지 못하게 하셨다. 그대로 교무실로 끌려갔다.

선생님과 나. 이렇게 단둘만 있는 공간에서 세기의 빅딜이 시작됐다. "네가 진심이 아니어도 좋다.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하면 회초리 백 대를 때리지 않겠다." 이번에는 회유한 후 굴복시키려는 전략이었다. "저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드릴 수 없으니, 그냥 백 대를 때리세요."

노벨 문학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저서 <이방인>을 통해 이렇게 꼬집는다. 훌륭한 조직이 되는 모든 비결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이다. 요컨대, 사형수는 자기를 위해서라도 사형 집행자에게 정신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고통 없이 단번에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당황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맞는 도중에 무릎을 굽히거나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처음부터 다시 숫자를 세고 때릴 거야." 이것은 협박이었다.

그렇게 칠십 대 넘게 맞으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동안 외나무다리에서 맷집이 단련된 이유도 있지만, 왠지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면 굴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할머니 선생님이라서 힘이 없으셨는지 견딜만했다. 어쩌면 사람을 세게 때릴 수 있을 만큼 폭력적이지 않은 성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행운들이 맞물려 나의 엉덩이 대신 선생님의 주름진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깊은 심호흡과 함께 탁자 위에 회초리를 올려놓으셨다. 교직 생활 평생 나 같은 학생은 처음 본다면 크면 뭐라도 되긴 되겠다는 말과 함께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나답게,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세상
 
어른들과 학교 시스템에 억눌린 학생들을 해방시켜 준 키팅 선생님을 향해 외치던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장면.
▲ 오 마이 캡틴! 어른들과 학교 시스템에 억눌린 학생들을 해방시켜 준 키팅 선생님을 향해 외치던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장면.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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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부터 나를 바라보는 가정 선생님의 눈빛은 달라졌다. 주변 선생님들이 나를 혼내려고 하면 <이방인>의 뫼르소 친구들처럼 앞장서서 변호해주셨다. 은영이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문제아가 아니라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관심을 두고 장점을 찾아 지지하고 격려해 주셨다.

초등학생 때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개성 넘치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자양분 삼아 나는 대학에서 의상(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면서, 뷰티 모델을 거쳐 패션 쇼핑몰 대표가 됐다. 코로나19와 함께 인생 제2막이 시작된 지금은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며 한발 한발 내딛는 중이다.

청소년 교육 심리학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심리학자 제임스 마샤 (James Marcia)가 있다. 그는 에릭슨의 정체감 형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다시 '자아 정체감 상태'로 확장, 4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정체감 성취 (위기를 경험하고 성공적으로 해결함. 이상과 계획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자신이 선택한 가치와 목표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특징) ▲정체감 유예(의사결정 과정에서 위기 상태에 있음. 이상과 계획에 관심은 가지고 있으나 아직 확고한 의지나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특징 ) ▲정체감 유실, 정체감 폐쇄 (독립적 의사결정이 없어 위기를 회피함.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가치와 목표를 수용함.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으나, 억압된 내면과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행동, 발전이 없으며 지나치게 순응적인 것이 특징) ▲정체감 혼미(위기 상태가 없거나 이를 겪고 있어도 극복을 못 함. 삶의 주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며,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활동에 빠진 것이 특징)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74.4%가 낮은 정체성 지위인 '정체감 유실, 정체감 폐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학창 시절에 자기 목표나 가치, 신념에 대해 고민하며 투쟁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와 교사는 그런 투쟁에 반대하고,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남과 경쟁하며 살기를 강요한다. 자기 기준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나은 대학 간판, 남보다 나은 직업을 갖고, 남들 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을 인생 목표로 세운다. 전형적인 정체감 유실, 정체감 폐쇄의 대물림 현상이다.  

자아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기본적인 관심과 물음으로 자신의 본질을 뜻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과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성을 찾아 집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남들에게 보기 좋은 삶이나 세상 잣대의 성공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나다운 인생을 사는 삶을 추구할 때 인간은 '자아 정체감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벌써 20년도 지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가사는 지금 시대에도 경종을 울린다.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체 근엄한 척할 시대가 지나버린 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 수 있어.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청소년기에 자아 정체성의 성공적인 완수는 인생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생을 살면서 시련과 맞서 싸우는 힘, 불안한 감정을 다스리는 데 꼭 필요한 영역이다. 자아 정체감 성취, 자아 존중감, 자기 효능감, 자신감, 자기 확신 같은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라 불리는 필수 요소는 '자기다움'을 추구할 때 선물처럼 주어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웃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서 우월감을 느끼며, 남에게 그럴듯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인생 성공이 아님을 말이다. 자기 인생에서 자아 정체성의 성공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의 승리자일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자아 정체성의 성취는 성인이 돼서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어린아이보다는 힘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길면 길수록 굳어진 정체성으로 인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구원 사건' '부활 사건'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자아정체성, #자아존중감, #자기효능감, #자기확신,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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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를 알기 전보다 알고 난 후, 더 좋은 삶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씁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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