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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창인 후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창인 후보.
ⓒ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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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의당은 당직선거를 치르고 있다. 비록 대표와 부대표 선거 뒤에 가려져 있지만, 지금까지 치른 적 없는 선거도 있어 관심이 간다. 청년정의당은 청년 당원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의당 내 자치기구다. 진보정당은 물론 한국 사회 정당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시도다. 이번에 선출되는 창당 준비위원장은 임기 내 청년정의당의 구성과 권한, 예산 등에 대한 기틀을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후보로는 두 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강민진 전 정의당 대변인과 김창인 전 정의당 혁신위원이다. 지난 14일 김창인 후보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방역 수칙을 모두 준수한 상태로 이뤄졌다. 아래는 김창인 후보와의 일문일답.

한강대교 올라갔던 학생이 정의당에 뛰어든 까닭

- 선거운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계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미 FTA 반대 촛불 집회가 있었다. 당시 읽고 있던 사회과학 서적이나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계속 촛불 집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의경들이 촛불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을 보고 친구들과 같이 촛불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집단적 에너지와 집회 분위기를 처음 느꼈고, 활동을 시작한 큰 계기가 됐다. 이후 진보신당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 대학 입학 이후에는 학생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10년 4월에는 중앙대의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한강대교 구조물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이후 징계처분과 법적 다툼 등의 지난한 투쟁을 거친 끝에 결국 2014년 5월 중앙대를 자퇴했는데. 자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6년의 대학 재학 기간 동안 여섯 번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네 번의 징계를 받았다. 대학 생활을 요약하면 투쟁과 징계의 연속이었고 점차 지쳐갔다. 투쟁과 징계의 반복을 끊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대학의 기업화와 관련해)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김창인이라는 개인이 할 수 있는 방식 중에 가장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방법이 자퇴라고 판단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학벌로서의 학적이 아니라 중앙대라는 공간을 통해 만나고 얻은 인연과 경험이 소중했다. 그런 것들을 포기하는 선택을 통해 호소하면 절박한 심정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자퇴를 결심하게 됐다."
 
2010년 4월 8일 오전. 당시 중앙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창인 후보가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던 모습.
 2010년 4월 8일 오전. 당시 중앙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창인 후보가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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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퇴를 전후로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텐데.

"자퇴를 결심했을 때는 힘들지 않았는데 (자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 전날에는 두려움 때문에 힘들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는 각오였는데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막상 기자회견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와줬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한 번이라도 나를 스쳐 갔던 사람들이 내 옆과 앞에 서줬다. 총장실을 함께 점거하고, 대자보를 함께 붙이고, 소모임을 함께 했던 한 명 한 명이 지켜봐주고 응원해줬다. 그 경험이 나에게는 일종의 빚이 된 것 같다. '고마워서 앞으로 똑바로 살아야겠다'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같은 각오를 했다. 큰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 자퇴 이후에는 다른 대학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연대하거나 저술, 콘텐츠 생산 작업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자퇴 이후에는 취업에 대해 가장 먼저 걱정하게 됐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고졸 채용'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알아보니 대부분의 기업이 토익 점수를 요구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토익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인터뷰 요청이 계속 들어올 때였는데 취업을 위해 토익 학원을 다니면서도 (중앙대 자퇴 선언과 관련해서) 기자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한림대학교 학생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금 학과 통폐합이 진행 중인데, 학과 통폐합 투쟁을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싸웠는지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웠다. 당시만 해도 학과 구조조정이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정작 대학을 자퇴하고 나와서 토익 학원을 다니며 그럴싸한 말이나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학원을 그만두고, 전국의 대학을 돌아다니며 투쟁하는 학생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책(<괴물이 된 대학>, 2015년)으로 묶어냈다. 내가 처음으로 써낸 책이다. 이후에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군대에 다녀왔다. 전역하고 나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조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세상이라는 대안에 대해 같이 공부하고 내용을 생산할 수 있는 같은 세대 동료 활동가들을 모아 청년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게 된 계기였다."

청년세대 집합의 '가능성'
 
지난 2월 1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소속 청년 예비후보들이 기자회견 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지난 2월 1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소속 청년 예비후보들이 기자회견 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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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가와 정치인이 구별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김창인'이 되기로 한 이유는. 정의당 입당과 비례대표 후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정의당 입당은 지난해 9월에 했다. 앞서 이야기한 청년단체에서 같이 활동하는 친구와 동료들이 있었는데 당적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었다. 활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도 제각각이었다. 그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토론을 거친 끝에 함께 정의당에 입당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에 정의당을 가능성의 공간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출마의 경우에는 무대가 필요해서 나섰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에 대해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를 선택한 것이다."

-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과 선대위 대변인, 청년선대본 활동을 거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느낀 점은?

