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컷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내 옆을 따라붙은 그 승용차

오늘도 김지영씨를 만났다. 나는 김지영씨를 네 번 만났다. 첫 만남은 친구들과의 공유 작업실 한 구석에서였고, 두 번째는 가까이 지내는 언니와 영화관을 찾았을 때였다. 세 번째는 영화의 여운 때문인지 한 달쯤 뒤 다시 펼친 책에서였고, 네 번째는 그로부터 조금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이다. 낯설지 않은 존재의 서사를 다시, 그것도 여러 번 만난다는 것은 그 서사를 원하는 주체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김지영씨는 지금 어디쯤 있고 나는 어디쯤 있는 걸까. 

삼 일 전 나는 밤길을 걷고 있었다. 아이 둘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지 않고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나온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남편은 내가 아이들을 재울 동안 다른 방에서 낮 시간에 처리하지 못한 일을 했고 그런 남편이 있기에 나는 밤에 혼자가 되어 운동 부족인 몸을 돌볼 수 있었다. 걷기 위해 나온 밤 10시가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일부러 큰길을 선택했다. 복잡하지 않은 동네의 큰길은 고요한 편이었다. 지나다니는 차들과 사람들은 일부러 폭넓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런 거리의 여백이 있었다.

그런데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검은색 승용차가 내 옆에 따라붙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마치 뱀이 먹이를 발견하고 신중하게 몸을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나는 무시하고 걸었다. 곧 운전석의 창이 열렸다. 뭐 좀 묻고 싶은데요, 라는 말이 들렸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구나, 나는 안심하고 잠시 멈춰 고개를 돌렸다. 창을 통해 보니 남자는 한 명이 아니라 보조석의 사람까지 두 명이었다. 서울에서 와서 잘 모르겠는데 여기가 OO동이 맞냐고 해서 OO동이 맞다고 대답하곤 다시 가던 길을 가려던 찰나, 갑자기 소주 한 잔 같이 하지 않겠냐는 말이 날아들었다.

순간 머리가 쭈뼛하여 할 수 있는 욕을 퍼붓고 그대로 집 쪽으로 되돌아 걸었다. 그리고 집에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집으로 오니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다리가 떨려 앉아있기조차 힘들었다. 침대에 누워 개인 SNS에 내가 겪은 일을 공유했다.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걱정하고 함께 분노하거나 그런 일이 있었을 때의 대처를 고민해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몇몇은 나를 다시 그 길의 검은색 승용차 옆에 데려다 놓은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조심해라, 보호자와 동행해라, 읽고 싶지 않은 문장들 이었다.

내가 입력하지 않은 그 문장들을 당장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참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그 승용차의 번호판을 보고 기억할 틈도, 다시 돌아볼 용기도 없었기에 그들을 신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겪은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보상으로, 또 그들이 내가 아닌 또 다른 여성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직감으로 나는 증거 없이 신고를 했다.

신고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관할 경찰서의 경찰이었다. 경찰은 차분하고 세세하게 상황을 물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나서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만큼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놀란 내 마음을 위로하는 과정까지 거쳤다.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뒤이어 찾아온 건 분하고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 밤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제 어두워지면 혼자 나가는 것이 두려워질 것이고 그래서 나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용기를 내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내 옆에서 천천히 달리는 차를 보면 불안해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할 것이다. 학원 수업이 끝난 밤, 버스에서부터 집 근처 정류장까지 자신을 쫓아온 남자애 때문에 한동안 어두워진 후 정류장 근처에도 가지 못한 김지영씨처럼 나 역시 불안 속에서 살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게 분하고 억울하여 나는 그날 밤 잠을 설쳤다. 

그리고 다시 지금, 삼 일 전 밤에 겪은 그 일에서 조금씩 더 벗어나고자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밤에 생긴 일을 두고, 한밤중에 왜 나갔냐며 내 조심성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들보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김지영씨와 같이 더 심하게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김지영씨였다

사실 나는 김지영씨를 네 번 만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 많이, 수없이 김지영씨를 만나왔다. 나의 매일이 김지영씨이고, 나의 주변은 온통 김지영씨였다. 힘들 때마다 나보다 더 약자인 아이들에게 너희들을 낳은 것이 잘못이었다는 말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가슴을 쳤던 나의 어느 시간들.

며느리가 자꾸 반찬을 사 먹는다며 친구에게 험담하던 지하철의 어느 할머니. 버스의 임산부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에게 여자들은 이래서 안 된다며 소리를 높이던 술 냄새 풍기던 할아버지. 여성 청년들의 비혼 커뮤니티 행사장 앞에서 '꼴페미들', 이라고 소리 내어 비난하던 일부 남성 청년들.

육아휴직이 없어 출산휴가 100일이 지나 다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회사에 출근해 일하며 틈틈이 창고에서 유축기로 젖을 짜냈던 언니들.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남자들만 못하다는 평가가 이어질까 봐 밤늦도록 일하고 휴일에도 일했던 한 언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에 불려 다니면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 내 탓이라면서. 

쏟아지는 의식의 파편이 그들 모두가 김지영씨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가정과 사회에서 비난받고 상처 입은, 여성으로 엄마로 살며 고립된 수많은 김지영씨가 나이고 또 내 주변 여성들이었다. 내 탓이라며 울었던 언니에게 그때 나는 언니 탓이 아니라는 말을 했던가. 버스 임산부석에 앉아 있던 임신 5개월의 젊은 여성이었던 나는 나를 여성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그 할아버지에게 어떤 대응을 했었나. '꼴페미들끼리 모여서 뭘 하겠냐'는 남자들에게 내 동료들은 어떤 말을 해줬다고 했었지?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했고, 또 할 수 있었을까. 

많은 여성들은 이제 더이상 피곤, 무력감, 두려움과 같은 것에 잠식된 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말하지 못해 결국 다른 사람이 되어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된, 그런 김지영씨로 살고 싶지 않은 여성들은 더 이상 김지영씨가 아니다. 그래도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잊지 않는다.

여전히 김지영씨로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김지영씨로 살 수도 있을 이들을 위해 잊지 않으려고 종종 책을 펼치고 화면을 켜서 김지영씨를 만난다. 그리고 계속 확인하고 물을 것이다.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당신들은 어디쯤 서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사회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인가. 묻고 요구하고 확인하면서 그렇게 계속 나댈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기록하고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