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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접시가 눈에 띈다.
  고급 접시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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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주방 코너, 진열대에 놓인 고급 접시가 눈에 띈다. 동그라미 숫자를 세어본다. 정말 이 가격이 맞나 하고 속으로 다시 일, 십, 백, 천 세어본다. 몇 번을 확인한 후에도 그 가격이 맞다 싶으면 그냥 눈호강으로 만족하고 돌아선다.

계산대엔 예비 신부로 보이는 이가 친정엄마와 그 비싼 접시 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나는 씁쓸하게 웃는다.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은 마음이 아니라 섭섭한 마음으로.

나는 27살에 결혼을 했다. 열정 페이를 받던 가난한 자취생에게 모아둔 돈이 있을 리 없었다. 하나뿐인 딸 시집가는데 부모님이 보고만 있겠나 싶은 어린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했다.

그런데 엄마가 혼수라고 내놓은 그릇을 보고 나는 뜨악했다. 동생이 회사 창립 기념일에 받아온 그릇 세트를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밥공기, 국공기, 접시 그릇 바닥에 동생의 회사 로고가 훤히 적힌 그릇.

흰 바탕에 풀 잎사귀 모양이 그려진, 그냥 주면 모를까 내 돈 주고 사진 않을 것 같은 그릇이었다. 낡은 찬장 구석에서 아직 포장채 그대로인 이 그릇을 꺼내 놓으며 엄마는 말했다.

"처음부터 너무 좋은 거 할 필요 없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 앞에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는 예비 신부에겐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엄마와 나의 역사가 담긴 그릇 

나는 내 돈으로 예쁜 그릇을 새로 샀다. 엄마에게 받은 그릇세트는 누가 볼까 싱크대 구석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시댁 집들이 때 여분의 그릇이 필요해 꺼내 놓았는데 눈치가 보였다. 아무도 주는 사람은 없는데 혼자 받는 눈치였다. 이런 걸 혼수로 해왔냐는 말을 들을까봐 회사 로고가 보이지 않게 음식을 수북이 담았다.   

십여 년이 흘러 나도 이제 중년이 됐고 그릇 레벨에 눈치 보던 짬밥은 지났다. 이젠 이 그릇으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시작해 '우리 엄마 대단하지 않냐?'라고 웃으며 얘기하기도 한다.

내가 예쁘다고 샀던 신혼 그릇들은 이가 듬성듬성 빠져 진즉에 버렸다. 그런데 이 기념품 그릇은 어찌나 튼튼한지 막그릇으로 쓰기 좋아 지금까지도 자주 밥상에 오른다. "좋은 거 필요 없다"던 엄마 말이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 주부 후기처럼 딱 들어맞았다.

작년인가, 친정에 갔을 때였다. 싱크대 하부장에 언뜻 봐도 오래돼 보이는 옛날 그릇이 한데 쌓여 있었다. 버리려고 모아뒀다는데 레트로 한 느낌이 좋아서 내가 가져가 쓰겠다고 했다. 고물 장수도 안 가져갈 걸 왜 가져가냐며 엄마는 타박을 했다.

엄마에게 옛날 물건들이 유행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엄마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강제 '집콕'으로 집밥 전성기를 맞은 이 시점에 고물상도 안 받아준다던 그 그릇들은 우리 집 식탁에 자주 플레이팅 되고 있다.
 
친정에서 가져온 옛날 그릇  친정 엄마가 버리려 둔 걸 집으로 가져왔다. 이 그릇을 쓸 때마다 옛 추억에 젖는다.
▲ 친정에서 가져온 옛날 그릇  친정 엄마가 버리려 둔 걸 집으로 가져왔다. 이 그릇을 쓸 때마다 옛 추억에 젖는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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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새겨진 그림은 빛이 바래고 디자인은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그래서 왠지 더 정겹다. 세월이 담긴 그릇이니 반찬을 올릴 때마다 뭔가 뭉클한 감정도 인다. 대물림까진 아니라도 살아생전엔 버릴 일은 없지 싶다. 이 그릇은 엄마의 역사이자 내 역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움푹 팬 이 그릇엔 말간 물김치가 담겨 있었고, 넓적한 이 그릇엔 숭덩숭덩 자른 김치가 담겨 있었지. 작은 종지엔 엄마표 양념장이 있었고... 어릴 적 내 식탁 위 풍경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2020년 우리 집 밥상에 재방되는 이 그릇 위엔 반조리 음식들이 대부분이지만, 자식을 배 곯리지 않으려는 엄마맘은 다 같은 거겠지... 나 홀로 눈물겹다.

희생을 택하는 부모가 되지 않겠습니다

문득, 엄마가 새 그릇을 쓴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닳고 닳은 이 그릇에 대한 기억은 많지만 예쁜 새 그릇에 대한 기억은 없다. 교회에서 윷놀이하고 받은 냄비, 행사에서 이벤트로 받은 컵, 집으로 가져올 땐 요란하게 즐거워하는 걸 보았는데 새 물건들이 실사용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 TV에 나온 유품 정리사 말이 떠올랐다. 유품을 정리하러 어르신들 집에 가보면 새 물건이 포장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열어보면 유행이 지나 아무도 안 가져갈 것 같은 물건들이 대부분이라고. 정작 본인들은 허름하고 낡은 걸 쓰고 있는데 제발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던 그의 말에 나도 격하게 동의했다.

우리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싶다. 본인은 아까워서 쓰지도 못했던 그릇. 유행이 지나고 볼품없다는 것도 모른 채 엄마 입장에선 좋은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저 새 거니까 좋은 거지 싶었을 테다.

그걸 내어준 엄마의 마음을 이젠 어른된 마음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닮고 싶진 않다. 난 엄마의 희생이라는 단어보다는 조금 덜 무거운 사랑을 하는 부모가 되리라.

지금 좋은 것이 오랜 뒤에도 좋을지는 알 수 없다. 엄마의 새 그릇이 시간이 흘러 한물간 그릇이 된 것처럼. '내가 좋은 만큼 우리 딸도 좋아하겠지?'라고 선물로 준 것이 외려 더 큰 상처가 된 것처럼.

좋은 것을 가슴 저 안에 누적시키고 나 혼자 짐작만 하는 사랑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으니까 너도 좋지?"가 아니라 "나는 이게 좋은데 넌 어떤 게 좋니?"라고 말할 줄 아는 부모 자식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엄마는 내가 기념품 그릇을 좋아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은 고물 장수도 안 가져갈 옛날 그릇이 더 좋았다. 엄마와 나의 동상이몽... 나는 나의 아들딸과 동상이몽이 아닌 동상동몽을 하려 한다.

이것이 엄마와는 다른 사랑법, 나의 육아법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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