"비례대표 경선 때는 정의당에 입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아는 당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광역시·도당에 전화를 걸어서 '비례경선 후보 김창인이다. 지역 당원들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 만나러 갔다. 울산이나 부산에서는 청년 후보라고 반겨주시면서 '이 지역에 처음 온 청년 후보고, 마지막으로 온 청년 후보가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 말씀을 듣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우리 세대 청년활동가가 정의당에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부분에 대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례대표 경선이 끝난 이후에는 중앙당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일하다 청년선거대책본부를 꾸려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유의미한 활동을 했다. 텔레그램 N번방 문제 해결을 위한 원포인트 국회 소집,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의 특별 무상 등록금, 뒤늦게나마 발표된 '조국 사태'에 대한 정확한 입장은 모두 청년선거대책본부로부터 나왔다.

청년 당원끼리 모여 의논하고 집행하니 '일이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우리 세대 집합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청년 당원들이 해내는 것이 의미도 있었다. 이때 정의당 내에서 '뭉쳐서 (활동) 해보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 총선 이후 꾸려진 정의당 혁신위원회에 혁신위원으로 참여했다. 혁신위원으로서의 소회는?

"정의당 혁신위원회가 당원들이 기대한 만큼 해내지 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심상정·노회찬과 같은 '거인'의 열 걸음을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분명 아쉬움이 컸겠지만, (정의당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은) 열 사람의 한 걸음이 갖는 실체다. 다른 생각을 가진 18명의 혁신위원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한 걸음을 밟아나간 것이고, 나는 여기서부터 정의당의 혁신이 출발하고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 걸음을 떼었으니 두 걸음, 세 걸음은 더 빠르게 뗄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비전'과 '급진적 실천'

-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후보자로 인터뷰하는 것인 만큼 출마선언문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한다. 출마선언문에서 "우리에게 더 나은 비전은 더 급진적인 실천에 있다"고 했다. 김창인이 생각하는 '더 나은 비전'과 '급진적인 실천'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더 나은 비전'은 정의당이 반자본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정당임을 선언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적-녹-보라-무지개 패러다임'이 더 발전적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나는 노동운동을 하고, 너는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 나도 페미니즘 운동 좋은데, 일단 노동운동을 열심히 할게' 식의 사고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적-녹-보라-무지개'가 하나의 덩어리가 돼 할 수 있는 실험을 우리 세대가 해야 하고, 청년정의당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급진적인 실천'은 여의도에만 갇혀 있지 않겠다는 측면의 이야기다. 유세에서 '현장을 보고 받는 곳이 아니라 현장을 찾아가는' 청년정의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지역 청년 활동가들로부터 '회의 참석을 위해 중앙당에 오면 차 시간 때문에 제대로 논의도 못 하고 회의를 대충 마무리 지은 채 급하게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한 현상이 반복되면서 중앙과 지역의 단절이나 분절이 많아졌다고 본다.

따라서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면 중앙의 역할을 재규정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청년 활동가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 고민을 어떻게 함께 나누고 함께 집행할 것인지의 상을 그리는 일이 필요하다."

- "청년정의당은 정의당을 더욱 아래로 견인하는 강한 정당이어야 한다"고 했다. 김창인이 말한 '아래'는 무엇인가.

"출마선언문을 준비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월세 20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월세 낼 돈이 없어 불을 끄고 살았던 적이 있다. 방안에 있는 줄 알면 주인이 문 두드리며 월세 내라고 할 것이 뻔하니 없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밥 먹을 돈이 없어 휴대전화 소액결제를 하고 두 달 정도 밀려 휴대전화를 끊겨본 적도 있다.

'굉장한 가난함과 어려움의 문제'라기보다 나의 삶과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하다. 이러한 압박과 절박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던 고시원에도 많았다. 그런 사람을 향하고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아래'로 가는 것 아닐까."
 
- "청년정의당의 길이란 사회운동정당의 길이고, 사회의 여러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청년 활동가들을 묶어내는 우리 세대 진보의 허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사회운동정당과 사회운동단체의 차이점'은 무엇이라 보는가. 


"질문으로 답하고 싶다. 정당에서 사회운동을 빼면 뭐가 남는가. 입법청원기관인가. 선거운동캠프만 하는 건가. 아니면 동문회의 개념인가. 최근 당직 선거 기간 동안 여러 전국위원, 대의원, 지역위원장 후보들의 출마선언문을 찾아 읽어봤다. 지역 강화, 민주당과의 차별성 등 저마다 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사회운동의 성격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포부였다. 나는 오히려 왜 이것을 사회운동정당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냥 그렇게 부르면 된다."

'무엇을 얼만큼 주느냐'에 매몰된 기성 정당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김창인 후보의 홍보물.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김창인 후보의 홍보물.
ⓒ 김창인 후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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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에 도전하는 만큼 김창인이 '청년'과 '청년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청년의 대표적인 상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 청년의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있다. 예를 들면 '86세대'를 흔히들 '민주화세대'라고 부르는데 '86세대' 모두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나. 아니다. 결국 그 세대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그 의미를 어떤 언어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답하는 것이 청년정치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선거 유세 과정에서 청년을 '낡음과 적대하는 모두'라고 표현한 적이 있긴 하다."

- 최근 몇 년 동안 '청년'과 '청년정치'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정부와 집권 여당에서도 많은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평가하자면.

"이번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청년 공약은 '무료 와이파이' '신혼부부 맞춤형 도시주택 10만 호 공급' 등이 있었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제시했던 청년공약은 병사 월급 인상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년정책의 기본적·핵심적 방향성은 '무엇을 얼마만큼 주느냐'보다는 '어디서 어떻게 자원을 가져오느냐'에 있다고 본다. 임대주택 건설도 좋고, 재난지원금 지급도 좋다. 그런데 부동산 재벌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관점이 없다면 그러한 정책은 전부 시혜적인 것에 불과해진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을 함께 책임지기 위해 기득권에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것 아닌가.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 청년정의당은 한국 정당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갈등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겠다"고 얘기했다. 청년정의당 창당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힐 문제가 무엇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러한 문제에 대한 타개책을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의당의 청년·학생 단위가 분절된 상태에서 각자도생하며 생존해왔다는 점이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될 문제가 될 것이라 본다. 창당준비위원회 초기에는 구성과 구조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당내 청년 활동가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공유하고 정의당의 청년·학생 부문을 집단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청년·학생 부문 구성원들이) 같이 했던 평가는 없고 각자 따로 했던 평가만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공동의 사업을 같이 기획·논의·추진·집행하면서 일치감을 높여가야 한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의견의 차이나 그로 인한 갈등은 단순히 토론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생각이 달라도 괜찮다. 친해질 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다. 모든 조직이 그렇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 같이할 수 없다'는 말은 같은 공동체라는 일치감이 없을 때 나오는 이야기다. 서로의 일치감을 높이는 작업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사회 흔드는 '공정성' 논란... "불평등 관점에서 보고 정면으로 얘기해야"

- 청년정의당의 청사진을 그리는 창당준비위원장이 된다면 당 안팎의 청년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작업이 급선무일 텐데.

"당 안에서는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어떤 거 하고 싶으세요?'라고 묻고 '이런 거 하고 싶다'는 답을 들은 다음 '하세요'라고 말하는 방식은 안 된다. 작은 거 하나라도 의견을 모으고 다 같이 해본 이후에 실패하더라도 함께 평가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당 밖에서는 청년정의당이 정의당에 대한 확신을 주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내 유일의 진보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당 입당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의 일상적 관계가 중요하다. 입법할 때만 여론을 만들어달라고 시민사회를 찾는다면 시민사회는 굳이 입법을 위해 정의당을 찾을 필요가 없다. 민주당 찾아가면 된다. 입당 전에는 시민사회 활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잘 안다.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동력과 역동성이 생겨난다.

때문에 청년정의당은 사회운동이 다 연결되는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각자의 사회운동 영역이 있지만 청년정의당에 오면 모두 만나서 교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청년정의당의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다."

- 최근 '인국공'부터 '국시 거부 의대생' 문제까지 '공정성'을 키워드로 한 2030 청년의 분노 섞인 자조 내지 한탄이 계속되고 있다. 관련하여 청년의 정치혐오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지금의 공정성을 두고 다퉈지는 하나의 '게임'은 상위 10% 내지 20% 안에 있는 중산층 청년의 담론으로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절대다수의 청년들은 그 '게임'에 끼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때문에 공정성 담론을 통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불평등의 관점으로 이동해서 정면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치혐오에 대해서는 우선 다수의 청년이 정치혐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낡은 정치,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는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인 정치혐오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치나 운동을 하는 사람 중 일부가 정치혐오의 경향성을 가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정치라는 것은 무언가를 결정하고 책임져나가는 과정이다. 의견을 수렴하는 정치가 아니라 선택을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한데, 지금 한국 사회에는 정치에 대한 오해가 만연해 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청원하면 청와대가 답변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무엇이 바뀌나.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탈정치, 정치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나중에 하겠다'는 말로 귀결되지 않나."

-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청년 당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선 활동하는 사람이 고립되거나 외로움을 느끼면 안 된다. 활동가의 고립이나 외로움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고, 청년정의당을 통해 책임지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또 중앙이 왜 필요한지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현장 당원과 무관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하기 바쁜 조직이 아니라 고민이 있을 때 진정성을 가지고 논의할 수 있는 상대로서 존재할 수 있는 중앙을 만들고 싶다."

[경쟁후보 인터뷰]
강민진 "정의당, 댓글 아닌 본문 쓰는 당 돼야... 청년정의당이 견인"

태그:#청년정의당, #김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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